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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보고] 500만 나홀로족의 세계

온라인 중앙일보 2015.12.13 00:02
[월간중앙]

즐거운 고독 찾는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1인 식당·1인 술집·1인 미용실 등 새로운 문화공간 창출…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되면 1인 가구 늘어도 삶의 질은 떨어지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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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족을 겨냥한 오픈키친(Open Kitchen) 형태의 신종 식당. 홀로 사는 싱글족들이 한데 모여 직접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간다.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에 따르면 외로움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론리니스(Loneliness), 또 하나는 솔리튜드(Solitude)이다.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론리니스이고, 스스로 선택한 긍정적 혼자됨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은 솔리튜드이다.” 국내 763만 가구 중 1인 가구, 즉 나홀로족이 500만을 넘어섰다. 연평균 3.5%씩 증가한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에는 3가구 중 1가구가 혼자 사는 집이 된다. 우리 사회에 나홀로족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겨냥한 상품과 맞춤 서비스시장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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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족들을 위한 식당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 혼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서울 연남동의 <비노라르고>는 바(bar) 형태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 사진·김보현


직장인들로 거리가 부산한 평일 오후 8시. 퇴근 후 저녁식사를 뭘로 할까를 고민하던 최경식(33) 씨는 혼자서 서울 연남동의 자그마한 와인바를 찾았다. 가로·세로 50㎝ 정도의 아담한 간판이 걸린 이 가게는 주변 가게들과 달리 눈에 잘 띄지 않는 2층에 있다.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개방형 부엌과 연결된 ‘바(bar)’형 테이블에는 6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이곳을 찾은 손님 3명은 각자 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다룬 일본의 인기드라마 <심야식당>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고독’이라는 소재를 식당을 배경으로 풀어내 인기를 끈 이 드라마는 1인 가구의 큰 공감을 얻었다.

이 와인바는 그날의 재료에 따라, 손님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 “손님, 파스타는 어떤가요? 오늘은 봉골레 파스타를 합니다. 원하시는 메뉴 있으면 말씀하세요. 만들어드려요.”

최씨는 바로 앞에서 음식을 만드는 주인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3년째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하상우(38) 씨는 개업 전부터 개방형 주방을 갖춘 와인바를 구상했다고 한다. 혼자 가게를 찾는 손님과 마주보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예전에는 일을 마치고 혼자 술 한잔하려고 하면 갈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요즘에는 혼자 온 사람들을 위한 가게가 많이 생겼다”며 술잔을 들이켰다.

소비성향 80.5%로 전체 가구 평균 73.6% 웃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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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족들이 SNS를 매개로 만나 함께 영화를 감상하기도 한다.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과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모임들이 늘어간다.



연남동 주변으로는 혼자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1인 화로 구이집이 늘면서 자연스레 ‘1인 식당촌’이 형성되고 있다. ‘혼밥(혼자 밥을 먹는다)’, ‘혼술(혼자 술을 마신다)’ 문화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혼자 밥 먹는 사진을 찍어 올리는 ‘혼밥’ 해시태그로 링크된 것만도 1만8천여 개에 이른다. 1인 미용실, 1인 식당 등 나홀로족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와 문화 콘텐트도 증가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1인 가구는 500만을 넘어섰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를 보면 전체 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연평균 3.5%씩 증가해 2035년에는 34.5%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763만 가구에 해당하는 수치로 세 집 건너 한 집은 1인 가구인 시대가 온다는 의미다.

국내의 경우 35년 동안 1인 가구 비율이 22.3%나 증가했다. 사회 구성원의 주체로 부상한 1인 가구는 ‘포미(For Me)족’, ‘싱글슈머’, ‘솔로이코노미’ 등 수많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도 막강해졌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1인 가구는 자기만족을 위한 ‘가치소비’에 투자하는 비중이 높다. 나홀로족은 외로움을 문화생활로 달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취미생활이나 자기계발에 대한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의 소득 대비 소비성향은 80.5%다. 전체 가구 평균인 73.6%를 웃도는 수준으로 1인 가구가 소비생활에 보다 적극적임을 보여준다. 2013년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의 20대 후반부터 40대 전반의 500가구를 조사한 결과 1인 가구의 구매력이 다인(多人)가구의 구매력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의 월가처분소득은 80만5천원으로 73만5천원인 3~4인 가구보다 7만원이 높았다. 그만큼 나홀로족은 양육·육아·부양가족 등에 대한 부담이 적다.

이러한 새로운 기류에 맞춰 시장에서도 나홀로족을 겨냥한 제품이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국내 가구업체인 H사는 “회사 매출의 25%가량을 싱글족이 차지한다”고 밝혔다. 올해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제품의 매출이 더욱 늘어 지난해보다 27%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케아를 비롯한 가구 브랜드들은 혼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해 조립이 가능한 형태의 가구 등 신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목돈을 들여 제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1인 가구를 고려해 제품을 대여해주는 ‘공유경제’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신촌의 명물거리 골목 2층에 위치한 만화카페 ‘피망과 토마토’는 기존의 ‘만화방’ 하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만화카페라고는 하지만 만화방보다는 카페에 더 가깝다. 혼자 시간을 보내려고 온 손님들은 이곳에서 만화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노트북을 들고 와 드라마를 보기도 하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소파에 누워 잠시 눈도 붙이고 식사를 하기도 한다. 이곳은 인근 대학교의 학생들은 물론, 혼자 사는 젊은 직장인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헤어 디자이너에게 털어놓는 남자친구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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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주변에서 성업하는 1인 미용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고객에게만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인기를 누린다. / 사진·중앙포토

가게 주인인 황순욱(34) 씨는 “인근에 대학교가 많은 만큼 공강(空講)시간이나 휴일에 혼자 오는 대학생들이 많다”며 “추석·설 등 명절에도 정상영업을 하기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학생들이 가게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근처에 지방에서 올라온 자취생들이 많이 살고 있어 외로움을 달래러 종종 이곳을 찾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황씨는 가게 출입문에 ‘친구 추가 혹은 상담’ 문구와 함께 자신의 휴대폰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붙여놓았다. 혼자서 고민을 다 해결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상담사 역할을 해주기 위해서다.

우리 사회의 1인 가구 증가는 소비 형태를 변화시킴은 물론, 다양한 생활문화 콘텐트도 생산해내고 있다. 대학가 주변에서 성업 중인 1인 미용실이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지하철 6호선 상수역 인근에 위치한 한 1인 미용실은 헤어 디자이너가 직접 실내·외 인테리어에 참여함으로써 개성 넘치는 점포를 꾸밀 수 있었다. 독특한 외관만 봐서는 카페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디자이너 수만 10명 안팎인 대형 미용실들과는 달리 1인 미용실은 디자이너가 단 한 명뿐이다. 100% 예약제로 운영되며 오로지 한 명의 고객만 상대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1대 1서비스’가 특징인 1인 미용실은 디자이너는 머리를 손질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손님과 소통한다. 공장처럼 운영되는 대형 미용실과 차별화된 모습이다.

이곳을 찾은 김희영(22·여) 씨는 “1인 미용실에서는 디자이너가 나에게만 집중해주니 더 신뢰가 간다”며 “일반 미용실에 가면 머리를 하는 동안 잡지나 읽으며 지루하게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1인 미용실에 가면 디자이너와 남자친구 얘기에서부터 시시콜콜한 고민 상담까지,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떨다 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대학가에 위치한 일부 1인 미용실은 2~3주 전에 예약해야 머리를 손질할 수 있을 정도로 나홀로족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단골손님들이 머리를 손질하러 오면서 아예 다음 예약까지 하고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혼자 요리하는 게 번거롭고 귀찮아서 대충 사먹는다는 것도 옛말이다. ‘쿡방(요리하는 방송)’의 인기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나홀로족이 늘고 있다. 그러나 막상 혼자 요리를 하려다 보면 구입해야 할 재료가 많을뿐더러 조리기구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이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요리에 관심이 많은 나홀로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오픈키친(공유부엌) 형태도 많이 생겨났다. 나홀로족들이 부엌을 공유하고 서로 소통하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도 형성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제2지구 재개발구역에는 휑한 거리 가운데 청년들의 사랑채로 불리는 ‘언뜻 가게’가 자리하고 있다. ‘언뜻 가게’는 천휘재(31) 씨를 비롯해 청년 세 사람이 함께 살 집을 구하다가 방이 세 개 딸린 집에 함께 거주한 것이 유래다. 아현동은 비교적 저렴한 월셋값 때문에 나홀족들이 모여 사는 형태의 셰어하우스가 많다.

천씨는 거실에 ‘아현동 쓰리룸’이라는 이름으로 개방공간을 만든 뒤 온라인을 통해 식사할 사람을 모집하는 등 소셜 다이닝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이 발전하면서 가게가 된 것이다. 상업적인 공간이긴 하지만 일종의 개방된 거실 형태로 운영된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거실 분위기가 나는 오픈키친(Open Kitchen)에서 자유롭게 요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둘러앉아 함께 식사한다. 기본적인 조리도구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시간당 이용료(약 1만원)만 내면 누구나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사회적 관계 통해 정서적 안정 찾아

인근에 사는 청년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이곳을 이용하고, 또 모임을 기획해서 함께 식사하기도 한다. 이른바 요즘 유행하는 ‘킨포크(kinfolk) 라이프’다. 킨포크족은 ‘낯선 사람들과의 즉석 만남을 통해 음식을 나눠먹고 즐기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가구 형태는 1인 가구이지만 주변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천씨는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도 5~6년 됐지만 그동안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특별히 애착 같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3년 전 ‘아현동 쓰리룸’을 연 뒤로는 이곳이 제2의 고향이라는 느낌마저 갖게 됐다”며 “주변 사람들도 이 공간을 공유하면서 혼자 살지만 덜 외롭다고도들 한다. 이곳을 통해 또 하나의 사회관계망을 형성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홀로족들의 취향을 공유하는 소비문화는 생산과 소비의 경계도 모호하게 만든다.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퇴근길 책 한잔’이라는 독립서점은 북펍(Book&Pub: 북카페와 펍의 형태를 합친 공간)이다. 퇴근길에 오가다 이곳에 들러 책을 구입하고 앉아서 술 한잔을 하기도 한다.

가게 주인인 김종현(33) 씨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서점을 비우게 될 때는 SNS를 통해 1일 책방지기를 모집하기도 한다. 그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게를 맡기지만 1일 책방지기의 개성에 따라 책방 분위기도 달라진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씨는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아 참가비를 받고 오프라인 토론모임을 운영하기도 한다. 서점만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운 만큼 수입에도 적잖이 도움이 된다. SNS를 통해 모임을 공지하면 많을 때는 10여 명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는 “모임 이름은 ‘자발적 거지’로 정했다. 쳇바퀴 도는 듯한 현대사회에서 어차피 힘들게 혼자 살 거라면 ‘자발적 거지’가 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는 기술을 토론하는 ‘모의 사표쓰기’ 모임 등 혼자 온 사람들끼리 모여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홀로서기 문화가 확산되면서 ‘혼자됨’은 도태가 아니라 자립으로 받아들여진다. 나홀로족의 욕구를 반영하는 맞춤형 문화서비스와 그들을 겨냥한 상품 개발도 열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유통학회 주최로 열린 유통 세미나에서도 1인 가구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전략이 논의됐다.

이날 참석한 식품업체들은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른 1인 가구의 뉴 트렌드에 공감하면서 “1인 가구가 사회적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해 사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데 인식을 함께했다. 산업연구원(KIET)은 “산업계가 한시적 서비스를 넘어 맞춤형 서비스 기반을 구축해야 1인 가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저자이자 국내의 대표적 ‘1인 가구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교수는 1인 가구일수록 사회적 유대가 더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친밀성은 인간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이지만 친밀한 관계가 반드시 가족에 한정될 필요는 없다”며 앞으로는 1인 가구가 주거공동체 등 사회적 관계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으려 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개인의 자율성과 안전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는 나라에서는 1인 가구가 늘어도 삶의 질은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김보현 월간중앙 인턴기자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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