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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이 걸었던 대부산, 김명민 유배된 거금도 눈부시네

중앙일보 2015.11.27 00:01 Week& 4면 지면보기
2015년 한 해의 여행지는 영화와 함께 기억될 만하다. 올 초 윤제균 감독의‘국제시장’과 함께 부산의 시장 골목이 들썩거렸다면, 서울은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덕분에 1년 내내 화제에 올랐다.

2015년 한국 영화가 찾은 여행지

소위 ‘극적인 공간’은 부산과 서울에만 있지 않았다. 2015년을 정리하며 인상적이었던 영화 속 공간을 모았다. 여행과 영화를 두루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연말정산법이다. 주의! 스포일러 다량 함유.


1. 협녀, 칼의 기억 - 경기도 양평 대부산(설매재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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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눈부신 겨울 풍경을 보여준 영화는 ‘협녀, 칼의 기억’이었다. 영화 에필로그에서 월소(전도연)와 홍이(김고은)는 그림 같은 설산 위를 하염없이 걷는다. 컴퓨터 그래픽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 장면은 양평 대부산(743m)에서 2014년 2월 촬영됐다. 설매재자연휴양림 앞에서 배너미고개로 1시간 가량 올라가면 확 트인 고원이 나온다. 대부산은 산세가 완만하고 경치가 빼어나 겨울 산행지로도 손색없다. 정상에 서면 용문산(1157m)·장군봉(1065m) 등 주변의 산이 병풍을 치고, 남한강과 양평 시내까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왕의 남자’ ‘관상’도 여기에서 촬영했다. 정상부에 ‘관상’ 속 내경(송강호)의 집으로 쓰였던 초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입장료 1500원.    031-774-6959(설매재자연휴양림).


2.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경기도 수원 찻집 ‘시인과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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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늘 여행을 부추긴다. 여름날의 통영 유람기 ‘하하하’가 그랬고, 서울 북촌의 골목을 헤맸던 ‘북촌 방향’이 그랬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모든 배경이 수원이다. 함춘수(정재영)와 윤희정(김민희)이 화성행궁 복내당에서 우연히 만난 뒤 수원 곳곳을 쏘다니다 오밤중까지 술잔을 기울인다. 두 주인공이 거나하게 취했던 분위기 좋은 술집 ‘시인과 농부’는 실제로 팔달문 근처에 있는 찻집이다. 상호는 영화와 같지만, 사실은 술은커녕 커피도 팔지 않는 전통 찻집이다. 가게 역사는 27년을 헤아리는데, 낡은 책과 찻잔·오르간 등 소품 하나하나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약 20년 세월의 방명록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2년 숙성한 모과차(7000원)가 인기다. 오후 1~10시. 화요일 휴무.     031-245-0049.


3. 베테랑 - 충북 청주 성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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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명동 액션 신은 영화의 백미다. 자동차가 좁은 상점가를 아슬아슬 질주하고, 번화가 한복판에서 두 남자의 피 튀기는 싸움이 펼쳐진다. 안하무인의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황당하게 한 “나 여기 아트박스 사장인데”라는 명대사가 튀어나온 순간도 이때다. 한데 이 액션 신은 사실 서울 명동이 아니라 충북 청주 성안길에서 촬영된 것이다. 섭외도, 통제도 까다로운 명동 대신 청주 성안길이 배경이 됐다. 성안길은 옛 청주읍성 북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거리인데, ‘젊음의 길’로 통하는 청주 제일의 번화가다. 대형 쇼핑매장과 극장, 액세서리 노점과 의류매장이 좁은 골목 길에서 뒤섞인 모습이 놀랍도록 서울 명동과 닮았다. A문구점은 실재하지만, 직영점이어서 영화와 달리 사장님은 없다.     043-201-2042(청주시청 관광과).


4. 스물 - 전북 고창 ‘보리나라 학원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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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세 친구의 대책 없는 청춘을 그린 영화 ‘스물’은 어느 시골길에서 끝을 맺는다. 애정 문제, 장래 걱정 등으로 안절부절 못하던 그들은 국토대장정을 떠난다. 그리고 잠시나마 희망을 엿본다. 이들이 함께 걷는 시골길이 전북 고창에 있는 ‘보리나라 학원농장’에 있다. 겨울에 촬영돼 영화에서는 심심한 풍경으로 비치지만, 사실 학원농장은 사계절 아름다운 곳이다. 봄에는 푸른 청보리가, 여름에는 노란 해바라기가, 가을에는 흰 메밀꽃이, 겨울에는 흰 눈이 약 50만㎡(15만 평) 규모의 드넓은 초원을 뒤덮는다. 매년 봄에 열리는 청보리밭 축제는 봄 풍경을 찾아다니는 사진 애호가의 성지로 통할 정도다. 보리밭 사이사이로 좁은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언덕 위 전망대에서 너른 들과 ‘S’자 흙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063-564-9897.


5.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 - 전남 고흥 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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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많은 장면이 경남 고흥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삼았다. 명탐정 김민(김명민)과 서필(오달수)이 유배된 외딴 섬은 고흥 구암리 에서, 어린 소녀의 사체를 물에서 건져 올리는 장면은 거금도 명천바다목장마을 앞 용섬과 주름목섬에서 촬영했다. 영화에선 시체가 떠오르는 바다지만, 명천바다목장마을 앞바다는 미역·전복 등 온갖 수산물이 풍부한 바다다. 기암괴석을 머리에 얹은 듯한 모양의 용섬은 낚시 포인트로도, 일출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거금도과 용섬 모두 도로로 연결돼 있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마을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전망대를 품은 거금 생태공원이 자리한다. 최근에 해안길·숲길 등을 한데 아우르는 42.2㎞ 길이의 ‘거금도 둘레길’이 개통했다.     061-830-5605(금산면사무소).


6. 암살 - 경남 합천 합천영상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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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들이 활약하던 1930년대의 경성 명치정(명동) 거리는 경남 합천에 있다. 암살단의 은신처였던 ‘아네모네 카페’의 외관, 하와이피스톨(하정우)과 일본군 사이의 인질극, 카와구치(박병은) 대위가 조선인 300명을 죽였노라 지껄이던 대로변 장면 등이 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 촬영됐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시대극 전문 세트장으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7만4600㎡(약 2만2500평) 터에 1920~80년대 한국을 상징하는 건물과 거리가 재현돼 있다. ‘암살’을 촬영한 장소는 반도호텔과 총독부 사이 거리 일대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촬영장인 동시에 관광지다. 추억 속 한국을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이 한 해 30만 명에 달한다. 운이 닿으면 촬영 현장도 구경할 수 있다. 입장료 어른 3000원, 어린이 2000원. 오전 9시~오후 5시.     055-930-3751.


7. 사도 - 경북 안동 만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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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 늙은 임금 영조(송강호)와 조선의 미래 정조(소지섭)가 어느 폭포 앞에 마주 앉는다. 사도세자의 ‘승정원 일기’가 계곡 물에 씻겨 지워지는 모습을 두 사내가 함께 바라본다. 정조는 눈물 짓고, 영조는 담담히 말한다. “오늘부터 니 애비의 일은 입에 담지도 마라, 애통은 애통이고 의리는 의리다.” 영조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이 장면은 경북 안동 만휴정(晩休亭)이 무대다. 만휴정은 1500년 조선 문인 김계행(1431~1517)이 건립한 누각이다. 안동 동남쪽 길안면 골짜기 안에 있다. 기품 있는 정자와 24m 높이의 송암폭포가 어우러져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폭포 아래에서 정자 쪽으로 카메라 앵글을 맞추면 절로 그림이 완성된다. 폭포 위 너럭 바위가 주변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명당 자리다.     054-856-3013(안동관광정보센터).

8. 손님 - 강원 정선 만항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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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만항재(1330m)라는 고개가 있다. 함백산(1573m)과 태백산(1567m)을 잇는 이 험준한 고개 안쪽 숲에서 ‘손님’이 촬영됐다. ‘우룡’(류승룡)이 피리를 불며 안개 낀 숲으로 들어가는 장면, 그러니까 복수를 그리며 마을로 되돌아가는 클라이맥스 장면이다. 가장 서글프고 섬뜩한 순간이 담긴 장소지만, 실제 만항재는 야생화 만발하는 천상의 화원이다. 만항재에서 금대봉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국내 최대의 야생화 군락지로 꼽힌다. 만항재 외에도 정선의 곳곳이 영화에 있다. 우룡의 아들이 숨진 숲은 정선 도롱이 연못이다. 갱도가 무너지며 생긴 산중 연못으로, 하이원리조트 뒤쪽 숲에 있다. 우룡이 아들을 묻고 연기를 피우던 절벽은 화암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몰운대다.     1544-9053(정선군 종합관광안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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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중앙포토, 각 영화사·지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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