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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당직비 올려주랬더니 수당 줄인 병원

중앙일보 2015.12.11 02:48 종합 1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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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A종합병원 전공의 B씨는 월급명세서를 받아본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급여 내역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위험수당·특진수당 등으로 나눠 받던 9가지 수당은 ‘고정시간외 수당’이란 한 가지 항목으로 통폐합돼 있었다. 수당 총액도 80만원가량 줄어 있었다. B씨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병원 측에 물었지만 “내부 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위험수당 등 뭉뚱그려 80만원 깎아
동의 없는 임금 개편 위법이지만
“찍히면 의사 생활 애로” 항의 못해

 병원 측의 급여내역 변경은 통상임금 제도 개편 후 월급 총액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선제적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대전고법 판결이 결정적이었다. 재판부는 건양대병원에서 근무하던 전공의 최모(29)씨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연장·야간근로수당 등을 받지 못했다”며 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0개월간 지급하지 않은 수당 3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병원 측은 근무시간에 관계없이 월 30여만원씩 지급하던 당직비를 최고 200만원까지 올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송명제 회장은 “급여내역을 재조정해 임금 총액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병원 측의 꼼수”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A병원 측은 “당직비를 규정대로 지급하면 전공의 연봉이 1억원을 넘어간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동의 없이 월급명세서를 바꾼 것은 잘못”이라면서도 “위험수당 등은 병원이 전공의 배려 차원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늘어난 당직비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동사건 전문 박재원 변호사는 “취업 규칙 변경 시 근로자의 과반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94조 1항을 어겼기 때문에 위법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A 병원의 연봉 관련 협상은 8개월째 진전이 없고 협상에 참가한 전공의도 전체 600여 명 중 3명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공의는 “불만은 있지만 한 번 찍히면 앞으로 의사 생활이 괴로워질 수 있어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종합병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C종합병원은 지난 4월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A병원과 같은 형태의 임금개편안을 만든 후 동의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거부할 경우 사유서를 요구했다. C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는 근로자와 교육생이 합쳐진 개념”이라며 “근로자의 기준에 맞게 당직비를 일괄 지급하라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법률자문을 맡은 D법무법인은 “98년 대법원 판례에 ‘전공의는 병원 측 지휘 감독아래 노무를 제공하는 근로자’라고 명시돼 있다”고 했다.

 한편 지난 3일 본회의를 통과한 ‘전공의 특별법’에 대해서도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원래 법안 중 ‘연장·야간 근무 등을 하는 전공의에게 통상임금의 2분의 1 이상을 가산해 당직비로 지급한다’는 내용이 빠졌기 때문이다. 송명제 회장은 “대형병원의 압력 행사로 전공의 특별법이 반쪽짜리 법안이 됐다”고 말했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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