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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우울증 치료 길잡이 ‘뇌 지도’ 만든 일등공신

중앙선데이 2015.11.29 00:09 455호 9면 지면보기

1.3㎏에 불과한 인간의 뇌에 우주가 담겨 있다. 우주 속 은하의 수와 비슷한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복잡한 감정과 사고를 만들어낸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대부분은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의 뇌를 ‘소우주’라고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뇌의 비밀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일반 MRI보다 훨씬 정교한 ‘7테슬라 MRI’가 일등공신이다. 뇌의 구조뿐 아니라 신경세포 연결망까지 볼 수 있다.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이 보유한 7테슬라 MRI는 천문관측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허블 우주망원경’에 비교된다.


 

세계 최초로 가장 정밀한 뇌 영상을『뇌과학 ATLAS』(해부학 사진집)로 출판했다.


투시(透視)는 더 이상 초능력의 영역이 아니다. 10분만 누워 있으면 몸속 어디서 암이 자라는지 알 수 있다. X선과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촬영), PET(양전자단층촬영)까지 몸을 꿰뚫어 보는 방법도 다양하다. 사람을 ‘자르지’ 않고 몸속 비밀을 파헤칠 수 있게 되면서 의학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현대의학의 발전은 의료영상기술의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T·MRI·PET는 최신 영상장비 ‘삼총사’로 불리지만 원리는 각기 다르다. X선, 자기장, 양성자를 이용한다. CT는 한마디로 입체 X선이다. 들여다보고 싶은 곳의 주위를 돌면서 X선을 조사하고, 조직에 투과된 X선의 세기를 영상으로 재구성한다.


PET는 최첨단 핵의학 검사라고 할 수 있다. 추적자(tracer) 역할을 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인체에 투입하면 몸속에 퍼진 추적자는 조직세포와 반응해 양전자를 방출한다. 이를 영상화하는 것이 PET다.


MRI는 자기장을 이용한다. 원자핵은 평소 제자리에서 회전하고 있다. 여기에 강한 자기장을 가하면 공명현상을 일으킨다. 이때 원자핵에 고주파 에너지를 쏘면 특정한 신호를 방출하고, 이 신호를 재구성해 영상으로 나타낸다.


MRI는 CT에 비해 검사 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으나 자기장과 고주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인체에 해가 적다. 해상도와 대조도가 CT나 PET보다 뛰어나고 조영제와 같은 특별한 약물 없이도 촬영할 수 있다.  
0.3㎜까지 선명하게 찍어 이런 장점은 특히 뇌신경계 영상을 촬영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특히 기술 발전에 따라 해상도가 높아지면서 뇌의 비밀이 하나둘씩 풀리고 있다. 뇌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뇌 지도’를 만든 일등공신은 ‘7테슬라 MRI’다.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은 10여 년 전 국내 최초,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7테슬라 MRI를 구축했다. 지금도 전 세계에 40여 대뿐이다.

뇌과학연구원 지하 2층에 설치된 7테슬라 MRI.


?테슬라는 자기장을 표시하는 단위다. 1테슬라는 1만 가우스다. 거대한 자석과도 같은 지구가 자연적으로 내뿜는 자기장은 0.2가우스로, 7테슬라는 지구 자기장에 비해 35만 배 센 셈이다.


자기장이 클수록 더 자세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사용하는 MRI는 1.5~3테슬라로, 해상도는 1㎜를 구분하는 수준이다. 반면에 가천대의 7테슬라 MRI는 0.3㎜까지 촬영할 수 있다. 자기장 세기와 함께 선명도를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는 ‘RF코일’이다. RF코일은 안테나 역할을 한다. MRI 장비와 얼마나 정교하게 전파를 주고받느냐가 뇌 촬영기술의 핵심이다. 같은 7테슬라 MRI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선명도에 차이가 나는 건 이 때문이다.


3테슬라 MRI까지만 해도 영상이 균등하지만 7테슬라 이상에선 별도로 코일을 제작해야 한다. 가천대는 하버드대, MIT와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코일 제작기술이 있다. 7테슬라급 MRI를 보유한 전 세계 40개 연구소 가운데 10곳이 가천대가 제작한 코일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가천대는 더욱 세밀한 뇌 지도를 내놓고 있다. 지난 2011년과 2013년 각각 세계 최고 해상도 수준으로 ‘회백질(gray matter) 지도’와 ‘백질(white matter) 지도’를 연이어 발표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회백질은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부분으로 회색을 띤다. 대부분 대뇌피질에 분포한다. 백질은 신경섬유가 모여 있는 부분이며, 흰색을 띤다. 대뇌와 소뇌 안쪽, 간뇌·연수 대부분이 백질이다.


인간의 뇌에는 1000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가 있고, 이 세포들은 가느다란 신경섬유로 연결돼 전기회로와 같은 신경회로를 형성한다. 2011년 공개한 뇌 지도는 각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회로망까지 구석구석 살펴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2013년엔 복잡한 회로망까지 촬영했다. 즉 2011년 뇌의 어떤 부위에서 무슨 기능을 하는지 밝혀내는 데 머물렀다면 2013년엔 기능에 관련된 연결망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간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섬유도 찾아냈다.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곳은 ‘대뇌 변연계’로 알려져 있다. 이 변연계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 분노와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망이 얽히고설켜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신경줄기 다발이 각기 하나씩 감정을 맡는 것이다.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은 이 신경줄기 다발 중에서 분노·슬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섬유 하나와 기쁨·행복·사랑과 같은 긍정적 감정에 관여하는 신경섬유 세 가지를 찾아냈다. 다만 네 가지 신경다발이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에 관여하는지에 대해 아직은 윤곽만 파악한 단계다.   감정 조절 신경섬유 찾아내 그 자체만으로도 이 발견은 엄청난 의미가 있다.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과학적으로 풀이할 수 있는 근거를 던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울증이나 중독과 같은 신경회로 이상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사이코 서저리(psycho surgery)’ 시대의 가능성을 알렸다.


뇌 과학은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과 같은 뇌질환을 극복할 열쇠로도 꼽힌다. 뇌과학연구소 서유헌 원장은 “뇌질환을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원인 규명”이라며 “가령 치매가 발병하는 원인과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면 이에 기반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존하는 치매 치료제는 초기 인지기능을 개선하는 데 그친다. 중증 치매를 치료하는 방법은 마땅히 없는 상태다. 진행을 늦추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는 “7테슬라 MRI는 상세한 뇌 영상을 제공해 뇌질환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파킨슨병·우울증·자폐증 등 치료제 개발의 발판이 갖춰졌다”고 말했다.


약효 검증, 조기진단에 활용 7테슬라 MRI의 활용 가능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효 검증과 조기진단·예방도 가능케 한다. 질환 발생 전후, 치료제 투약 전후 미세한 변화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다. 서 원장은 “피킨슨병은 뇌에 흑질이라는 부위에 도파민 신경세포가 망가지는 질환”이라며 “이제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언제부터 망가지는지, 망가지면 어떤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기 진단의 물꼬가 트였다는 의미다. 치료제 효과 검증에도 유용하다. 새로 개발한 약제가 투여된 뒤 변화를 비교해 개선 여부를 즉각 확인할 수 있어서다. 기존에는 동물 임상실험 시 약효를 확인하려면 뇌를 꺼내 조직검사를 하거나 잘게 절편을 만들어 염색해 화학적으로 분석해야 했다.


?기존 방식은 약효를 확인하는 데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지속적인 경과 관찰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다. 서 원장은 “그동안 약효를 검증하더라도 동물검사를 하면 한 번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상을 이용하면 약물 효과의 경과를 지켜볼 수 있다”며 “뇌질환 연구의 속도를 높이는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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