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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한 끼 식사

온라인 중앙일보 2015.12.13 00:01
[뉴스위크]

52만원에서 180만원까지 돈이 아깝지 않은 세계 최고급 레스토랑들의 주방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말 영국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런던에 새로 생긴 스시 바 ‘아라키(Araki)’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좌석이 9개뿐인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으로 알려졌다. 아라키(소유주이자 주방장인 미수히로 아라키의 이름을 땄다)의 1인 저녁 식사 값은 약 450달러(약 52만원)다. 사케와 다른 서비스는 포함되지 않은 가격이다. 그런데도 아라키의 좌석 9개는 몇 주 전부터 예약이 꽉 찬다.

미수히로 아라키는 이 레스토랑의 음식 값이 비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남아공산 오징어와 아일랜드·포르투갈산 다랑어, 이탈리아 알바산 송로버섯 등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런던에서 가장 맛있는 스시와 해산물 요리를 내놓는다. 손님에게 최상의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꽤 괜찮은 다랑어를 퇴짜 놓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음식 맛이 어떻든 1인당 450달러는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갑부들도 한 끼 식사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의구심을 가질 만한 액수다. 소비자가 매우 비싼 음식을 먹을 때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설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최고급 음식은 일종의 사치품으로 값이 부풀려진다. 그런 음식은 희귀한 반면 그것을 먹어보려는 부유하고 모험심 많은 소비자는 갈수록 많아지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 중 몇 곳에서 가격 대비 값어치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아라키의 비싼 음식 값을 생각하면 이 식당이 런던에 사는 부유한 국제적 인사들의 사설 클럽처럼 생각될지 모른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스페인 이비사 섬의 ‘서블리모션(Sublimotion)’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이 레스토랑의 20코스짜리 세트 메뉴 가격은 1인당 약 1600달러다. 이곳의 소유주이자 주방장인 파블로 론체로는 페란 아드리아처럼 모더니스트 퀴진 전문가다(아드리아가 운영하던 레스토랑 ‘엘 불리’는 2011년 문을 닫을 때까지 세계 최고로 꼽혔다).

서블리모션은 모든 면에서 초현실적이다. 홀에는 커다란 흰색 테이블 1개와 흰색 의자 12개가 놓여 있다. 손님들이 자리에 앉으면 테이블 주변에는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베르사이유 궁전 내부부터 북극의 빙산까지 극적인 이미지가 시시각각으로 펼쳐지고 다양한 배경음악이 흐른다(이 효과를 위해 막후에서 약 30명이 작업한다). 그리고 항공기 승무원 같은 복장을 한 웨이트리스들이 20코스짜리 모더니스트 요리를 서빙한다. 액화질소로 냉동시킨 올리브 열매들이 빨랫줄에 걸려 나오고 푸아그라 도넛은 풍선에 실려서 등장한다. 조개 요리는 바닷속에 잠긴 듯 보이는데 이때 손님들 주변에는 해파리가 헤엄치는 듯한 이미지가 투영된다.

론체로는 이것이 “세계 최초의 미식 쇼(gastronomic show)”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이 레스토랑이 프랑스 요리사 폴 파이레가 중국 상하이에서 운영하는 ‘울트라바이올렛’(Ultraviolet, 이곳의 저녁 식사 비용은 1인당 약 600달러다)을 흉내 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 요리의 고향 프랑스는 어떨까?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 ‘라르페주(L’Arpège)’부터 살펴보자. 이 레스토랑에 가면 ‘쇠고기는 어디 있어요?’라고 묻고 싶어질지 모른다. 저녁 메뉴가 채소 요리 위주로 짜여져 값이 비싸진 않겠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1인당 약 425달러다. 라르페주는 프랑스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으로 꼽힌다.

나는 25년 전 처음 그곳에서 식사를 했다. 주방장 알랭 파사르는 당시 전도유망한 젊은 요리사였지만 예전에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떠올리는 요리를 선보였다. 20세기 말 영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일어난 후 그는 적색육 요리를 내놓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그는 최상급 채소에 초점을 맞췄다. 프랑스 북부의 채소밭 3군데서 농작물을 재배해 매일 고속열차 TGV로 파리까지 운송한다.

그의 대표 요리인 겨자 아이스크림을 얹은 토마토 수프는 누구든 지금까지 먹어본 중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꼽을 만하다. 파사르는 해산물 요리도 자주 내놓고 가끔씩 가금류 요리도 선보인다. 하지만 최상급 채소를 숭배하는 그의 정신과 채소 요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능력은 세계 오트 퀴진(최고급 요리)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오트 퀴진 요리사로 꼽히는 알랭 뒤카스도 최근 파사르를 본떠 자신의 대표 레스토랑인 파리의 ‘르 플라자-아테네(Le Plaza-Athénée)’ 메뉴에서 육류 요리를 없앴다. 라르페주에서의 식사 경험은 가히 한 끼 식사가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할 만하다. 그러니 그 높은 가격이 전혀 터무니없진 않다.

초고가의 레스토랑이라고 모두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뒤카스의 레스토랑 중 가장 먼저 미슐랭 별 3개를 획득한 모나코의 ‘르 루이 켕즈(Le Louis Quinze, 루이 15세)’는 전통 프랑스 요리를 내놓는다. 최근 리모델링을 끝낸 이 레스토랑의 바로크식 홀 중앙에는 이동식 서빙 설비가 있다. 대형 그릴에 파이프 오르간의 파이프들을 연결해 놓은 듯한 모양이다. 손님들은 요리사들이 음식에 마지막 손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요리는 단순하고 맛있으며 비싸다. 볼락 젤리 위에 이탈리아 산레모산 생새우를 얹고 중국산 최상급 슈렝키 캐비어를 듬뿍 곁들인 요리(170달러)나 회향과 감귤을 곁들인 농어 요리(121달러)를 먹어보라.

이탈리아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 ‘에노테카 핀키오리(Enoteca Pinchiorri)’(피렌체 소재)도 전통을 고수하는 레스토랑이다. 1993년 미슐랭 별 3개를 받은 주방장 아니 페올데는 기막힌 프랑스식 요리를 내놓는다. 하지만 부자 손님들을 이곳으로 이끄는 것은 그녀의 요리뿐이 아니다. 그녀의 남편 조르조 핀키오리는 오랫동안 고급 와인에 심취해 20세기 최고 빈티지 와인을 13만 병이나 갖고 있다. 조르조는 손님들에게 이탈리아 와인과 프랑스 와인을 나란히 내놓고 맛을 비교해 보라고 권하길 즐긴다. 예를 들면 1985년산 사시카이아와 1982년산 무통 로쉴드를 함께 내놓는다. 돈이 많이 들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요즘 고급 요리계는 북유럽 국가들이 지배하는 만큼 이 지역의 유명 레스토랑들은 음식 값이 꽤 비싸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노마(Noma)’의 천재 요리사 르네 레드제피는 얼음 위에 살아 있는 새우를 얹어 내놓거나 개미를 흩뿌린 요리를 선보여 놀라움을 주곤 한다. 그 역시 완벽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북극권 바다에서 나는 성게부터 노르웨이 트론트하임 근처의 차가운 바닷물에서 나는 통통한 랑구스틴 새우까지.

노마에서 20코스짜리 저녁(약 250달러)을 먹고 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맛의 세계를 경험한 듯한 기분이 든다. 노마는 내년 초 몇 달 동안 호주 시드니에 팝업(한시 운영) 레스토랑을 열 계획이다. 이 레스토랑의 1인당 식사 비용은 약 360달러로 호주에서 가장 비싸다. 하지만 호주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10주 동안 문을 열 이 식당의 예약이 시작되자 총 5600석의 좌석이 90초 안에 매진됐다.

음식 혁명이 진행중인 또 다른 북유럽 국가 스웨덴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은 요리사 비요른 프란첸(Björn Frantzén)이 운영하는 동명의 식당이다. 미슐랭 별 2개를 받은 스톨홀름의 이 레스토랑은 1인당 음식값이 약 260달러다. 프란첸은 직접 재배하는 농산물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지만 꼭 북유럽산 재료를 고집하진 않는다. 품질만 우수하다면 세계 어떤 지역에서 나는 재료라도 상관없다. 그의 레스토랑에서는 하루 저녁에 23명의 손님만 받을 수 있다. 프란첸은 일본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메뉴에 있는 ‘사시미’라는 이름의 요리는 스칸디나비아식이다. 스웨덴산 생 랍스터에 레몬과 바닷말 소스, 순무와 강판에 간 홀스래디시를 곁들였다.

또 다른 노르딕 요리를 원한다면 마그누스 닐손의 ‘파비켄(Fäviken)’을 추천한다. 스톡홀름에서 수백 ㎞ 북쪽에 있는 이 레스토랑은 약 90㎢ 의 대지 한가운데 있다. 파비켄은 비요른 프란첸보다 음식 값이 약간 싸며 이곳에서 사용하는 농산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소금에 살짝 절인 자연산 송어의 곤이를 말린 돼지 피로 만든 껍데기에 싼 요리나 야구방망이 크기의 뼈를 식탁 위에서 두드려 깬 다음 거기서 뽑아낸 골수로 만든 요리 등 다른 곳에선 접하기 어려운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이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은 음식뿐 아니라 음식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꿔줄 만한 경험을 산다. 값이 매우 비싸긴 하지만 어떤 대도시의 번지르르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평범하고 기억에 남지 않을 음식값의 3~4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꿔줄 만한 식사비로 수백 달러를 쓴다 해도 현명한 소비가 아닐까?

글= 뉴스위크 BRUCE PALLING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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