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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who&why] 박 대통령, 김무성은 3초 원유철에겐 35초 ‘공항인사’

중앙일보 2015.12.07 03:04 종합 1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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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5박7일간의 유럽 순방을 마치고 5일 오전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환영 나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는 짧게 인사만 나눈 반면 원유철 원내대표와는 30초가 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원 원내대표, 김 대표, 박 대통령,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박종근 기자]


프랑스·체코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지난 5일 오전 9시50분쯤 성남 서울공항에 착륙했다. 전용기 앞문에 트랩이 설치되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나란히 섰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박 대통령이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내려왔다. 순서에 따라 김 대표의 손을 먼저 잡았다. “외교 일정에 고생하셨습니다”(김 대표), “여기에서도 수고가 많으셨습니다”(박 대통령)의 인사를 주고받았다. TV 화면에 비쳐진 시간은 3초.

김 대표에겐 의례적“수고하셨다”
원 원내대표의 국회 상황 보고엔
표정 밝아지며“노력해달라”격려

영접 나온 인사에게 대조적인 모습
여권 “김무성·친박 사이 거리 암시”
노동법안 조속 처리 압박 함의도

 
 김 대표에 뒤이어 원 원내대표가 인사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원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손을 잡자마자 의례적인 인사가 아닌 ‘국회 상황 보고’를 했다. “사명감을 갖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처리했습니다… 경제활성화 쟁점법안 3개 중 2개를 처리했습니다…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도 첫 단추는 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등등. 박 대통령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앞으로도 더 노력해 달라”는 격려도 했다고 한다. 손을 맞잡은 대화는 35초 동안 이어졌다. 이러다 보니 그 옆의 김 대표는 머쓱한 표정이었다.
 
 

 3초와 35초. 이 차이에서 정치적 함의를 찾는 얘기가 6일 여권에서 무성했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당 대표 대신 원내대표와 더 긴 시간을 얘기했다는 게 심상한 일은 아니다”며 “친박·비박 간 거리를 암시하는 시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공항(空港) 정치라는 것이다.

 실제로 청와대는 서울공항 입출국 행사에 이전 정부와 달리 의미를 부여해왔다. 대통령의 입출국을 TV로 생중계하는 것도 10여 년 만에 현 정부가 되살려낸 관행이다. 대통령의 부재와 복귀를 알려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박 대통령은 서울공항 입출국 행사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남기는 일에도 능숙하다. 지난달 29일 프랑스로 출발할 때도 공항에 나온 여당 지도부에 “그러면 믿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로 새누리당은 한·중 FTA 비준 동의안 처리에 총력전으로 나섰다. 세월호 사고 1주기였던 지난 4월 16일 남미로 출국할 땐 서울공항 출국 행사를 비공개로 했다.

 TV로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5일 김 대표, 원 원내대표와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 건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친박계 인사는 "해가 바뀌고 총선 공천이 다가오면 친박계와 비박계인 김 대표 사이는 험악해질 수밖에 없다"며 “박 대통령이 김 대표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반면 원 원내대표는 '신박(新朴)'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친박 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도 “잠복해 있지만, 공천 룰 싸움이 본격화하면 당·청 관계가 얼어붙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 정무특보 출신인 윤상현 의원은 6일 “당내 대선주자들이 결기를 보이지 않는다”면서 김 대표를 향해 ‘수도권 험지(당선이 어려운 지역구)’에 출마할 것을 촉구했다.

 여권 관계자는 “예산안 등은 원내대표가 처리해야 하지만, 노동개혁은 좀 다르다”면서 “김 대표가 노동개혁에 앞장서겠다고 공언해온 만큼 박 대통령으로선 관련 법안들의 처리를 압박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 사이엔 공항 영접을 둘러싼 해프닝도 있었다. 지난 9월 30일 박 대통령이 미국에서 귀국할 때 김 대표가 영접에 나가지 않은 일이 있다. 당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때문에 당·청 관계는 최악이었다. 여권 내에선 “청와대가 안 불렀다” “김 대표가 불참했다” 등의 관측이 쏟아졌다. 김 대표는 주변에 “당시 둘째 사위 건(마약사건 연루) 때문에 어수선해 양해를 구하고 안 나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글=남궁욱·정종문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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