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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경호원·요리사·고3·대학생까지 … 시민이 빈소 주인이었다

중앙일보 2015.11.27 02:16 종합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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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영삼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이 26일 광화문을 지나 국회의사당 영결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시민들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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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左), 위문희(右)

지난 23일 오후 2시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조문을 앞뒀을 때였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경호원들이 20분 전부터 일반 시민들의 조문을 가로막았다. 이 모습을 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여봐” 하며 경호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조문객들을 막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곤 그는 직접 시민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이날 서울대 점퍼를 입은 여대생 4명이 조문을 오자 김 대표는 “평소 존경해서 왔느냐”며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학생들이 “서울대 의대 1학년에 재학 중인데 가까이에 빈소가 있어 오게 됐다”고 설명하자 김 대표는 슬리퍼 차림으로 빈소 밖까지 배웅하며 연신 “고마워요, 감사합니다”고 했다. 취재진을 보곤 “이런 게 기사 아니냐”며 껄껄 웃었다.

김경희·위문희 기자가 본 빈소 5일
전용기 승무원, 23년 전 운전기사 …
서울대병원 빈소 3만7300명 찾아

 YS가 서거한 22일부터 발인 날인 26일까지 5일 동안 현장에서 지켜본 ‘거산(巨山·YS의 호)’의 빈소에는 전·현직 대통령이나 정·관·재계 인사뿐 아니라 성별과 세대를 넘나드는 일반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거산의 5일장을 근접 취재한 80년대생 여기자 둘에게 YS는 친숙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 같다.

 엄마의 손을 잡고 조문하러 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7살 최민지양부터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80대 노인,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마친 고등학생까지 세대를 초월한 조문객 행렬이 5일 내내 이어졌다.

 매일같이 빈소를 지키며 이 모습을 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조문객들이 계속 오는데 뭔가 민심이… ‘쓰나미’ 같은 현상이야”라고 혼잣말을 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마지막 날(낮12시 기준) 서울대병원 빈소를 조문한 사람은 1600여 명, 5일장을 치르는 동안 3만7300여 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조문객 가운데는 YS가 만26세 최연소 의원으로 3대 국회에 등원했을 때부터 1992년 대통령 당선 직전까지 운전기사를 했던 김영수씨, YS를 측근에서 경호했던 당시 청와대 경호실 차장 양재열씨, 2003년부터 최근까지 상도동 자택에서 요리사로 근무한 이한규씨, YS의 전용기였던 공군 1호기 승무원이라고 밝힌 최성희씨 같이 사연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요리사 이한규씨=“인자하신 분이었고 참 편안하게 잘해 주셨습니다. 맑은 육수로 끓인 지리 대구탕을 특히 좋아하셨어요. 거제에서 올라온 대구로 끓인 대구탕을….”

 ▶운전기사 김영수씨=“그 양반하고 오래한 거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초산테러(1969년 6월 20일 괴한 3명이 YS에게 질산이 든 병을 던진 사건)도 나하고 둘이서 겪었죠. 둘이만 아는 거지.”

 ▶경호원 양재열씨=“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은 마음입니다. 조깅이 트레이드 마크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조깅을 통해서 저희 경호원들과 친숙하게 지냈고….”

 46년 전, YS의 친필 사인을 받은 인연으로 빈소를 찾은 이도 있었다. 24일 조문을 마친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거주하는 정수선(62)씨였다.

 이날 오전 11시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과 빈소에서 옛날 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87년 안국동 신민당 당사에 있는 YS를 테러하기 위해 괴청년들이 몰려들었는데, YS가 3층 창문을 확 열더니 그냥 뛰어내려. 기와집 지붕을 타고 뛰어 달아나는데, 정말 빠릅디다. 그런데 (지붕에서)발을 헛디뎌 국밥집 마당에 떨어졌지. 펄펄 끓는 국솥에 떨어질 뻔한 거지.”

 당시 테러에 실패하자 ‘용팔이 사건’(YS의 통일민주당 창당을 방해하기 위해 20여 개 지구당에 정치깡패들이 쳐들어와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 일어난다. 김 전 의장은 “JP도 (중앙일보)회고록을 쓰지만 YS에 대한 일화는 너무 많아. 용팔이(사건)만 하더라도…”라고 말을 흐렸다. 그런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이날 오후 5시쯤 한 상도동 인사가 찾아와 “용팔이 사건 주동자 김용남이 1시간 전에 왔다”고 귀띔해줬다. 그는 “선배 기자들한테 물어보면 용팔이가 누군지 잘 알 것”이라고도 했다. 김용남씨(현재는 목사)의 ‘기습 조문’은 YS의 인간적 면모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김씨가 다녀간 후 빈소 관계자들은 “YS가 ‘통합과 화합’을 이야기하셨는데 그런 측면에서 참 재미있는 장면”이라는 얘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YS를 36년간 수행한 김기수 비서관(1급)은 “각하가 용팔이 다 용서했다. 각하는 뒤끝이 없다”며 “생전에도 김씨가 몇 번 행사장을 찾아와 YS에게 ‘존경한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YS 영결식 하루 전 전격적으로 빈소를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쉬운 여운을 남겼다. 전 전 대통령은 “건강하시냐”고 묻는 현철씨에게 건강 얘기를 많이 했다.

 “나이가 있으니까 왔다갔다 하는 거지 뭐. 근데 이제 뭐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은 거야. 난 담배는 옛날부터 좀 못 피웠고, 술은 군 생활 하면서 마이(많이) 마실 때는 마이 마시고, 그런데 술도 맛을 몰라요, 나는. 담배는 피우면 머리가 아파. 머리가 휑휑 돌아.”

 어려운 걸음을 한 전직 대통령은 ‘화해’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수고들 하십니다”라고만 답하고 빈소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시민들의 조문으로 인해 빈소는 ‘통합과 화합’의 장이 될 수 있었다.

 23일 오후 4시40분, 빈소를 찾은 한 중년 여성은 10여 분 동안 방명록에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를 썼다. 마지막 문장이었다. “개인의 안일한 삶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해 주신 후생에 감사드립니다. 박종숙”. 일가족이 함께 빈소를 찾은 경우도 많았다. “선생님, 잘 살겠습니다. 잘 가르치고… 바르게 살겠습니다. 이시은 이종률 이봄 이평 올림”

 YS의 유훈(遺訓)대로 ‘통합과 화합’의 정신 은 빈소에서 이미 시작됐다. 그런 점에서 YS는 참 행복한 대통령이다.

글=김경희·위문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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