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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대화 플러스’ 가 요구되는 남북 당국회담

중앙일보 2015.12.05 00:15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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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서로 대립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공존의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남한과 북한. 이런 이중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남북한 당국 회담이 다음주에 열린다. 어렵사리 성사된 회담인 만큼 남북은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화해를 위해 무언가 돌파구를 만들어 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8·25 이후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의 조짐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의 예상과는 달리 북한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장거리 미사일도 발사하지 않았고 핵실험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열병식 연설에서 김정은은 ‘경제와 핵 병진노선’은 언급하지 않고 대신 ‘인민’을 97회나 언급했다. 민생을 챙기고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평화로운 남북 및 국제환경 조성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물론 희망적인 관측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지난해 2월 이산가족 상봉 한 번 하고 끝났던 제1차 고위급 회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대화를 견인해야 할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압박에도 불구하고 더욱 위협적으로 돼 가고 있는 핵과 미사일, 제재에도 불구하고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경제, 급변사태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안정화돼 가고 있는 북한이 아닌가. 여기에 지금 북한이 변화의 손짓을 내밀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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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징벌적이고 방어적인 정책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한·미 동맹이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자세다. 핵과 미사일로 자신의 운명을 지키겠다고 맞서고 있지 않은가. 물론 확고한 안보 태세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기존 정책의 유지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정당한 이해관계를 가진 상대로 대하지 않는 한 북한을 자제시킬 수도 협조를 얻어낼 수도 없다.

 임기 후반기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로서는 더 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다.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남북관계의 ‘리세팅(resetting)’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의제를 놓고 기 싸움이나 벌이는 대화를 넘어서야 한다. 남북의 협력을 가능케 할 새로운 개념과 절차를 만들어낼 대화 전략이 필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화에 무언가를 플러스한 전략이 돼야 한다. 지난 3년간을 보라. 남북은 서로를 적으로 보는 냉전 대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타협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상대방의 의지를 꺾으려는 일방적 행동으로 치닫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포용보다는 일방적 굴복을 받아내려는 기 싸움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다. 물리적 힘에 의존하지 않았을 뿐 대화라기보다는 전쟁 테크닉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대화 플러스는 이런 냉전 대화의 틀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 요체는 북한을 적대적인 동시에 협력적인 상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궁지에 몰려 있는 북한의 위신을 살려주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에 실질적인 혜택도 제공해야 한다. 천안함 폭침과 5·24 제재 이후 대결로 치달았던 남북관계에 전환점을 제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 남-북-러 3개국 물류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각종 체육·문화 등 민간 교류가 기다리고 있다.

 대화 플러스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적인 ‘마인드 세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북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북한에 보다 건설적이고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도 북한의 입장에 좀 더 민감할 필요가 있다. ‘일관된 원칙’이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식의 원칙론은 이제 좀 현실적으로 바뀔 때가 됐다.

 개인은 원칙을 타협하면 위선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원칙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때 비로소 현실주의자로 평가받을 수 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을 보라. 그는 공산주의를 악으로 몰아붙이면서도 유연한 현실주의로 고르바초프를 상대하지 않았던가. 미·소 관계를 리세팅해 냉전 종식의 토대를 마련한 그의 현실주의적 원칙론에 우리도 눈을 돌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대화 플러스 전략을 쓰더라도 남북의 누적된 상호 불신과 적대감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대화만으로는 현 사태를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원칙의 현실주의적 적용을 가능케 할 대화 플러스 전략을 한번 시도해볼 만하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남북 모두에 이런 유연한 현실주의자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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