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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급구 : 전문가의 자격, 사회의 품격

중앙일보 2015.12.05 00:15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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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한 장면. 석유 유출 사고 발생 속보가 뜨자 제작 책임PD가 “당장 전문가 연결해!”라고 외친다. 일 못하는 심통 캐릭터 PD는 “갑자기 어디에서 전문가를 구해요?”라고 심드렁히 대꾸하지만 능력자 PD는 그 순간 유수 대학의 지질학과 교수와 통화 중이다. 만약 같은 상황이 실제 한국 일부 방송국에서 벌어졌다면? PD나 작가들은 모두 ○○○ 변호사 혹은 XXX 시사평론가 전화번호를 누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상상, 비상식적이긴 해도 비현실적인 것 같진 않다. 지금 한국에선 말이다. 석유 유출이 해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전문성보다 수박 겉핥기 식이되 재미있게 얘기를 늘어놓는 언변이 더 먹히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다. 픽션인 미국 드라마보다 한국 방송계 현실이 픽션에 더 가깝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어느새인가 일부 시사 프로그램에선 변호사며 시사 및 정치평론가들이 만물박사인 양 여배우의 사생활부터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까지 논하는 모습이 일상화됐다. 검증된 언변만이 무기일 뿐 깊이 있는 전문성이 없다 보니 이들이 하는 말은 극단적이거나 말초신경을 자극할 뿐이다. 이런 ‘전문가 패널’에 단골로 등장하는 한 평론가에게 물으니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인데도 막무가내로 부탁해서 응하긴 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가끔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북한에 관한 뉴스마저 이렇게 다뤄지는 게 국익에도 좋을 게 없다는 점이다. ‘아님 말고’ 식 추측성 해설을 쏟아내는 자칭 북한 전문가들과 탈북자들은 남북관계의 살얼음판 위에서 칼춤을 춘다. 때론 외신까지 들썩인다. 지난 5월 CNN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모인 김경희를 독살했다는 오보를 낸 것도 일부 탈북자의 ‘아님 말고’ 식 증언이 발단이었다.

 최근엔 김 위원장의 이모로 미국에 망명한 고영숙씨 부부까지 국내 일부 탈북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들이 사정을 잘 모르면서도 방송에 나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아는 것처럼 꾸며냈다는 게 고씨 부부의 주장이다. 이들이 찾아간 법정 대리인이 역시 방송에서 맹활약해온 강용석 변호사라는 건 웃지 못할 아이러니다. 강 변호사는 통화에서 “(고씨 부부가) 내가 나온 방송을 다 봤다고 한다”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방송으로 피해를 봤다면서 방송으로 알게 된 변호사를 법정대리인으로 선임한 이상한 모양새다. 전문가 자격의 실종과 함께 우리 사회 품격도 침몰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 건 나뿐일까.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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