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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현 상태의 야당에 기대할 것 없다

중앙일보 2015.12.07 01:26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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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야당 복(野黨 福)’. 최근 한 모임에서 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가장 큰 정치적 복이란다. 박 대통령이 국민 다수를 아우르는 포용의 정치를 펼치는 것 같지도 않고, 정책적으로도 아직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뚜렷한 성과를 낸 것 같지도 않고, 정치력을 발휘하며 집권당을 포함한 정치권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 같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나름대로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국정을 주도해 갈 수 있는 것은 지리멸렬한 야당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복’ 덕택에 여당인 새누리당의 무기력한 모습도 별로 부각되지 않는 것 같다.

 어제도 오늘도 야당은 내홍에 빠져 있다.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의원의 전당대회 개최 제안을 거부하자 안 의원이 다시 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안 의원이 내세운 명분은 ‘혁신’이지만, 전당대회 개최 요구는 결국 당 지도부가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런 당내 갈등을 지켜보자니, 과거에 일어난 유사한 일들이 데자뷔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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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대표가 선출되고 나면 당내 반대세력이 결집해 사사건건 당 대표를 흔들어 댄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당 대표는 그 직에서 결국 물러나게 된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린다. 선출된 새 대표는 당의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비주류의 반발과 비판에 직면하게 되고 당 대표는 또 물러나게 된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고 나면 중립적 인사로 비상대책위원장을 선출해 일시적으로 당의 내분을 넘기지만, 그 이후에도 이런 상황은 반복된다. 열린우리당 이래 야당에서 신기할 정도로 유사하게 반복돼 온 당 내분의 모습이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갈등 역시 이런 과거의 패턴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그저 갈등을 이끄는 주연배우의 얼굴과 정치적 배경만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혁신’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은 딱히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 갈등은 공천권을 둘러싼 다툼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당내 갈등이 한심해 보이는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년 총선 전망이 매우 어두워 보이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80석도 얻지 못할 것이고 반면 새누리당은 200석 이상도 차지할 수 있다는 말을 세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런 비관적 상황 속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내 갈등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가라앉고 있는 난파선 안에서 서로 조타석에 앉겠다고 다투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러한 야당의 내분과 지리멸렬이 대통령이나 여당에는 복이 될지 모르겠지만, 국민에게는 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야당은 권력을 담당한 세력의 비판자이면서 동시에 그 권력을 대신할 수 있는 잠재적 대안세력이다. 건강한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선거를 통한 정치적 상벌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경쟁력 있는 야당의 존재가 중요하다. 집권세력이 좋은 정책을 펴서 국민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되면 그에 대한 ‘상’으로 집권을 연장할 수 있게 되지만, 만약 불만스러운 국정 운영을 했다면 그에 대한 ‘벌’로 권력은 대안세력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이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실망하거나 불만을 갖는 경우에도, 기대할 수 있는 마땅한 대안세력이 없다면 이러한 상벌의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집권세력 또한 잘하지 못하면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신중함과 겸손함을 잊을 수 있다. 야당의 무기력은 야당뿐만 아니라 정치생태계 전반에 이와 같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건강한 민주주의의 구현을 어렵게 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하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문제점의 상당 부분은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함께 져야 하는 것이다.

 당 내분을 지켜보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구성원 간 최소한의 동지(同志)적 공감대도 없고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도 공유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거에서 여당에 맞서는 주요 야당의 후보가 하나가 돼야 당선 가능성이 크다는 선거 공학적 이해관계만이 이들을 묶어 주고 있는 이유인 것 같다. 하지만 문 대표도 그런 표현을 썼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언제나 내분과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한 야당을 쳐다봐야 하는 것도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이제 야권의 재편을 심각하게 고려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 이들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억지로 한곳에 모여 있기보다, 분화와 상호경쟁을 통해 장기적으로 보다 경쟁력 있는 야당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더 이상 현 상태의 야당에 기대할 것은 없는 것 같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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