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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세계적 조명·가구 디자이너 톰 딕슨

중앙일보 2015.12.05 01:20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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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디자이너 톰 딕슨은 구리 소재를 즐겨 쓴다. 산업혁명의 나라, 용접공 출신이라는 배경과 어울린다. 구리로 만든 조명 코그, 에치 웹, 플레인 샹들리에, 플레인 페어, 비트라이트, 멜트 코퍼(왼쪽부터). 뜨거운 유리가 녹아내린 모양의 멜트 코퍼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구리 느낌을 냈다. 불을 끄면 표면이 거울처럼 반사된다. 아래는 S체어. [사진 두오모앤코]


디자인이 빼어나면서 가격이 비싼 제품에 붙는 인터넷 은어가 있다. 스타일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영어 문자 ‘st’이다(물론 콩글리시다). ‘샤넬 st 원피스’는 샤넬풍 원피스, 즉 짝퉁 또는 유사품을 말한다.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열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학교선 배울 것 없다" 미대 중퇴
독특한 소재 활용, 예술가 사로잡아

구리가 거울처럼 반사되는 조명
배용준 레스토랑에 꾸며 인기 끌어

음식·아트·산업기술서 영감 얻어
예술성·상업성 모두 갖췄다 평가


 ‘st’의 주인공들은 주로 패션 디자이너지만 드물게 산업디자인 분야에서도 대중이 사랑하는 ‘디자인 수퍼스타’가 있다. 조명·가구를 주로 다루는 영국 디자이너 톰 딕슨 얘기다. ‘톰 딕슨 st 조명’을 사서 달았다는 인테리어 경험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최근 방한한 톰 딕슨을 서울 청담동에 있는 패션 전문점 분더샵에서 만났다. 그는 이달 말까지 분더샵이 운영하는 팝업 스토어를 보기 위해 매장을 찾았다.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용접공 출신 디자이너의 창의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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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디자이너 톰 딕슨은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남과 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청담동 분더샵에서 ‘톰 딕슨 팝업 스토어’가 이달 말까지 열린다. [사진 분더샵]

 - 언제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나.

 “디자인에 대한 흥미도, 지식도 없었다. 물건 만드는 게 좋았을 뿐이다. 미대에 입학해 기초과정을 배울 때 오토바이 사고가 크게 났다. 6개월여 쉬면서 생각해 보니 학교에서 배우는 게 별로 없었다.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 어떤 경험을 쌓았나.

 “잡일을 전전했다. 만화영화 필름에 색을 입히는 것도 해봤고, 프린팅 기계도 닦았다. 취미로 밴드에서 기타를 쳤는데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하고 음반 계약까지 성사됐다. 그때 또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지나가는 여자를 쳐다보다 앞차와 세게 충돌했다. 팔을 다쳐 기타를 칠 수 없게 되자 나보다 더 잘 치는 멤버로 바로 교체됐다.”

 - 어쩌다 디자이너가 됐나.

 “소일거리로 오토바이 수리·용접을 하다가 금속에 매료됐다. 구리 같은 자투리 메탈 재료를 사용해 소품을 만들었는데, 예술을 하는 친구들과 나이트클럽 사장이 돈을 주고 내 물건을 사 가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디자이너가 됐다.”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던 소재를 활용한 독특한 감각이 예술가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출세작인 ‘S체어’(1991년)는 철제 뼈대 위에 왕골을 손으로 일일이 감아서 완성했다. 불을 켜면 속이 훤히 보이지만 끄면 표면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미러볼’이나 ‘멜트’ 조명은 폴리카보네이트라는 소재의 재발견이다. 화려하면서 단순한, 상반된 미학을 구현했다. 소재뿐만 아니다. 플라스틱 소재를 구리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 공부를 그만둔 걸 후회하지 않나.

 “후회는 전혀 없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한 덕분에 나는 남과 다른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게 내 창의력의 원천이자 핵심 경쟁력이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독창성이다. 요즘은 모든 게 겉모습이 비슷해져 가고 있지 않은가. 디자인은 어때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나만의 영감을 찾고 결정을 짓는다.?

 - 영감은 어디에서 오나.

 “나는 여행을 많이 한다. 디자인 자체보다는 음식·예술·산업기술같이 다른 영역에서 영감을 얻는다. 손으로 직접 물건을 만들면서 일을 시작해서 그런지 물건을 만드는 기쁨 자체에서 창의성이 표현되는 것 같다. 기술이 먼저, 디자인이 나중인 때도 있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최상급 기술을 최대한 구현할 수 있는 선에서 물건을 만들기도 한다.”

 - 디자인 교육의 문제점은 뭔가.

 “디자인만 너무 많이 가르친다 . 그보다는 비즈니스, 엔지니어링, 제조 공법, 재료 공학같이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여러 중요한 항목을 가르쳐야 한다. 디자인은 여러 재주를 한데 모아 보다 나은 제품을 만드는 행위다. 디자인 스튜디오에 일부러 간호사·엔지니어 출신을 고용했다. 다른 영역에 있던 사람들이 조직에 새로운 사고방식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 젊은 디자이너에게 조언한다면.

 “인터넷 발달로 디자인이 빠르게 서로 닮아가고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도 인터넷에 올리면 곧바로 공공재산이 된다. 과거에는 디자이너가 작품을 단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길이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독특한 모양새나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발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미지와 영감 과잉이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뭔지 알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자기 아이디어를 밀고 나가야 한다.”

 톰 딕슨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 영구 소장돼 있다. 대중적인 인기도 누리고 있어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듣는다. 수년 전 배우 배용준이 서울 강남에서 운영한 레스토랑에 톰 딕슨의 ‘미러볼’ 조명을 설치해 국내에선 ‘배용준 조명’으로 불리며 관심을 얻었다.

 - 예술적 성공과 상업적 성공, 무엇이 더 중요한가.

 ?둘 다 아니다. 나는 취미가 직업이고 직업이 취미다. 내가 취미로 만든 물건을 고객들이 돈을 주고 사서 즐긴다. 이 자체가 내게 동기 부여가 된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사 줄 때 디자인에 대한 나의 즐거움이 합리화된다. 나처럼 취미를 마음껏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경우는 꽤 드문 일일 것이다.?

 - 레스토랑이나 호텔 조명 설치 프로젝트도 많이 하는데.

 “과거에는 상업시설과 가정 내 조명이 확연히 나뉘어졌지만 이젠 구분이 옅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집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어하고, 호텔에서 본 것을 집으로 옮겨오고 싶어한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살고 싶어하고 레스토랑처럼 꾸민 식탁에서 밥을 먹고 싶어한다.”

 - 앞으로는 라이프 스타일 산업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데.

 “패션 산업은 이제 너무 많은 브랜드가 너무 많은 상품을 내놓고 있어 포화 상태가 됐다. 그래서 소비자의 관심이 가구·조명 같은 라이프 스타일 분야로 넘어오는 게 아닐까.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옷이나 자동차뿐만 아니라 매일 쓰는 물건에 관심을 두게 됐 다. 톰 딕슨 브랜드로 문구류·주방용품으로까지 제품군을 확대한 이유다. 한국은 접대와 만남이 주로 레스토랑에서 이뤄지는 문화다. 집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적게 들이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도 바뀌고 있다.”

 - 진품 가격의 10분의 1 수준에 짝퉁이 팔린다.

 “대응이 쉽지 않다. 짝퉁 규모가 우리 회사 규모보다 훨씬 크다. 루이뷔통도 못하는 걸 우리 같이 작은 회사가 어떻게 하겠는가(웃음). 좀 더 빠르게 디자인을 개발하고, 기술적으로 복잡한 제품을 내놓고, 오리지널 제품을 사야 하는 이유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밖에 없다. 법적 대응에 집착하면 남은 생을 변호사들과 살아야 한다. 그건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 왜 오리지널 제품을 사야 하나.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제품이다. 조명에서 빛이 다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S BOX] 천장 낮은 아파트, 펜던트 조명은 식탁 위에 설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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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이 낮은 한국식 아파트에서 머리에 부딪히지 않고 펜던트 조명을 쓸 수 있는 최적의 위치는 식탁 위다(사진 왼쪽). 미러볼 조명은 불을 껐을 때도 인테리어 효과가 있다. [사진 꾸밈바이]


집주인이 아니라 집에 들어가 살 사람이 조명을 설치하는 주택 거래 방식 때문에 유럽에선 조명 시장이 발달했다. 톰 딕슨은 “그럼에도 유럽 사람들조차 조명 인테리어를 어렵게 생각한다”며 “조명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이고, 딱히 레시피가 있는 게 아니라 분위기와 느낌을 살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물며 조명이 달린 주택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조명은 더 낯설다.

 인테리어 스튜디오 꾸밈바이의 조희선 디렉터는 “불을 켰을 때의 느낌도 중요하지만 꺼놨을 때 다른 가구와 어울릴지를 상상하며 그림이나 가구 고르듯이 선택하라”고 말했다. 천장 조명은 유행을 따를 게 아니라 오랫동안 사용할 디자인을 고른다. 초보자는 침대 스탠드나 데스크·플로어 램프부터 시도해보자. 조명을 모시는 게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고가의 제품을 사지 않는다. 조명의 장단점을 느껴본 뒤 단계적으로 투자를 늘린다.

 수입업체 두오모앤코의 이택동 실장은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는 게 조명이다. 부피감이 있는 조명은 거실 메인 등보다는 코너나 확장한 베란다 등에 먼저 시도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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