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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시리아 난민들의 겨울

중앙일보 2015.12.05 00:21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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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세계시민학교 교장

지난주 강원도에서 겨울 야영을 했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밤이 되니 기온이 뚝 떨어지고 땅에서 얼음장 같은 냉기가 올라왔다. 밤새도록 돌돌 떨다 해가 뜨자마자 텐트 밖으로 나갔다. 먼저 일어나 모닥불을 피우던 일행이 침낭을 몸에 둘둘 만 채 연기 나는 불가에 쪼그리고 있는 나를 보고 하는 말. “꼭 시리아 난민 같네요.”

 
 

난민들에게 더 잔인한 겨울
영양실조로 면역력 떨어져
아이들에게 추위는 곧 죽음
담요·침낭이라도 보냈으면


 산 밑 야영장의 수십 동 텐트를 배경으로 떨고 앉아 있으니 그렇게 보였나 보다. 강원도 야영장에서 시리아 난민을 연상하다니, 국제구호전문가 친구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은가? 전날 밤, 지난여름에 다녀온 터키 남부의 시리아 난민촌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거다. 아, 난민들에게도 이런 겨울용 침낭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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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 그 아름다운 나라가 정부군과 반군 간의 내전에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까지 가세하면서 쑥대밭이 되고 있다. 지난 5년간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400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난민이 생겼지만 여전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피란 중인 750여만 명을 합하면 총 인구 1800만 명 중 무려 60%가 난민인 셈이다.

 말 나온 김에 난민에 대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난민은 국제법상의 정의와 분류가 있지만 크게 대량난민과 개별난민으로 나눌 수 있다. 나는 그동안 구호현장의 대량난민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지난 2년간 법무부 정책 자문위원을 하면서 개별난민도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다.

 개별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거나 박해의 공포가 있으나,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를 원치 않고 다른 나라에 망명을 희망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원하는 나라에서 난민 심사를 거쳐 난민으로 인정되면 기초생활 및 의료, 교육 등의 혜택을 받으며 그 나라에서 영구히 살 수 있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아도 강제송환이 금지되고 취업도 가능하다.

 최근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4.2%로 매우 낮다. 법무부에 따르면 1994년부터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총 1만2000명으로 이 가운데 난민 인정과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사람은 1400명도 되지 않는다. 신청인 중 시리아인은 760여 명인데 그중 3명은 난민 인정을, 570여 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서유럽 국가들이 시리아 대량난민을 몇 십만 명 단위로 받아들이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겨우 몇 백 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한 대량난민은 국경을 넘었느냐가 기준인데 국내에서 피란 중이면 국내 실향민으로, 국경을 넘었으면 난민으로 분류된다. 국경을 넘은 400만여 명의 시리아 난민 중 반 정도가 터키에, 120만 명이 레바논에, 100만 명 정도가 요르단·이라크·이집트로 넘어갔다. 특히 레바논은 인구 450만 명의 작은 나라에 120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있으니 1000만 명이 사는 서울에 250만 명의 외국 난민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서울 한복판에 대형 난민촌이 생기고 이들의 의식주 해결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써야 하고 거리와 병원과 학교마다 외국인 난민들이 넘쳐나고 따라서 동네 사람들과 크고 작은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난민 문제는 난민들만이 아니라 그 난민들을 수용하는 나라와 지역주민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많은 시리아 난민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난민 하면 보통 수백 동의 하얀 텐트가 쳐 있는 대형 난민촌에서 지낼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일가 친척이나 지인들의 집에서 기거하거나 싼 숙소를 빌려 산다. 내가 일했던 터키 남부 시리아 난민촌도 15%만 대형 난민촌에서 지내고 85%는 난민촌 밖에서 각자 알아서 지내고 있었다. 몇 달이면 돌아갈 줄 알았는데 벌써 5년째 난민생활을 하고 있으니 국제사회의 도움이 있다지만 그 사정이 어떻겠는가. 가져온 돈은 다 떨어졌고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은 점점 사라지고 돌아가도 이미 철저히 파괴돼 살길이 막막하다. 일자리가 많다는 유럽으로 떠나려니 1인당 수백만원을 내야 하는, 돈도 돈이지만 배에 태운 채 지중해에 내버린다는 난민 브로커들이 무섭다. 설상가상으로 브로커보다 더 무서운 겨울이 오고 있다.

 난민들의 겨울은 잔인하기만 하다. 15년 전 아프가니스탄으로 긴급구호를 갔었다. 초봄이지만 칼바람이 살을 에는 듯 몹시 추웠다. 근처 자생 난민촌에서는 그해 겨울 수십 명의 어린아이들이 저체온증으로 죽었다고 한다. 영양실조가 심해 면역력이 거의 없는 아이들에게 추위는 곧 죽음이다. 너무나 억울했다. 겨울용 텐트와 담요, 옷, 간단한 난방용품만 있어도 살릴 수 있었다는데 말이다.

 어찌 이 아이들뿐이랴. 지금 이 순간에도 12월의 혹독한 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200만 명의 시리아 난민 아이들이 있다. 점점 깊어가는 이 겨울, 이 친구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세계시민학교 교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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