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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와 술탄 자존심 대결 … 푸틴, 터키 근로자 추방

중앙일보 2015.11.30 01:49 종합 1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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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F-16s 전투기가 지난 24일(현지시간) 러시아 수호이(Su)-24 전폭기를 격추한 이후 양국 갈등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9세기 제정 러시아시대의 구원(舊怨)까지 되살아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이 맞물리며 과거 ‘차르 대 술탄’의 대결을 보는 듯하다고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25일 보도했다.

“러시아 전투기 추락해 슬프다”
에르도안 뒤늦은 사과 안 먹혀
러, 고용제한·금수조치 등 강경
외부 적 만들어 내부 단합 도모
권위주의 통치스타일은 닮은 꼴


 일단 에르도안이 한 발 물러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러시아 전폭기 격추 초기엔 “러시아 전투기가 영공을 침범하는 일이 또 생긴다면 같은 방식(격추)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가 최근 “러시아 전투기인 줄 알았더라면 다르게 대응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푸틴의 사과 요구에 “사과는 터키가 아니라 우리 영공을 침범한 측이 해야 한다”고 했다가 “우리 군에 의해 러시아 전투기가 추락해 슬프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되고 말았다. 앞으로는 재발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물러섰다. 물론 잘못한 게 없다는 뉘앙스이긴 했다.

 푸틴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에르도안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길 거부했다. 푸틴은 “터키 고위 지도부는 아직도 러시아에 전폭기 격추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으며, 피해 배상을 하겠다는 제안이나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푸틴은 터키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재로 보복했다. 푸틴은 28일 ‘러시아 국민 보호 조치 및 대(對)터키 특별 경제 조치에 관한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러시아는 앞으로 터키산 일부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터키와 체결한 비자 면제협정도 중단한다. 터키인 근로자 채용 금지와 동시에 터키인들의 노동 계약 연장도 금지된다. 러시아 당국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에서 일하는 터키인은 약 9만 명으로 대부분 건설 분야에 종사한다. 근로자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현재 러시아에 있는 20만 명 가량의 터키인들에 대한 사실상의 추방 조치가 이뤄지는 셈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 같은 경제 제재안을 30일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 제제로 터키 경제는 적잖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매년 350만 명의 러시아인이 터키를 찾는다. 터키 전체 외국인 여행객의 12% 수준이다. 터키는 에너지의 20%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양국 간엔 러시아~흑해~터키를 잇는 천연 가스 송유관(터키 스트림) 사업도 논의 중이다. 지난해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으로부터 농산물과 식료품을 수입할 수 없게 된 러시아가 대체 통로로 삼은 데가 터키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리아 사태, 특히 전폭기 격추 이후 양국 관계는 얼어붙었다. 터키는 “영공을 수호하다 벌어진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하지만 러시아는 “계획된 도발”로 여긴다. 서구도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양국은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대립해 왔다. 우선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권을 ‘비호한다’는 비난을 자초할 정도로 감싸고 있다. 터키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목표로 할 뿐 아니라 시리아의 쿠르드족이 강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반면 러시아는 쿠르드족과 가깝다. 한 외교 전문가는 “터키의 전략적 목표가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으로 사실상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민족주의 감정까지 개입돼 있다. 터키는 터키계인 시리아의 투르크멘 반군을 지원해왔다.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권을 공격하는 투르크멘 반군을 공습해 왔다. 격추된 전폭기에서 탈출한 조종사나 구조 헬기를 공격한 게 투르크멘 반군으로 알려지면서 러시아는 공습을 늘렸다.

 사실 두 나라는 제정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 제국 때부터 싸웠다. 제정 러시아가 남진 정책에 따라 오스만제국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여 지중해로 통하는 관문인 다르다넬스 해협에서 충돌했다. 양국 충돌의 역사에서 대표적인 장소가 크림 반도다. 340여 년 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영토였던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넘어간 게 1783년이었다. 오스만제국으로선 제국의 붕괴로 가는 문이 열린 격이었다. 양국은 1850년대 크림반도에서 또 싸웠다. 오스만제국은 영국·프랑스 등과 연합했고 치열한 전투 끝에 러시아에 패배를 안겼다. 당시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 항구에서 러시아군이 치열하게 저항했던 상황을 러시아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가 『세바스토폴 이야기』에 담으면서 크림반도는 러시아인들의 가슴에 새겨졌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로선 유럽으로 이탈하려는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빼앗아 병합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으나 터키로선 신경이 곤두설 일이었다. 이후 러시아 측이 크림반도에 사는 오스만제국의 후예 타타르인들을 탄압한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터키가 외교 경로 등으로 러시아에 항의하기도 했다.

 양국 갈등엔 지도자들의 ‘닮은 꼴’ 통치 스타일도 영향이 있다. 둘 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 단합을 도모하는 스타일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사태 때 서방, 러시아 여객기 추락 사고 이후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적으로 삼아 국민들을 결집시켰다. 에르도안은 쿠르드족에 의한 테러를 부각시키면서 이달 1일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획득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푸틴이 에르도안이란 마초 스타일의 반자유주의적 동료 독재자(strongman)를 만났다. 둘 다 결정할 때 민족 자존심을 앞세우는 것으로 이름 높다. 둘 다 쉽게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터키 변호사, 기자회견 중 피격 사망=터키의 저명한 쿠르드계 인권 변호사 타히르 엘치가 28일 동부 도시 디야르바크르에서 기자회견 도중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그는 “(터키 쿠르드족 반군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은 테러 조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등 PKK를 공격한 터키 정부를 비판하면서 살해 협박을 받아왔다.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는 암살 가능성을 언급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이날 이스탄불 등 주요 도시에선 암살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고정애 런던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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