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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속 조연들 숨은 이야기를 말하다

중앙선데이 2015.12.13 00:18 457호 32면 지면보기

저자: 탁현규 출판사: 디자인하우스 가격: 1만5000원



평범한 이들이 그림을 보는 방법에는 ‘멀리서 바라보기’와 ‘가까이서 들여다보기’ 두 가지가 있다. 멀리서 바라보기의 적당한 거리는 화폭 직사각형 내부의 대각선 거리 만큼이다. 이 기준대로 우리 그림을 보면 화폭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조선회화가 가진 으뜸의 미학인 ‘여백의 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아! 그런데 우리의 화원님들은 어쩌자고 이 작은 화폭에 저리 큰 세상을 담았을까. 또 어쩌자고 저 광대한 세상 구석구석에 점처럼 사람을 세워뒀을까. 손톱 크기보다 작은 그림 속 사람들은 지금 저 광대한 산천을 앞에 두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이젠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고화정담-간송미술관의 다정한 그림』

『고화정담』은 바로 이 욕심을 채워주는 책이다. 미술관 또는 전시장의 여건상 유리벽 너머에 걸려 있어 가까이 다가가 살피기 어려운 그림들의 구석구석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하여 작품마다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백미’ 부분을 확대하고, 미처 보지 못해서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간송미술관의 연구원인 저자 탁현규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수많은 작품 중에 30점을 골라 다섯 개의 주제로 선별했다. 주로 먹으로만 표현한 사군자화, 동물을 그림 영모화, 우리 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 불교·도교 등 종교와 관련된 인물을 그린 도석화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김홍도의 ‘대장간’, 신윤복의 ‘쌍검대무’ ‘단오풍경’ 같은 풍속화는 물론 변상벽?유덕장?김득신 등의 명작들도 담겨 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림을 다시 마주했을 때, 『고화정담』은 그림 속 조연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신명나게 춤을 추는 무녀의 화려한 동작에는 아랑곳없이 낮은 돌담 너머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친 양반집 여인, 옆에 앉은 기생에만 눈길이 쏠린 선비, 혹여 피리 부는 데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갓끈을 위로 질끈 묶고 연주에 골몰한 악공 등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책 표지 한쪽에 ‘옛 그림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정겨운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것도 미처 몰랐던 조연들의 숨은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실제 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 편에 담은 8점은 모두 정선의 그림이다. 팔십 평생 산천을 유람하고 72세의 나이에도 금강산을 오르며 사생을 멈추지 않았던 겸재의 공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굽이굽이 일만 이천 봉 사이사이에 숨은 집이며 사람들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재미가 꼭 숨은 그림 찾기 같아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사람’을 굳이 그려 넣은 정선의 깊은 속내도 전해진다.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책갈피 곳곳에 실린 ‘뒷이야기’다. 달빛을 즐기며 술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다 흥에 겨워 생황을 부는 그림 속 사내는 아마도 김홍도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력이 독자들의 시선을 붙든다. 신윤복의 아버지인 신한평이 그렸을지도 모른다는 김홍도의 초상화 이야기, 『혜원전신첩』 30면에 등장하는 기생 수를 헤아려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화폭 속 주인공이 아닌 조연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는 우리가 그림을 보는 또 다른 방법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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