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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작가, 감성 근육 키우는 법을 말하다

중앙선데이 2015.12.13 00:09 457호 8면 지면보기
오빠가 돌아왔다. 이번엔 산문집이다. 지난해 9월『보다』를 시작으로 올 3월에『말하다』, 그리고 지난달『읽다』를 내놓았다. 그러고 보면 작가 김영하(47)는 참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 공언대로 3부작을 1년 남짓한 시간 내에 마쳤고, 지난 1995년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 이래 20년 동안 20권의 책을 집필했다. 새로 나온 책마다 열렬한 환영과 지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부침이 심한 문학계에서 보기 힘든 필모그래피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를 부지런히 읽고 쓰게 하는 동력이 궁금했고, 그 바탕이 되는 감성 근육을 어떻게 키우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는 만나자는 제안에 흔쾌히 응했고 약속시간 10분 전에 나타났다. 서울 연희동으로 이사온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제법 동네 사람 티가 나는 모양새였다.


산문집 3부작 『보다』『말하다』『읽다』 마무리한 작가 김영하

 



이사 온 동네는 마음에 드나요. “네. 처음엔 너무 좋았어요. 뒤에 산도 있고 조용하니 글 쓰기 좋겠지 싶어서. 하지만 저희 집과 바로 맞붙어있는 궁동산 개나리 언덕 공사가 시작되면서 모든 게 달라졌죠. 개나리는 물론 소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어 수십 년간 개발이 불가능한 지역이었는데 갑자기 빌라 신축 허가가 났대요. 토지 형질 변경이 어떻게 가능해진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준공 허가가 나지 않아 일종의 휴전 상태예요.”



많이 힘들겠네요. 서울로 돌아온 게 오랜만이죠. “4년 동안 이탈리아 시칠리아ㆍ캐나다 밴쿠버ㆍ미국 뉴욕 등 해외를 떠돌며 살았고 3년 동안 부산에 있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우주 공간에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당연히 밤에 술 마시자 하는 사람도 없고. 작가는 사람을 너무 안 만나도 안 되거든요.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서 사람도 많이 만나고 사회적인 접촉 공간을 좀 늘려야 되겠다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넓어질 줄은 몰랐죠. 공사 반대에 나서면서 아주 폭력적으로 세상에 던져졌으니까요. 왜 고요한 곳 놔두고 와서 이 고생을 하나 싶다가도 또 의미가 있겠지 하고 있어요.”



사는 곳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잖아요. 추후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작가들이 고난을 잘 견디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여행 갈 때도 계획을 잘 안 세워요. 계획을 안 세웠는데도 여행을 잘 하면 즐거운 거고 안 돼서 망하면 그걸로 글을 쓰면 되거든요. 너무 매끄럽게 잘 돼도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엔 인생도 그런 태도로 사는 것 같아요. 살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넘어진 김에 어디서 왔나 생각도 하고 쉬어도 가고 얘기도 하고. 작가라는 게 원래 대신 겪는 사람이니 겪어야 한다면 겪어야죠.”

김영하 1968년 11월 11일 강원도 화천생. 직업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각기 다른 사투리를 쓰는 6개의 초등학교를 전전했다. 매번 새로운 사람과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덕분에 ‘경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다녔다. 95년 계간 ‘리뷰’에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아랑은 왜』등을 선보였고 2004년에는 한 해 동안『검은 꽃』으로 동인문학상,『오빠가 돌아왔다』로 이산문학상, 단편 ‘보물선’으로 황순원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전임강사로 강단에 서다가 2007년 전업작가로 돌아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새로운 자극 찾아 떠난 도피 … 한국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 얘기를 나눌수록 오늘 인터뷰 장소가 꼭 맞는 것 같았다. 카페 이름도 ‘도피성(逃避城)’. 『살인자의 기억법』 등 센 강도의 스릴러물을 쓴 작가와도, 습관성 도피를 일삼는 유목주의 작가와도 제법 잘 어울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살고 있는 공간이 익숙해지거나 모든 것이 편안한 세상에선 아무것도 쓸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이번 시리즈의 탄생도 그 연속선 상에서 이루어졌다.



『보다』를 열면서 “한동안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고 했죠. “그런데 전파를 제대로 송출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게 찔러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고도 했고요. “해외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까 내가 살아왔던 한국에 대해서 다른 면은 알게 됐는데 실제로 그 밑바닥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 번 알아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고요. 특히 그 무렵에 한국 사회에 변화가 많았던 것 같아요. 거의 모든 게 나빠졌더라고요.”



가장 나빠진 게 뭘까요. “원래 그렇게 많지도 않았는데, 신뢰 자본이 가장 줄어들었죠. 시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기업을 신뢰하고 서로 신뢰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잘 작동하지 않게 됐고, 그러다 보니 불신이 심해졌죠. 아니나 다를까 계속 더 나빠졌죠. 신뢰가 없는 사회에서는 각자 도생 밖에 답이 없으니 굉장히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잖아요.”



얼핏 연결이 잘 되지 않는데요. 문학이 사회가 가진 문제의 답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건가요. “그럼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권리가 아니예요. 싫어하는 표현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면에서 민주주의와 굉장히 깊은 관련이 있어요.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비로소 문학이 발전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최근 들어 전세계에 통용되는 원칙이 무시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러워요. 우리가 모든 소수자의 의견을 알 수는 없어요. 모르죠.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떠들게 놔둬야 하거든요. 떠들어야 아 저런 문제가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 이번 산문집 시리즈는 인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이라는, 그가 생각하는 문학의 본질과 맞닿아 있었다. 현실에 한발짝 더 내딛고 한 발짝 더 깊숙히 들어서기 위해 그는 보는 것, 듣는 것, 경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미국 CBS 드라마 ‘빅뱅이론’에서 영화 ‘스타워즈’ 속 캐릭터 중 누가 더 센가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괴짜 과학자 셸든과 레너드를 보면서 기사(騎士)소설 속 이야기에 파묻혀 사는 돈키호테를 떠올리다니. 거기에 돈키호테의 미친 짓이 그보다 덜 미친 독자들의 호응이 있어 성립할 수 있었다는 살은 그가 아니면 누가 붙일 수 있을까. 우리 모두 때로 극중 이야기와 현실을 혼동하며 살지만 생각이란 놈은 말하지 않으면,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흩어져 사라진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처음에 어떻게 3부작을 구성하게 됐나요. “『보다』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생각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말하다』는 주로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강연을 엮은 거구요. 사실 처음에 글을 쓸 땐 왜 쓰는지도 모르고 썼어요. 그런데 지난 몇 년 사이에 생각이 많이 형성됐어요. 글을 쓰면서 인간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자기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또 문학이라는 게 인간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 등등. 원래 낭독회 말고 강연 같은 건 안 했는데 2010년 TEDxSeoul에서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이란 강연을 하고 그게 24개 언어 자막이 달리고 생각지 못한 반향을 일으키는 걸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은 거죠. 『읽다』는 오래전부터 생각한 사랑 고백 같은 거예요.”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당연히『읽다』죠. 저는 쓰는 삶을 살잖아요.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읽지 않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아무도 없고요. 또 저는 제가 읽은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야 부모가 저를 만들었겠지만 성인으로서 자아는 읽은 게 만드는 거죠. 켜켜이 쌓여서 지층처럼 내면을 이루고 있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랄까. 그런 측면에서 읽기가 최근 재발견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읽기의 재발견이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이를테면 한때 걷기는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잖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그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됐죠. 읽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입시에 필요해서 읽었고 인생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읽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삶을 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거죠. 옛날에는 읽을 게 책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읽을 게 너무 많기 때문에 독서를 한다는 건 굉장히 큰 맘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 됐죠. 결단을 내려야 할 수 있는 일인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라 생각해요. 읽기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가장 애착 가는『읽다』는 오랫동안 준비한 ‘사랑고백’ 그래서 소설을 쓸 때도 등장인물이 읽었음직한 소설을 쌓아놓고 책을 쓰는 건가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몇 년 됐어요. 메소드 연기법처럼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상상해야 하는 거잖아요. 우리나라 드라마 보면 어릴 적 트라우마가 그 인물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거 말고도 인간을 만드는 데 작용하는 게 많아요. 그 인물의 필터로 책을 다시 읽으면 새로운 것들이 보여요. 예를 들어 살인자가 『반야심경』을 읽으면 ‘공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경계도 없네, 그러면 죄도 없겠네’라고 생각하는 거죠.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될 일 사이의 경계가 없으니까요. 말하자면 무책임의 텍스트를 읽는 건데 그게 무서운 거죠.”



그렇다면 소설과 산문 쓰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책에서는 서로 다른 칼을 사용하는 것에 비유했는데. “사실 산문을 쓰는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이 시리즈도 미루고 싶을 때마다 이걸 얼른 끝내야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다그치며 왔으니까. 산문은 너무 직접적인 반면 소설은 훨씬 흥미롭고 복잡한 일들이 벌어져요. 거기서 주는 만족감이 있거든요. 제가 만든 캐릭터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왜 회사에서도 처음에 입사하면 부장님이 일단 다 잘 해주잖아요. 6개월쯤 겪어봐야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등장인물도 그래요.”



그럼 요즘엔 어떤 칼을 갈고 있나요. 신작이 로맨스란 얘기도 있던데. “로맨스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는데 딱 ‘로맨스다’라고 나왔죠(웃음). 저는 원래 로맨스를 쓰려고 많이 시작해요. 남녀가 나오는데 나중에 서로 죽이고 이래서 문제지, 늘 야심은 있어요. 로맨스가 실은 그 사회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거든요. 이 사회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느냐 어디부터 위반이라고 보느냐 등 그 사회의 마음 상태 같은 걸 드러낸다고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고전이 대체로 로맨스기도 하고요.『안나 카레리나』라든가『마담 보바리』,『오만과 편견』도 그렇고. 이렇게 좋아하는데 언젠가 한 번 써야죠.”



지금 언급한 것들이 ‘내 인생의 책’인 셈인가요. “그건 늘 달라져요. 그게 읽기의 매력 아닐까요. 자기가 높게 평가하는 책이 계속 바뀌는 거니까. 서가를 보면서 책이 바뀌어나가는 걸 보는 것도 독자로 살아가는 즐거움인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걸 보는 거잖아요. 예전에는 이 책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면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이 해결됐거나 성숙한 거잖아요. 옛날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책이 좋아진다면 자기 안의 다른 부분을 발견한 거고. 사람들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건 뭔가 매개를 통해서만 보이는 거거든요.”



마지막으로 감성 근육을 키우기 위한 비법 좀 알려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쓰는 게 중요해요. 쓰지 않으면 느낀 것도 금방 사라지니까요. 또 씀으로써 더 풍부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더 잘 표현하기 위해 더 잘 느끼려고 노력하죠. 맛있는 걸 먹었으면 그 맛을 글로 표현해 봐야 하는데 요즘엔 사진으로 다 끝내잖아요. 와 맛있다, 찰칵! 그럼 나중엔 느낄 수 없게 되요.”



그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강의 같았다. 많이 보고, 듣고, 읽은 그는 말하기에 거침이 없었고 마치 이야기를 토해내듯 강약을 조절할 줄 알았다. 돌아온 오빠는 조금 변했다. 이제 더 이상 귀걸이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청춘은 아니지만 여전히 젊은 그는 지금의 얼어붙은 청춘을 걱정했고, 쉽게 분노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맞서는 법으로 자기 안의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글쓰기를 권했다.



정작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요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쓰고 있어도 2~3년은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소설 대신 15분이면 맛을 보고 반응이 오는 요리를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처럼 작가이자 요리사, 기자이자 댄서 같이 삶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ㆍ중앙포토ㆍ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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