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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국회는 전업주부 마음 알기나 하나

중앙일보 2015.11.27 00:49 종합 3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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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전업주부 A씨(58)는 젊어서 5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국민연금 보험료를 냈다. 그가 직장인 시절 낸 보험료는 540만원이나 된다. 하지만 그는 노후에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결혼 뒤 직장을 그만둔 A씨는 남편이 국민연금에 가입한 무소득 배우자(전업주부)로 분류돼 국민연금에서 제외됐다. 이제 와서 임의가입 형태로 1, 2년 보험료를 부어봤자 연금 수령 요건(10년 이상 가입)을 못 채워 연금을 못 받는다. 만약 A씨가 혼자 산다면 그동안 못 낸 보험료를 낼 수 있다(추후 납부). 연금에 재가입하면서 5년치 보험료를 내면 10년을 채울 수 있다. 5년치 보험료(540만원)를 내면 매달 약 17만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평균수명(82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사망 때까지 약 4250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배우자를 둔 전업주부냐 미혼(이혼)이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대놓고 전업주부를 차별한다. 정부가 1988년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반발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적용 예외를 많이 뒀다. 전업주부가 대표적인데 그때는 배려였는지 몰라도 지금은 차별이 됐다.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도 한몫했다. 돈 버는 남편 연금에 기대 살면 된다는 남성 위주 문화의 잔재다. 27년 동안 세상이 수없이 바뀌었는데도 이 조항은 유지됐다.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증가하고 양성평등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랜데 아직도 그대로다. 이뿐 아니다. 전업주부는 다쳐도 장애연금이 안 나오고, 9년 동안 보험료를 냈어도 유족연금을 못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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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런 사각지대에 빠진 전업주부가 661만 명에 달한다. 한데 이들의 답답함을 덜어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회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25일 국회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위)가 아무런 소득 없이 활동을 마쳤다. 특위 산하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전업주부 차별 철폐에 합의해놓고도 전체 회의에서 ‘공무원연금 재정절감분 20% 사용’을 두고 싸움만 하다 논의조차 안 했다.

 남녀의 노인 빈곤율을 따지면 여성이 5.4%포인트 높다. 40~50대 여성들도 남성보다 훨씬 노후준비가 덜 돼 있다. 여성 빈곤 노인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성의 마지막 비빌 언덕이 국민연금이다. 세간에서 국민연금을 두고 ‘용돈연금’이라고 비판한다. 이 용돈연금도 여성 노인에게는 천수답에 내리는 가랑비 같은 존재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연금 특위에서 보건복지위원회로 되돌아갔다. 30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연다고 한다. 어떤 다른 현안보다 먼저 논의해야 한다. 야당이 전업주부 차별 철폐를 다른 사안과 연계해서는 안 된다. 우선 이것부터 통과시키고 다른 것은 나중에 논의해도 된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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