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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천재 소년·소녀에겐 관심 꺼주는 게 약

중앙일보 2015.12.07 01:37 종합 3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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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우체국 직원, 교사 등으로 일하다 43세에 박사학위를 따고 첫 저서를 내놓기 시작했다. 화가 앙리 루소는 세관원으로 일하면서 독학해 42세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처음엔 비웃음만 샀다. 소설가 박완서는 전업주부였다가 39세(만 나이)에 등단했다.

 이들과 달리 일찍 시작했는데도 나중에야 꽃핀 사람도 많다. 헨리크 입센은 22세부터 꾸준히 희곡을 썼지만 처음엔 작품 수준이 그저 그랬다. 마흔 가까워서야 ‘페르귄트’ 등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대표 걸작 ‘인형의 집’ ‘유령’ ‘헤다 가블러’는 각각 51, 53, 62세에 썼다.

 미술애호가인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 데이비드 갤런슨의 2006년 연구에 따르면 일찍부터 꽃핀 화가의 대표는 파블로 피카소, 늦게 꽃핀 화가의 대표는 폴 세잔이다. 피카소는 현대미술의 획을 그은 ‘아비뇽의 여인들’을 불과 26세에 그렸다. 미술사 책에 인용된 피카소 작품의 40%가 서른도 되기 전 것들이다. 반면에 미술사 책에 인용된 세잔 작품 중 60%가 쉰이 넘어 그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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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교롭게도 2015년 기준 역대 가장 비싼 값에 팔린 그림 비공식(개인 간 거래) 1위 혹은 2위는 최소 2600억원에 팔린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사진)이고, 공식(경매 거래) 1위는 올해 5월 1968억원에 팔린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다. ‘카드놀이’를 세잔이 그린 건 54세 때였다.

 얼마 전 ‘천재 소년 송유근의 최연소 박사 무산’ 사건으로 언론이 떠들썩했다. 사건의 골자는 송군 논문의 공동저자인 지도교수가 자신의 예전 글을 인용 표시 없이 인용해서 이 논문이 표절 판정, 즉 일종의 자기표절로 판정된 것이다. 이 분야에 전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 논문이 아예 새로운 게 없는지 아니면 단지 형식 문제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천재가 다 거짓 아니냐’는 비난부터 ‘천재를 시기질투로 죽인다’는 옹호까지 온통 시끄러운 걸 보고 씁쓸할 뿐이다.

 ‘천재’는 세월에 걸친 평가를 필요로 하는 말이다. 영어 ‘genius’의 정의를 옥스퍼드 사전에서 보면 ‘유별나게 뛰어난 지능 혹은 예술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관련 분야에 진보를 가져올 정도의 창조성을 지닌 사람’이다. 송군이 그런지는 미래에 판단될 일이지, 지금이 아니다. ‘최연소’ 타이틀은 학문·예술 역사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소위 ‘천재 소년·소녀’들에게는 관심을 꺼주는 게 그들의 성장에 가장 좋다. 나 포함한 기자들부터.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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