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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조용할 수 밖에 없는 북한

중앙선데이 2015.12.13 00:12 457호 31면 지면보기
북한은 11월 한 달 간 꽤 조용했다. 물론 그렇게 끝날 북한이 아니다. 11월 28일 북한은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쏘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이달 2일 풍계리 핵실험장 부근에서 네 번째 땅굴을 파고 있는 게 인공위성 사진에 포착됐다.



하지만 내가 전에 이 칼럼에 썼듯이 북한은 10월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 방북 당시 중국과 모종의 합의를 한 것 같다. 그 합의의 일부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자중하겠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 왜 북한은 또 미사일 실험을 하고 땅굴을 파는 것일까.


존 에버라드의 시대공감

첫째는 11월 1일 한중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은 북한에게 도발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것이다. 그후 기술적인 준비를 거쳐 북한은 이번에 미사일을 쏘고야 말았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공표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이를 완성하면 국제안보에 미치는 위협이 훨씬 커질 것이란 걸 중국은 잘 알고 있다. SLBM 기술을 갖게 되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필요한 많은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된다. 장거리 미사일을 북한에서 미국 본토로 쏘는 게 아니라 잠수함을 미국 연안에 보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북한은 일부러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걸 싫어한다. 중국과 같은 후원자라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부터 북한은 상대방의 큰 반발이 없을 정도의 도발을 일으켜 주목을 끌어왔다. 금전적 지원을 해주면 도발을 멈추겠다고 하는 전략은 북한이 1950~60년대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이후엔 미국과 한국·중국을 상대로 계속 써온 수법이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하면 중국이 신경은 곤두세우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가지고 제재를 가하지는 않을 거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땅굴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항의하면 땅굴을 파지 않았다거나 내정간섭이라고 대꾸하면 그만이다.



나는 오히려 북한이 지금도 중국과 새로운 협상을 진행 중인지 궁금하다. 김정은 방중에 대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땅굴은 그 협상을 북한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가는 지렛대일 수도 있다. 지난 10월 류윈산 방북을 앞두고도 북한은 미사일 실험 엄포를 놓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시점에 류윈산의 방북이 확정됐을 것이다. 북한이 땅굴 작업을 갑자기 중단하고 얼마 후 김정은의 방중이 발표된다면 흥미진진할 것이다.



12일 모란봉악단이 돌연 평양으로 돌아간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대대적으로 공연을 홍보하고 기대치를 높인 다음, 마지막 순간에 행사를 취소함으로써 북한이 중국에 바라는 그 무엇인가를 얻지 못해 화가 났음을 표현한 것이다.



한편 지난 11일부터 남북 당국자 회담이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 회담에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8월 25일 합의문엔 ‘서울 또는 평양’이라고 해놓고 개성에서 만나는 것이나, ‘빠른 시일 내에’라고 해놓고 석 달 반이 지나서 만나는 것이 모두 그런 맥락이다. 북한으로선 나쁠 게 없다. 한국과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중국에 “우리는 너희 말고도 다른 옵션(한국)이 있다”고 암시할 수도 있다.



그럼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북한에 대해 예측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나는 북한이 당분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북한을 조용하게 만들 두 가지 변수 때문이다. 하나는 대중 관계다. 김정은은 자신의 방중에 차질을 빚거나 중국이 북한을 제재할 만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내년 5월 열릴 제7차 노동당 당 대회다. 북한 정권이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당 대회는 매우 큰 규모의, 정치적으로 중요한 행사가 될 것이다. 북한은 이런 당 대회를 앞두고 모든 것이 조용하길 바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와 맞물려 있다. 당 대회를 앞두고 북한 정권은 평양 엘리트들의 상대적인 경제적 번영이 당분간 계속되길 바란다. 여기에는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결정적이다. 올해 10월까지 북한이 수입한 곡류는 작년 같은 기간의 30%에 불과했다. 곡류 수입을 늘리지 않으면 당 대회 기간에 기아(飢餓)가 닥치는 악몽이 펼쳐질 수 있다. 이걸 막으려면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숙청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던 황병서나 한광산이 다시 나타난 걸 보면 김정은이 이제 고위층 인사를 죽이는 걸 그만두고 잠시 유배를 보내는 것 같다. 당 대회가 성공하려면 광범위한 지지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독자 여러분이 북한의 협박이나 핵실험이나 고위층 처형 소식 없이 복된 성탄절을 보내리라 예상한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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