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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서울대 공대의 실용 커리큘럼 도입

중앙일보 2015.11.27 00:30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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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선임기자

최근 경기도 시골길을 지날 때 일이다. 서울보다 휘발유값이 훨씬 싼 안내판에 이끌려 무인주유소에 들어섰다. 가득 채울 만큼 결제하고 휘발유를 넣었는데 6000원어치가 남는 게 아닌가. 미사용 금액 환불을 위해 사무실로 가보니 정적만 흘렀다. 주위를 둘러보니 멀찌감치서 남자 직원 단 한 명이 일하고 있었다. 그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이미 자동 환불됐고 영수증 처리도 그렇게 됐을 테니 안심하고 가라”고 했다. 자동 출력된 영수증엔 당초 결제 금액이 취소되고 주유한 만큼만 결제돼 있었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글로벌 노동력의 감소와 탈(脫)시장경제의 도래’라는 부제와 함께 『노동의 종말』 초판을 내놓은 건 1995년이었다. 당시 세계 경제는 정보혁명이 표면화되기 전이었다. 인터넷은 걸음마를 했고 스마트폰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리프킨의 주장은 미래학자의 상상력으로 치부될 만 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그의 예측대로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빠른 속도로 사람을 일터에서 내몰고 있다. 그 대상에는 화이트·블루 칼라 구분이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무인주유기 앞에 직원 한 명이 대기하면서 고객을 응대하는 곳이 많았다. 사무실에는 경리 직원도 한 명쯤 있었다. 24시간 영업에 3교대면 최소 여섯 명의 직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제 대형 주유소를 직원 한 명이 관리할 수 있는 건 ICT 덕분이다. 이는 리프킨이 족집게처럼 예측한 대로 정보혁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충격파는 고스란히 청년에게 전해진다. 제조업은 수 조원을 들여 생산라인을 신·증설해도 많은 인력이 필요 없다. 산업구조의 고도화·첨단화가 정보혁명과 맞물려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아서다. 투자 규모가 클수록 기계화·플랜트화하면서 노동력을 쓸모없게 만든다. 그러니 취업 문이 계속 좁아져서 청년 일자리 확보가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는 새로운 청년 고용정책이 나와야 한다.

 기껏 취업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론 노동시장의 ‘메가 트렌드’에 대응할 수 없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려면 문제의 본질을 고쳐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교육 개혁과 규제완화다. 개발연대에 효율적이던 교육 방식은 이제 수명이 다했는데 교육부는 지금도 명시적·암묵적 감독체계로 대학을 규제한다. 대학이 수요자(기업)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학생 선발권과 독창적인 커리큘럼 운영이 필요하지만 조금이라도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려면 보조금·감사 같은 당근이나 채찍에 휘둘려야 한다. 대학이 전공과 일자리의 불일치를 해소하려고 자체 개혁안을 내놓아도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교수 사회가 저항에 나서는데 이것도 당국의 규제가 변화의 차단막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희소식 하나는 최근 서울대 공대가 그간의 관행을 반성하고 실용을 중시한 교육을 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이 대학 공대는 올 7월 보고서를 통해 기존 방식은 현실과 괴리된 이론 중심 교육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이런 변화는 현재 세계적 대학이 하나같이 실전 경쟁력을 갖춘 학생 배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흐름과 같다. 미국의 스탠퍼드대, 중국의 칭화(淸華)대 같은 곳이 대표적인데 이들 대학 입학생은 입학 순간부터 실용적 커리큘럼에 의해 창업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빌 게이츠·마크 저커버그 같은 이들이 대학을 중퇴해도 창업에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이다. 중국에선 창업이 하루 1만 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한국처럼 교육부·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가 쥐고 있는 온갖 규제가 없어서라는 게 창업 전문가들의 통찰이다.

 대학이 새로운 노동 환경에 적합한 인재를 육성하려면 자유방임에 가깝게 규제가 없어져야 한다. 기업이 대학에 산학협력 시설을 지어주면 세금을 면제해주고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로 사업에 나서면 토를 달지 말고 지원해야 한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면 성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대기업 주도 창조경제센터를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 청년 역시 이제는 창업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 청년이 창업·창직에 나서는 토양을 박근혜 정부가 잔여 임기 경제정책의 핵심 과제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이유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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