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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않는 컴퓨터생물학, ‘행복 바이러스’ 전파 30년

중앙선데이 2015.11.29 00:06 455호 10면 지면보기

이영식 교수 1953년 전남 진도 출생서울대 화학교육과(학사), KAIST 화학 박사, 미국 피츠버그대 생물물리학 박사.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전문위원,바이오 신약 장기사업단장 역임. 현 한양대 교수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분자생명과학과 이영식(62) 교수는 학문적으로나, 생활인으로나 특별한 구석이 많다. 과학자로는 ‘실험하지 않는 생물학’인 바이오인포매틱스를 국내에 처음 들여왔고, 일상에서는 ‘행복 바이러스’를 잘 전파하는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대학 동료 교수나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고,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조차 그를 한 번 접하면 쉽게 잊지 못한다. 그를 인터뷰하고 싶었던 것은 꼭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신생 학문이 한국에 뿌리내리는 데 얼마나 힘든 과정이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싶어서다.


[박방주가 만난 사람] 이영식 한양대 분자생명과학과 교수

화학 박사이자 생물물리학 박사그에겐 두 개의 박사학위가 있다. 필자가 만나 본 사람 중에는 이 교수 이외에도 박사학위가 두 개인 사람이 더러 있다. 하지만 ‘학위를 쉽게 딴 듯한 느낌’이 드는 게 대부분이다. 이 교수는 KAIST 화학 박사,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용어도 생소한 ‘컴퓨터 생물학’ 전공으로 생물물리학 박사를 받았다. 요즘으로 치면 새로운 학문인 바이오인포매틱스(bioinfomatics)다. 비커로 실험하지 않는 생물학이기도 하다. 박사학위 한 개도 받기 어렵지만 상당수가 학위 하나로 평생 우려먹는 것이 요즘 세태 아닌가. 힘들게 두 개를 취득한 배경을 그에게 물었다.



 “화학은 상당 부분 정립된 학문이기 때문에 새로 개척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KAIST 박사학위 과정이 끝날 때쯤 알았다. 그래서 마침 피츠버그대 생물과학과로 박사 후 과정을 간 김에 다시 생물학 공부를 시작했다. 생물학은 그 당시도, 지금도 미지의 영역이 많은 매력적인 학문이다.”



 그가 한양대에 교수로 임용된 것은 1986년. 이 교수가 전공한 컴퓨터 생물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급부상하며 전문직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던 때다. 이 교수는 한양대 교수가 된 이후에도 미국에서 고연봉 일자리를 주겠다는 제안을 몇 번이나 받았고, 한양대 교수로 오기 전 근무했던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도 미국에 눌러앉으라고 적극 권했다고 했다.



 컴퓨터 생물학은 지금은 바이오인포매틱스라는 신생 학문으로 국내외 어디서나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가 귀국한 이후에도 한동안 ‘찬밥’이었다. 귀국 뒤 10여 년간 국가연구비를 신청하는 족족 떨어졌다. 그 또한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연구과제를 심사하는 사람이 컴퓨터 생물학의 발전 가능성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탓이다. 대학원을 진학하는 학생도 “실험도 하지 않는 생물학이 무슨 생물학이냐”며 기피했다.



?이공계 대학교수가 연구비도, 대학원생도 없으면 그 고난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필자도 안다. 설상가상으로 이 교수가 개인 돈을 들여 연구하려고 해도 국내에는 컴퓨터 생물학을 연구할 만한 고성능 공용 컴퓨터가 없었다. 이 교수는 결국 사비를 들여 방학 때마다 피츠버그대로 가 연구를 계속했다. 피츠버그행은 10여 년간 이어졌다. 이공계 교수의 고난의 여정이 눈물겹게 들렸다. 이 같은 어려운 환경에도 그의 학문적 열정은 식지 않았다. 신경세포·심장 연구 모델 개발그는 신경세포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인 ‘파라볼릭 버스팅(parabolic bursting)’의 수학적 모델, 심장의 비정상적인 박동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한 모델 등을 개발했다. 또 유전자의 활동 여부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 다수의 연구성과를 내놨다.



 이 교수는 “국가의 연구개발 방향은 새로운 학문 개척과 함께 기획도 시의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국가연구비의 효용성이 배가된다”고 말했다. 어려웠던 연구 과정에서 절실하게 느낀 아쉬움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 교수는 자신의 몫을 챙기기 위해 다투거나 자신을 내세우려고 일부러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이번 인터뷰도 몇 번의 요청 끝에 이뤄졌다. 황우석 박사가 한창 잘나갈 때 그는 ‘차세대 성장동력 바이오신약장기사업단’의 단장을 맡아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협력했다. 황 박사 사태 때 그와 협력했던 사람 대부분이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이 교수만 불려가지 않았다. 그 당시 취재기자였던 필자에게 그에 대한 인상이 지금까지 깊게 박힌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주 넓다. 연구과제의 심사비라도 받을라치면 함께 있던 사람의 식사비를 먼저 내려고 애쓰는 것은 물론이고, 논문 저자 배열에서도 가급적 연구 동료를 앞세운다. 10여 년 전에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복지재단 등 캠퍼스 주변의 복지시설 두 곳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동료 수백 명에게 월 1000원씩 기부 부탁을 했다. 지금까지 두 곳에 매달 100여만원이 전달되고 있다. 말이 쉽지 수백 명의 동료에게 일일이 부탁해 월급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 보통 일인가.



부인과 함께 기부·봉사에 열성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나 할까. 그의 부인 김명희씨 역시 지역의 자원봉사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감투만 쓴 회장이 아니다. 생활이 어려운 청소년의 급식비 지원, 장학금 지원, 법원과 협력해 비행 청소년의 선도에도 앞장서는 ‘맹렬 봉사자’다. 그 역시 부인 일에 손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에는 항상 밝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교직에 발을 디딘 지 얼마 안 되는 필자는 그에게 사도를 배우고 있다. 이 교수는 학과에서 학생 진로상담 전담 아닌 전담이 됐다. 그를 찾는 학생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원을 진학하려는 학생이 오면 국내외 교수 중 어느 교수가 가장 유능하고, 그 분야는 얼마나 유망한지 자세하게 안내한다. 자신이 아는 교수라면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학생과 연결해 주기도 한다. 그러니 상담을 원하는 학생이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중 연구개발 지원 방향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개발 지원을 하면서도 규제가 너무 많아 연구자의 창의성을 크게 훼손한다고 보고 있다. 그의 지적대로 정부 정책이 바로 서면 과학기술 분야의 창조경제가 활짝 꽃을 피울 듯하다.



 



 



박방주 교수?sooyong1320@gach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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