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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위선’보다는 홍문종이 더 낫다

중앙일보 2015.11.27 00:45 종합 3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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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얼마 전 새누리당 내 친박계 핵심 홍문종 의원의 발언이 여의도를 들쑤셔놓았다. 그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이미 죽은 제도” “외치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하는 총리(이원집정제)가 5년 단임제보다 정책 일관성이 있다”고 말했다. 개헌 시기로는 ‘20대 총선이 끝난 이후’를 꼽았고, 특히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조합이 회자되고 있다’는 질문에 “옳고 그르다를 떠나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의 발언은 친박발(發) 개헌론으로 대서특필됐다. 반기문-친박 총리론이 조금 튀긴 했지만, 그의 발언은 친박계 의원들이 사석에서 쏟아냈던 발언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술자리나 식사자리에서 편하게 했던 얘기를 홍 의원이 라디오에서 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친박계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 소위 ‘진실한 친박’에 가까운 의원들로부터 사석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하면 이렇다.

 ▶A의원="5년 단임제 대통령은 수명을 다했다. 권력구조 개편 문제를 총선 공약으로 과감하게 내세워야 한다. 총선 뒤에 개헌론이 공론화할 텐데 주도권을 잡으려면 공약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

 ▶B의원=“물밑으론 분명히 개헌의 흐름이 있다. 20대 국회에서 불이 강하게 붙을 것이다. 개헌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을까. (다당제가 돼) 보수꼴통들은 극우정당으로 헤쳐모이고 보수세력도 분화돼야 한다. 우리도 그런 사람들은 부담스럽다. 반기문 총장도 (이원집정제로) 개헌되면 고맙겠지.”

 ▶C의원="개헌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시기와 때가 있으니, 안 꺼내 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홍 의원의 발언이 보도된 뒤 친박계 의원들은 펄쩍 뛰며 그에게 융단폭격을 했다. ‘친박계의 치고 빠지기’ ‘반기문 애드벌룬을 띄워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려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해석도 나왔지만 어쨌든 겉으론 그렇지 않았다. “전적으로 홍 의원의 개인 생각” “내 정치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홍 의원을 비난했다. 현안이 산적한 연말 정국을 앞두고 나온 홍 의원의 발언이 시기적으로 적절했느냐는 논란은 물론 있을 수 있다. 또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조합에 대한 홍 의원의 답변도 경솔하긴 했다. ‘집권세력의 장기집권 의도’로 비춰지며 그가 강조했던 개헌의 당위성에 오히려 흠집이 생겼다. 하지만 ‘사석에선 개헌론자, 겉으론 개헌 반대론자’로 변신하는 일부 친박계 의원에게 홍 의원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홍 의원은 라디오에서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는 데 거의 모든 의원이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며 친박계 내부에서 개헌 논의가 진전돼 왔음을 시사했다. 지난해 김무성 대표의 개헌 발언 때 득달같이 김 대표에게 손가락질을 퍼붓더니, 정작 자기네들끼리 모여선 개헌의 필요성을 공유하다가도 청와대의 기색이 불편하다 싶으면 동료의 개헌론을 틀어막고 헐뜯는 위선이 판치는 한 제대로 된 토론과 고민은 불가능하다.

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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