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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 부부’총 쏜 직후, 부인이 페북에 IS 충성서약

중앙일보 2015.12.05 02:26 종합 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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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경찰이 전날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경찰은 범인 파룩 부부의 차량 안에서 발견한 소총과 집 안에 있던 소총 탄약 등을 공개했다. [샌버너디노 AP=뉴시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 범행을 저지른 사이드 리즈완 파룩(28)과 타시핀 말릭(27·여) 부부의 극단적인 이중 행적이 경찰 수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루 전엔 부부 휴대전화 파기
PC 하드?e메일 계정도 삭제
남편은 테러 혐의자와 SNS 접촉

모친에게 6개월 딸 맡기고 범행
집에서 파이프 폭탄 12개 발견
실탄 3000발까지 갖춘 '무기고'


 CNN은 5일(현지시간) “말릭이 2일 남편 파룩과 총기를 난사한 직후 페이스북에 이슬람국가(IS)의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관계자는 미국 언론에 “말릭이 페이스북에 가명으로 충성 서약을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범행 하루 전날 휴대폰과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를 파기하고 e메일 계정을 지우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평범한 삶을 살던 파룩 부부가 급진화되며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도 4일 익명의 수사관계자를 인용해 파룩이 ‘국제 테러리즘’ 혐의로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받아왔던 인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접촉하며 ‘소프트 커넥션(약한 연계)’을 형성했다고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3일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팀과 회의를 한 직후 “현재로서는 정확한 범행 동기를 알지 못한다”면서도 “테러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파룩은 만남을 주선해주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말릭을 만나 결혼했다. 파룩 부부는 외견상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평범한 부부였다. 직장 동료인 그리셀다 라이신저는 “(파룩에게) 광신도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고 테러를 벌일 거라는 의심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룩 부부의 내막은 집안을 무기고로 만들어 놓고 어머니에게 생후 6개월 된 딸을 맡겨놓은 채 복면 총격에 나선 ‘부부 전사’였다.

 지난 2일 샌버너디노 카운티 보건위생과 직원들의 송년 행사장에 앉아 있던 파룩은 행사 도중 자리를 비웠다. 곧 아내 말릭과 함께 복면을 쓰고 나타난 그는 동료들에게 총탄을 퍼부었다.

 경찰 수사 결과 파룩과 말릭 부부는 75명이 참석했던 행사장에서 4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65~75발을 난사해 14명을 죽이고 19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 이들은 행사장의 중앙 테이블 위에 파이프 폭탄 3개를 넣은 가방을 남겨 놓고 원격 폭파 장치를 갖고 떠나 추가 피해를 입히려 했다. 이들 부부의 집에서도 실탄 3000여 발과 폭발물 장치 수백 개, 그리고 12개의 파이프 폭탄이 발견됐다. 파이프폭탄은 원격으로 작동할 수 있고 살상력이 반경 100m에 달한다. 지난 8월 방콕 폭탄테러 등 대규모 테러에 자주 사용됐다. 제러드 버건 샌버너디노 카운티 경찰국장이 “사전에 정교하게 기획된 범행”이라고 단정 지은 이유다. 데이비드 보디치 FBI LA지부 부국장 또한 “범행 동기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범행에 목표(mission)가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파룩의 범행을 ‘계획된 테러’라고 섣불리 단정짓는 것은 미국 내 테러 공포를 조장할 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공격 대상이 정부 시설이나 불특정 다수가 아닌 직장 동료였다는 점에서 여전히 기존 테러 유형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숨진 14명 중 12명이 파룩과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 파룩이 행사장을 떠나기 전 다른 직원과 말다툼을 벌였다는 목격자의 증언도 있다.

 샌버너디노에서는 3일 밤 지자체가 주최하는 추모식이 열려 1000여 명의 주민이 모여 희생자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입국자 ‘경계령’ 내린 미국=미 정부가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을 대폭 강화하며 테러 원천 차단에 나섰다. VWP는 특정 국가 국민이 미국을 방문할 때 90일까지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한국 등 38개국이 가입돼 있다. 미 의회가 마련한 법안에 따르면 내년 4월부터 생체정보가 담긴 칩이 내장된 전자여권을 의무화했다. 또 VWP 가입국 국민에 대해서도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범죄기록을 조회하고, 이라크·시리아·이란·수단 등을 방문한 사람은 비자를 받아야만 미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정진우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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