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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의 심리학…“내 정체 모르지” 과격 행동 ‘폭력·저항의 아이콘’ 복면

중앙일보 2015.12.05 02:05 종합 1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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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은 다양성을 띤다. 파괴와 폭력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카니발에서의 복면은 익명이 보장되는 소통의 도구다. 이나미 박사는 “복면은 중립적”이라며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쓴 사람과 그 시대에 따라 모습이 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복면, 허(許)해야 하나, 불허(不許)해야 하나. 이를 둔 논란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5일 ‘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앞두면서다.

촛불집회 때 ‘가이 포크스’ 가면
월가·홍콩 시위 때도 복면부대

복면 집단의 폭력성 실험서 입증
변장한 범죄자들 범행 더 잔혹

미국·독일·프랑스 ‘복면금지법’
KKK단?나치스트 견제 목적


 정부는 복면 시위대에 대한 강경 방침을 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복면시위를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하며 “복면시위를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지난 2일 김수남 검찰총장은 취임사에서 “체제 전복 세력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달 30일부터 4일까지 복면 시위대 검거 훈련을 반복했다. 이에 맞선 여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2일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주최한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참가자 300여 명이 모두 가면을 착용했다. 3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뽀로로 가면을 쓰고 나와 복면금지법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복면 시위대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지난 2008~2009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확산된 ‘반(反) 월가 시위’, 지난해 홍콩에서 일어난 민주화 요구 시위 등에서도 가면을 쓴 시위대가 빠짐없이 등장했다. 국제 해커그룹 ‘어나니머스’도 기자회견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의 주인공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채 나타난다.
 
 그들은 왜 복면을 쓸까. 복면은 숨김이기 때문이다. 신분을 감추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서다. 인간은 다양한 형태와 용도로 복면을 이용했다. 그래서 복면엔 숨겨진 인간의 욕망과 사회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코드가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얼굴을 감춘다는 것은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정체성을 숨긴 뒤 속마음을 과감하게 드러내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했다.

 인간은 저 멀리 원시 시대부터 얼굴을 감췄다. 그 도구는 복면·가면·탈·마스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원시인들은 사냥을 위한 위장의 수단으로 가면을 썼다. 동물 가죽 등으로 얼굴을 감싸고 짐승 소리를 내며 사냥감에 접근했다. 전장에서 복면은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복면은 또 기존 질서와 권위에 반발한 저항의 아이콘 역할도 했다. 가이 포크스 가면이 대표적이다. 가이 포크스는 17세기 영국에서 당시 왕이었던 제임스 1세를 살해하려다 처형당한 인물이다. 영국에서만 알려졌던 가이 포크스는 만화 ‘브이 포 벤데타’와 같은 이름의 영화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2008년 7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반대해 일어난 촛불집회에서도 가이 포크스 가면이 등장했다. 2011년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에도 이 가면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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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우려대로 복면은 정말 폭력을 부를까. 복면의 익명성은 개인의 책임과 도덕적 의식의 제어장치를 느슨하게 만든다. 그래서 폭력을 제어하는 능력이 약해진다. 복면시위는 폭력시위의 전단계라는 인식이 나오는 이유다. 1971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사회심리학)는 평범한 여성 8명을 4명씩 나눠 한 집단은 복면을 하고, 다른 집단에는 얼굴을 드러내고 이름표를 달게 했다. 그리고 피실험자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복면 집단이 신원을 노출한 집단보다 두 배 이상 강한 전기충격을 가했다. 익명성이 보장되면 인간의 폭력성도 강해진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필립 짐바르도, ?루시퍼 이펙트?) 북아일랜드에서 발생한 500건의 폭력 사건 자료 분석도 사람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면 더 잔인해질 수 있다는 걸 나타냈다. 변장을 하고 폭력을 저지른 사람일수록 사람들에게 더 심각한 부상을 입혔고, 더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으며 사건 이후에도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성향이 두드러졌다. 최창호 사회심리학 박사는 “자신이 감춰진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나 심리적 죄의식을 회피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복면의 익명성이 공격 성향을 키우는 게 분명하다고 마냥 금지해야 할까. 해외를 보자.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에도 복면 금지법이 있다. 이들 국가에선 복면금지법이 과격 집회를 막는 목적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복면을 쓰는 것을 규제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그들의 입법 배경도 우리와 큰 차이가 있다.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단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독일은 신나치와 같은 전체주의 세력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서 복면 금지법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경우가 아니면 복면이 허용되고 단순 위험 정도로 원천 금지하진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강병진 미국 뉴욕주 변호사는 “미국은 캘리포니아주 등 15개 주에서 복면금지법을 규정하고 있다”며 “미국에서도 이 법이 원래 시위 금지 취지가 아니었는데 시위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복면이 마냥 나쁜 것도 아니다. 우리 전통문화엔 ‘탈’이 있었다. 탈로 얼굴을 가린 광대들은 신명 나는 놀이판을 벌이며 세상을 풍자했다. 신분을 드러내고 할 수 없는 말과 동작이 탈이라는 도구를 통해 서슴없이 터져 나왔다. “가면은 때론 힘이나 권위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가면을 쓰면서 억압된 본능을 표현하고 해학을 드러내는 예술적인 측면도 있다.”(이나미 박사·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우리 사회에서 복면은 이제 대결과 충돌의 산물이 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1만여 건의 집회 가운데 불법폭력시위는 0.3%에 불과했다. 과도하게 규제를 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6년 전 국가인권위원회는 복면금지법 추진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면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 불법을 저지를 것이라고 미리 예상하고 처벌하는 것은 과잉”이라고 지적했다. 2003년엔 헌법재판소도 “집회의 자유엔 복장의 자유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1980년대 민주화 시위 때도 ‘복면’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뜨거운 논란의 대상은 아니었다. 독재라는 거악(巨惡)이 존재했고, 시위에 대한 무언의 동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과연 그런 거악이 있는가, 복면금지법 찬성론자들은 묻는다.

 영화 ‘반칙왕’에서 은행원 임대호(송강호 분)는 부지점장(송영창 분)의 ‘공포의 헤드록’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부지점장은 말한다. “동물의 왕국, 그걸 보면 말야, 세상 살아가는 법칙이 다 나와. 자연의 섭리, 약육강식, 적자생존….” 관객은 가면을 쓰고 레슬링을 하면서 자신감을 찾아가는 주인공을 마음 속으로 응원하고 가면이 찢겨나갈 때 가슴 아파한다. ‘지금 우리도 헤드록을 당하고 있어.’ 복면금지법 반대론자들은 혹시 이렇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복면금지법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은건 ‘복면’보다 ‘헤드록’이 더 문제라고 보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가 아닐지.

곽재민·김영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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