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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여대 성악과와 미팅 멤버 5명 구함’…90년대 대학선 ‘과방’ 칠판이 카톡창

중앙일보 2015.12.05 01:17 종합 20면 지면보기
카카오톡은 가입자 3800만을 거느린 ‘커뮤니케이션 공룡’이다. 3800만 명이 하루 평균 55번씩 이용한다니, 하루에 오가는 카톡 메시지만 20억 개가 넘는다. 밥 먹을 때도, 일할 때도, 공부할 때도 카톡 알람은 쉴 새 없이 울린다. 그 전까지 우리가 무엇으로 소통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다. 잠깐만 기억 테이프를 뒤로 감아보자. 한때 우리는 공중전화 앞에 늘어선 줄을 견뎌냈고, 40자의 문자 한 통에도 설렜다. 때로 ‘카톡 공해’라고 투덜댈 만큼 카카오톡이 일상화된 지금, 그때를 기억하고 싶다. 응답하라 비포(Before) 카톡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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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응답하라 세대들의 SNS

90년대 초반 주로 집 전화
“동아리 선배인데요” 부모 몰래 연애

90년대 중반 무선호출기 ‘삐삐’
공중전화 걸려고 30분 넘게 줄 서

 ◆가족의 철벽 마크를 뚫어라=tvN의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선 집 전화 벨이 곧잘 울린다. 개인 연락망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모든 연락은 집 전화로 통했다. 연인과의 달콤한 속삼임을 위해선 가족이란 관문을 넘어야 했다.

 “몰래 연애 중이어서 전화를 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했어요. 가장 좋은 핑계는 ‘동아리 선배인데 전달사항이 있다’고 말하는 거였죠. 한 번은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눈치를 채곤 ‘우리 ○○이 대입 공부 다시 하기로 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이영재(43·자영업))씨

 그래서 당시 연인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전화 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데이트 후엔 다음 약속 날짜와 시간·장소를 정하는 게 필수였다.

 ◆과방 칠판은 약속 창고=삐삐도 흔치 않았던 90년대 초반 대학교 ‘과방’은 모든 소식과 정보의 집결지였다. 과방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벽에 걸려 있던 ‘화이트보드’다. 밥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자는 글부터 학과 공지사항까지 다양한 정보가 화이트보드에 빼곡했다.

 “미팅 멤버를 구하는 공고도 과방 화이트보드에 했어요. ‘성신여대 성악과 93학번 5명 10일 6시’ 이렇게 적어두면 그 밑에 참가 희망자들이 이름을 적었죠. 당시 미팅에 완전히 빠져 있던 한 친구가 희망자란에 본인 이름을 지울 수 없도록 말뚝 박아 놨던 게 생각나네요.”-배성진(43·자영업)씨

 90년대 과방에는 ‘날적이’라 불리던 공용 노트가 유행했다. 군대 가기 전 심경을 토로한 글부터 선배들이 남겨둔 전공수업 별점 평가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노트가 꽉 차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사용했다고 적어서 과방 캐비닛에 계속 모아뒀어요. 간혹 새 노트를 꺼내놓으면서 앞표지에 <○○○ 기증>이라고 적어놓는 친구도 있었죠.”-김미영(43·주부)씨

 지금 후배들이 볼 때 이 노트는 박물관 유물 같다. 대학생 안세연(21)씨는 “선배들이 적어놓은 공용 노트는 마치 사료(史料) 같다. 선배들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인 기록들인데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그런 느낌이나 감성이 없다”고 말했다.

 ◆‘삐삐 시대’의 상징, 공중전화 줄 서기=무선호출기를 일컫는 이른바 ‘삐삐’는 97년에 가입자 수 15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삐삐에 새겨진 전화번호를 확인하기 위해 공중전화부스 앞에서 길게 줄을 서는 건 당연한 풍경이었다.

 “앞사람이 오래 걸린다 싶으면 공중전화부스 문을 두드리며 ‘얼마나 더 걸리느냐’고 대놓고 묻기도 했어요. 5분 정도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 30분 이상 기다려도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었죠.”-정성현(39·목회자)씨

 당시 삐삐는 때론 부의 상징이었고 때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통로였다. 유행하는 최신 삐삐가 있는지 여부가 미팅 상대를 결정했고, 삐삐 연결음에 녹음해둔 가요나 목소리로 짝사랑을 내비치기도 했다.

 “소지품팅 같은 걸 할 때 값 나가는 삐삐를 올려놓으면 여자들에게 잘 먹혔어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내 삐삐가 밀린다 싶으면 (당시 유행하던) 가방에 달고 있던 인형을 내놓기 일쑤였고요.”-전형주(38·회사원)씨

 “짝사랑하던 여성에게 고백할 때면 유재하 노래를 많이 사용했고 이별을 겪었을 때는 김장훈의 ‘나와 같다면’을 녹음하곤 했었죠.”-한정운(40·목회자)씨

 ◆스치듯 지나간 ‘시티폰’부터 PCS 문자보관함까지=‘시티폰’은 공중전화 반경 50m 내에서만 통화할 수 있는 발신전용 휴대전화다. 삐삐의 음성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상대방과 통화하기 위해 긴 공중전화 줄을 견뎌야 했던 당시 시티폰의 인기는 뜨거웠다.

 “친구 한 명이 시티폰을 가지고 오면 너도나도 한 번씩 써보겠다고 달려들었어요. 당시 돈으로 통화요금이 10만원 가까이 나와 친구가 울상이었던 적도 있었고요.”-전형주씨

 ‘삐삐’와 맞물려 출시됐던 시티폰은 그러나 수신·발신이 모두 가능한 PCS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곧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카톡 대화’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몇 글자 안 되는 단문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오가지만 15년 전만 해도 문자 한 통에 담기는 40글자를 꽉꽉 채워 넣으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PCS에는 ‘문자보관함’이란 것이 따로 있어 달콤한 연애문자나 뜻깊은 격려 문자 등을 간직하곤 했다.

 “8자씩 5줄, 그 안에 일부러 띄어쓰기도 안 하고 어떻게든 축약해 인상적인 글귀를 썼어요. 40자 쓰는 데 10분 이상이 걸린 적도 더러 있었어요. 다른 문자는 다 지워도 3년간 좋아했던 짝사랑 그녀가 보낸 문자는 계속 보관해뒀던 기억이 납니다.”-서상범(30·회사원)씨

박가영 기자, 홍준영·양길성 인턴기자 park.gayeong@joongang.co.kr 


[S BOX] 1010235(열렬히 사모), (▶(oo)▶)(웃는 돼지) 숫자·특수문자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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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들어 무선호출기(일명 ‘삐삐’)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당시 2030세대는 숫자로 된 언어를 창조해 냈다. 100(백, BACK, 돌아와라), 1010235(열열이삼오, 열렬히 사모), 2626(이륙이륙, 약속 장소로 출발), 7676(착륙착륙, 장소 도착) 등의 표현은 하나의 문화였다.

 문자메시지(SMS) 세대는 한 자라도 더 써넣기 위해 띄어쓰기를 완전히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들에게 특수문자는 표현의 확장 도구였다. 한때 ‘(▶(oo)▶) : 웃는 돼지’ ‘(▶(oo)~) : 윙크 돼지’ 시리즈가 유행했다. 명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특수문자를 활용한 그림 이모티콘을 주고받았다.

 이는 문자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시도였다. 성신여대 소현진(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문자 의사소통은 얼굴 표정이나 어조와 같은 추가 단서가 없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왜곡될 수 있다”며 “감정이나 느낌을 쉽고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이모티콘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30세대가 기기의 한계를 초월하는 보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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