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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환의 제대로 읽는 재팬] 연금·상속세로 소득 평준화 … 일본 자민당 56년 집권의 힘

중앙일보 2015.12.07 02:51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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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는 “한·일 관계가 나쁜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관계를 더 좋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은 만년 여당이다. 1955년 보수당인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결성된 이래 정권을 잃은 기간이 4년밖에 안 된다. 93~94년 호소카와(細川)·하타(羽田) 내각의 10개월과 2009~2012년 민주당 정권의 3년3개월을 빼곤 단독 또는 연정으로 집권했다. 자민당 60년사가 곧 전후 일본의 궤적인 셈이다. 세계 민주 국가에서 찾기 힘든 1당 지배체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총재(총리)에 당과 내각의 인사권·공천권이 쏠려있기도 하다. 내각책임제 하의 총리가 대통령 중심제의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후쿠다 전 총리가 본 자민당 60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배려 평가
“일본이 가장 사회주의적” 농담도
1990년대 소선거구제 변경 이후
파벌 힘 약해지고 금권부패 줄어


자민당 장기 집권의 배경은 무엇일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왜 ‘1강(强)’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일까.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79) 전 총리를 도쿄의 개인 집무실에서 만나 지난달 창당 60년을 맞은 자민당의 과거와 현주소에 대해 들어보았다. 76~78년 총리를 지낸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의 아들인 후쿠다 전 총리는 2007~2008년 총리를 역임하며 일본 최초의 부자(父子) 총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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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민당 장기 집권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책이 국민의 신뢰를 받은 것이 컸다. 자민당이 국민에 좋은 일을 했다고 평가 받았다. 그 결과 국민이 선거에서 지지해주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인가.

“자민당 창당 2~3년이 지나 국민의 장래와 건강을 생각해서 연금과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하고 일할 수 있는 기초가 생겼다. 한국(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중국은 아직 보험·연금제도가 충실치 않다고 생각한다. 발전할 때 서둘러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은 60년부터 고도성장을 시작했고, 이때 제도를 만들어 성공했다.”

- 다른 성공 요인을 꼽는다면.

“자민당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배려해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농촌 지역에도 비교적 여러 서비스를 제공했다. 농촌도 생활 자체는 도회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제도가 50년 가까이 지속됐다. 적어도 자민당 결성 이래 경제 전체가 순조롭게 발전했다. 창당 당시 일본은 세계 7~8위 정도의 경제 규모였지만 68년에는 미국에 이은 제 2의 경제대국이 됐다. 자민당이 지지를 받은 것은 여기에 있다. 자민당의 부패 사건도 있었지만 그 세력이 당 안에서 가능한 한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자민당의 자정(自淨)작용 기능도 국민의 평가를 받았다. 자민당은 공평한 당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른 하나는 세제(稅制)다. 자산은 1대(代)에 한한다고 하는 기본적인 사고가 있었다. 엄격한 상속세와 증여세가 있었다. 소득세도 과거에는 소득이 높으면 70%의 세금을 거뒀다. 농담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나라는 일본이라고 중국인이 말할 정도로 소득의 평준화가 진행됐다.”

- 자민당 안에서는 경(輕)무장-경제 중시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 노선과 안보와 자주헌법 중시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 노선의 양대 축이 지속돼왔다. 요시다 노선은 미일 동맹과 더불어 아시아도 중시하지만 기시 노선은 미일동맹에 치우친 느낌을 주고 있다.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파벌은 오른쪽, 저 파벌은 왼쪽이라고 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이 모여 하나의 그룹(파벌)을 만든다. 정책으로 그룹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현재 아베 총리의 출신 파벌인) 세이와카이(淸和會) 안에는 매파도, 비둘기파도 있다. (파벌은) 그 시기 리더에 의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매파로 보여지기 때문에 세이와카이도 그런 거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컨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은 미일 동맹 중심이라고들 하지만 당시는 미국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세계 정세가 이라크 전쟁을 포함해 미국 중심으로 움직였다. 북한·아시아 문제를 생각할 때 미국과 상의해야 했다. 한국도 그러했다고 본다. 당분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 90년대 중반 한 선거구에서 3~5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가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자민당 파벌의 힘이 약화되고 정책 논쟁이 없어졌다고들 한다. 선거제도 개혁이 일본 정치를 어떻게 바꾸었나.

“중선거구제가 좋았다고 하지만 금권(金權) 부패 현상이 일어났다. 하나의 선거구에 자민당 후보가 4~5명이 출마하면 정책은 차이가 없고 서비스 (제공) 싸움밖에 없다. 돈이 든다는 얘기다. 여기에 파벌 중심으로 총재를 선출하게 되면 총재 후보는 열심히 파벌을 늘리려고 구성원에게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다. 금권 부패가 생겨났고, 정계·관계·재계의 밀착도 일어났다. 나라 전체가 부패한다. 소선거구제로 예전의 금권 부패는 압도적으로 적어졌다.”

- 현재 자민당은 아베 총리 1강체제라는 평가를 듣는다. 내각은 물론 당 인사도 총리 관저 주도로 이뤄지면서 ‘정고당저(政高黨低)’라는 말이 나온다.

“2001년 중앙 부처를 줄이고 총리 관저 기능을 강화하는 행정 개혁을 했다. 그에 따라 총리 권한이 막강해졌다. 아베 총리가 돼서 강하게 된 것이 아니다. 고이즈미 총리 때도 강했다. 관저 기능 강화를 완전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총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거의 할 수 있도록 됐다. 지금 일본 총리는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대통령제) 일부를 받아들여 하고 있다.”

- 헌법 개정은 자민당 창당 이래의 당시(黨是)다. 향후 개헌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가.

 지금의 헌법은 모순이 있다. 자위대를 갖고 있으면서도 군대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비정상이다. 헌법에 따르면 자위대는 전쟁을 위한 부대가 아니라 적이 공격해왔을 때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군대다. (개헌의) 대전제는 국회 의석 3분의 2 확보다. 다른 하나는 해석 개헌이다.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해석 개헌으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 한·일 의원 외교가 예전에 비하면 약화된 느낌이다.

 정치가 근대화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국도, 일본도 바뀌었다. 새로운 체제에서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을 궁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일 관계가 나쁜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관계를 더 좋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오영환 기자 hwasan@joongang.co.kr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 1936년 도쿄 출생(아버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
● 1959년 와세다대 정경학부 졸업. 석유회사 입사
● 1977년 총리 비서관
● 1990년 중의원 의원 당선(군마현)
● 1995년 외무성 정무차관, 자민당 외교부회장
● 1996년 자민당 부간사장
● 2000년 관방장관(역대 최장 1289일 역임)
● 2005년 자민당 신헌법기초위원회 안보·비상사태소위 위원장
● 2007년 총리(일본의 첫 부자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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