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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영재를 키워내는 사회

중앙일보 2015.11.27 00:41 종합 3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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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논설위원

아이를 다 키워놓고 보니 어렸을 때 아이 주변의 그 수많은 ‘영재’들은 다 어디 갔나 궁금할 때가 있다. 아이 친구들 중에서도 영재 감별 테스트를 받고 영재교육기관을 다니던 ‘공인 영재’들이 있었다. “무슨 영재가 이렇게 많냐? 자식을 영재로 믿고 싶은 부모의 욕심을 노린 상술일 뿐”이라면서도 한편 부럽기도 했었다.

 천부적 재능이자 사회적 성공의 출발지로 여겨지는 ‘영재성’에 대한 열망은 ‘영재발굴단’이라는 TV 프로그램으로까지 이어진다. 외국어, 암산, 악기, 미술, 춤, 낚시 등에 이르기까지 영재 후보들이 총출동한다. 41개월인데 5개 국어를 읽고 쓰는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학생 수준의 수학 문제를 풀고, 법전을 외우는 아이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아이의 영재성을 판별하고 적합한 교육법을 알려준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어떻게 지도할지 고민”이라던 부모들은 막상 영재가 아니라는 판정이 나오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영재 혹은 천재라면 IQ 210의 신동으로 유명했던 김웅용 박사가 떠오른다. 흑백TV 시절 ‘꼬마 천재’ 김씨가 출연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외국어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훗날 지방대를 나와 평범한 직장을 택한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천재가 아니고, 남들이 살면서 천천히 배우는 것을 어린 나이에 먼저 익힌 사람일 뿐”이라며 “지금 나는 행복한데, 사람들은 내 행복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미국 명문대 합격증을 위조한 ‘천재 소녀’도 있었다. 논문 표절로 논란을 빚은 ‘천재 소년’ 송유근군은 또 어떤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지도교수가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라 인정했으니, 제자의 천재성을 빛내주려는 스승의 과욕이 화근이 된 것이 분명하다.

 “영재에 대한 해외의 실증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영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영재성을 잃는다. 부모나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둔화되는 영재성을 유지하려고 애쓰기 보다 영재가 보통 아이들과 비슷해질 시점에 정신적 붕괴를 겪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다. 많은 경우 영재라는 사람은 남들이 20살에 알 수 있는 것을, 어떤 이유에선가 10살에 아는 사람이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 글을 읽으니 영재로 태어나는 것보다 영재로 자라는 것, 영재가 되는 것보다 영재의 부모가 되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재를 품고 키워 내는 사회가 되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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