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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연명의료 중단 입법 늦어져 제각각 사전의향서 혼란

중앙일보 2015.11.27 01:29 종합 18면 지면보기
폐 섬유증을 앓던 김모(73)씨는 지난달 30일 병이 악화돼 의식을 잃고서는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의료진이 급히 심폐소생술을 해 심장이 살아났으나 호흡은 잘 못했다. 의료진이 인공호흡을 시도하려 하자 아들이 “아버지가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알렸다. 하지만 의향서 원본이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가족들은 사본을 보관 중인 사단법인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이하 사실모)’에 연락했다. 금요일 밤이어서 연락이 안되는 바람에 김씨는 인공호흡기를 달 수밖에 없었다. 사실모가 주말을 넘기고 이달 2일 사본을 팩스로 보냈으나 이미 부착한 인공호흡기를 뗄 수 없었다. 김씨는 연명의료를 하다 사흘 만에 숨졌다.

민간서 받은 서류 양식 서로 달라
법안 통과 되면 다시 써야할 판
7월 발의 법안, 국회서 멈춰 있어
내년 2월까지 처리 안 하면 폐기

 국회에 계류 중인 연명의료 중단 관련 법률(5개)이 통과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중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7월 발의한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이용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이 핵심이다. 보건복지부의 의중이 담겨 있다. 이 법안에는 사전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s)를 작성하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가칭)에 등록되고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게 돼 있다. 김씨한테 적용된다면 인공호흡기는 달지 않았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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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연명의료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23~25일 열렸으나 법안은 손도 대지 못했다. 30일 법안소위가 다시 열린다고 하나 이날 역시 여야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주문한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을 두고 논란을 벌이다 연명의료 관련 법안을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늦어도 다음달 2일까지 법제사법위원회(숙려기간 5일 필요)로 넘어가야 정기국회(폐회 9일)에서 처리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내년으로 밀려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 안 되면 19대 국회(내년 5월 임기 종료)에서 폐기된다.

 사전의료의향서란 건강할 때 말기의료를 문서로 정하는 제도다. 2009년 5월 대법원이 세브란스 김 할머니의 연명의료 중단을 판결할 때 의향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2013년 7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이하 국생위)에서 연명의료 중단에 합의할 때 도입을 권고한 것이다. 현재 두 곳의 비영리단체가 의향서 작성운동을 하고 있고, 한 기업이 보관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의 의향서와 김재원 의원 법률 안이 달라 법률이 제정되면 불가피하게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12월 이후 사실모를 통해 12만 명이 의향서를 작성했고 이 중 1만 명 분이 사실모에 보관돼 있다. 사단법인 ‘사전의료의향서 지원단(지하 지원단)’에선 올 3월부터 4000명(보관은 400명)이 작성했다. 민간기업 ㈜엘리티아 시스템스의 한국사전의향서보관은행(이하 보관은행)을 통해 2013년 11월부터 2만 명이 의향서를 썼다. 홍양희 사실모 공동대표는 “의향서 작성 열기가 식은 적이 없다. 시골 거주자, 젊은 사람도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모와 지원단은 거의 무료이고, 보관은행에는 등록비 2만원에 보관비 1만원(5년마다)을 내야 한다.

 국회에서 법률이 만들어지면 민간의 의향서가 무용지물이 될 소지가 있다. 정통령 복지부 생명윤리과장은 “국생위 논의 과정에서 민간 의향서는 인정하지 않고 참고자료로 쓰도록 했기 때문에 기존 작성자들이 새로운 양식에 맞춰 다시 작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재원 의원 법률안은 국생위 합의를 근거로 삼았는데 중단대상 연명의료 행위를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 네 가지로 한정한다. 반면 사실모 의향서는 김재원 의원 법률안에 없는 강심제·승압제·제세동기·체외순환을 포함하고 있다. 지원단은 강심제·승압제, 튜브(위)나 관(혈관)을 통한 영양공급을, 보관은행은 인위적 영양공급과 음료공급 중단, 항생제·수혈 등을 추가로 포함한다.

 사실모 홍 대표는 “민간이 훨씬 먼저 의향서 작성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를 통해 작성한 의향서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늦어질수록 이런 혼란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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