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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간다 여성에게 빛 찾아준 비전케어

중앙일보 2015.11.26 00:15

저개발국 시각장애인에게 빛 찾아주는 비전케어.
우간다 여성 32세 아나에게 기적을 선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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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은 아프리카 우간다에 있는 작은 마을 캅초라의 한 병원 뒤뜰입니다. 앞줄에 앉은 주민들은 안구 보호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비전케어'(www.vcs2020.org)라는 국제실명구호기구의 도움으로 백내장수술을 받았습니다.

비전케어는 2002년부터 최근까지 아시아·아프리카· 중남미 34개국에서 1만6500여 명에게 무료로 백내장수술을 해왔습니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하얗게 변하며 시력이 악화되는 질환입니다. 적기에 수술을 받으면 실명을 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백내장환자 중 90%가 저개발국에 산다고 합니다. 저개발국에선 안과의사가 부족하고 수술 비용도 비싸 저소득층은 백내장수술을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의료 서비스가 보편적이지 않아 자신이 백내장에 걸렸음을 알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백내장을 방치하다 결국 시력을 잃게 됩니다. 비전케어가 백내장수술을 '개안'(開眼) 수술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비전케어는 지난달 캅초라에 닷새를 머물며 의료 봉사에 나섰습니다. 캅초라 봉사는 비전케어의 200회째 해외 방문입니다. 종이신문(11월 26일자 24면)에 올리지 못한 사진을 통해 비전케어의 스토리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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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는 '아프리카의 진주'라 불립니다. 세계 담수호 중에서 두번째로 크다는 빅토리아호를끼고 있고, 해발 고도가 높은 편입니다. 이런 우간다이지만 인구 3400만명에 안과의사는 45명뿐입니다. (참고로 한국은 안과 의사가 3000여 명입니다)

한국을 출발한 비전케어팀은 홍콩을 경유해 에디오피아에 도착한 뒤 우간다행 비행기를 갈아타고서 우간다 수도 캄팔라 인근의 엔테브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활주로 뒤편으로 보이는 호수가 바로 빅토리아호입니다. 최종 목적지인 캅초라까지는 여기에서 차로 8시간을 더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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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초라는 인구 7000명의 작은 마을입니다. 마을 중심가를 관통하는 도로도 포장이 안 돼 있습니다. 공공 시설에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병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캅초라의 공립 병원엔 의사가 4명 있지만 안과 의사는 없습니다.

한국의 안과 개인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비가 이 병원에 없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전케어팀 전원에겐 개인 수하물이 기내 반입이 되는 가방 하나로 제한됐습니다. 진료와 수술에 쓸 기기와 약품 일체를 수하물로 부치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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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케어의 캅초라 방문은 지난 7월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7월 방문시 160여 명의 환자에게 백내장 수술이 시급함을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열악한 전기 사정과 시간 부족 때문에 80여 명밖에는 수술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비전케어는 재방문을 결정했습니다.
현지 라디오 방송국에 돈을 내고 도착 일주일 전부터 하루 세 차례 광고도 내보냈습니다.
비전케어의 의료 봉사 소식을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덕분인지 월요일 아침 비전케어 측이 병원을 방문했을 때엔 대기실에 환자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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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백내장수술을 받게 된 이는 아나 입살리모(32)라는 이름의 여성입니다. 아나는 아버지 찰스(64)의 손을 잡고서 병원에 왔습니다. 찰스에 따르면 그녀는 열일곱살에 결혼해 열다섯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백내장에 걸려 시력이 악화됐고 설상가상으로 남편에게 버림 받았습니다.
결국 친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력을 상실한 지는 이제 8년이 됐다고 합니다.
아나의 양쪽 눈은 수정체가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비전케어 김동해 이사장(명동성모안과 대표원장)은 아나의 눈을 진찰한 뒤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한국에선 이런 상태의 환자를 볼 수가 없어요. 이렇게 악화되기 전에 손을 쓰기 때문이죠."
아나 외의 환자는 대부분 고령의 노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비전케어 팀은 아나를 보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아나는 의료진이 얼굴 앞에서 손을 움직여도 미세한 움직임만 감지하는 정도였습니다. 눈 앞에 손가락을 들이대도 몇 개인지 세지 못할 정도로 시력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비전케어는 아나의 눈에서 혼탁해진 수정체를 빼내고 대신에 아나에게 맞는 인공수정체를 넣어 주었습니다. 아나는 병원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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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틑날 검진을 해보니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아나는 시력 검사에서 0.4 정도의 시력을 보였습니다. 5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시력표상의 큰 글자를 분간하였습니다. 하루 전에 아나는 시력표상에서 가장 윗줄에 있는 제일 큰 글자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찰스는 수술 결과에 기뻐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머지 눈도 수술 받게 해달라"고 의료진에게 간청했습니다.

비전케어는 보통은 환자의 한쪽 눈만 백내장수술을 해주고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최소한의 수준이라도 시력을 되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아나만큼은 나머지 왼쪽 눈도 수술을 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나가 젊고 앞으로 보내야 할 세월이 아직 많이 남아 다른 어떤 환자보다도 수술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나는 하루를 더 병원에서 보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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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눈 수술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아나는 첫날과 둘째날 사진 촬영 때에 카메라를 제대9로 응시하지 못했습니다. "여기를 봐달라"고 재차 부탁했지만 엉뚱한 곳을 쳐다 보았습니다.
"시력장애인은 렌즈가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기 힘들기 때문에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런 아나가 양쪽 눈에 수술을 받은 후 1.0의 정상시력을 되찾았습니다. 아나는 자기의 수술을 해 준 두 명의 의사와 함께 사진 촬영에 응했습니다. 오른쪽 눈은 배지홍 원장(왼쪽)이, 왼쪽 눈은 김동해 원장이 수술을 맡았습니다. 두 명의 원장은 자신이 수술해 준 눈 가까이에 서서 카메라를 쳐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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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열악한 여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비전케어 측은 의료 장비라곤 하나 없는 병동 하나를 빌려 수술병동을 꾸몄습니다. 수술과 진료에 쓰인 의료 기기는 모두 한국에서 공수해온 것들입니다. 이들 장비에 전기를 대기 위해 발전기를 돌렸습니다. 발전기에 들어간 연료도 비전케어가 부담했습니다. 병동 천정에 전등마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의료 장비에 딸린 조명에 의지해 비전케어는 환자 한명 한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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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계속됐습니다. 대기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붐볐습니다. 이 참에 수술을 받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 수술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할 환자도 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비전케어 의료진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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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케어는 닷새 간 104명의 환자에게 백내장수술을 해줬습니다. 열악한 여건이었기에 이들의 보람은 더욱 컸습니다. 비전케어 의료진이 묵은 현지 숙소에선 예고 없이 물과 전기 공급이 중단됐습니다. 하지만 매일 새벽 6시에 기상해 진료 일정을 점검하고, 하루 종일 수술에 매달린 뒤 장비를 정리하고서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돌아와 밤 10시에야 저녁을 먹기도 했습니다.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얼굴이 밝아질 것을 기대하며 고삐늘 늦추지 않았습니다. 비전케어 김동해 이사장은 "백내장수술은 다음날 바로 호전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의사 중에서도 안과 의사가 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며 기뻐했습니다. 비전케어 팀은 마지막 수술일에 마지막 환자의 수술을 마치고 밝은 표정으로 수술실 안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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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초라를 떠나는 날 아침에 백내장수술을 받은 전체 환자가 다시 병원에 모였습니다. 비전케어는 이들 환자의 수술 경과를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눈약이 필요한 환자들에겐 눈약을 건네주고 복용 방법도 안내했습니다. 수술 전 상태와 수술 후 경과가 담긴 진료 차트도 환자 개인에게 일일이 전달했습니다. 차후에 이들이 다른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생길 때를 대비해서입니다.

비전케어는 환자들에게 티셔츠를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에게 제일 소중한 선물은 앞으로 남은 시간을 보다 선명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줄 시력일 것입니다. 백내장수술은 이들에겐 시력뿐 아니라 인생을 되찾게 해주는 기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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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아나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2박3일간 양쪽 눈을 수술 받고 정상 시력을 회복해 집에 돌아갔을 때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해 아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나에 따르면 어머니 제시카(58)는 아나를 맞이하고 말없이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한참 동안을 말입니다.

젊은 딸의 곡절 많은 인생을 지켜봤을 어머니의 눈물은 쉬 그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내는 자기보다 열한살 어린 여동생과 옷과 담요를 팔며 생계를 이어간다고 했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옷과 담요를 파느냐"는 질문에 아나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 장사를 잘 해보고 싶다. 이웃과도 잘 어울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나는 "앞으로 보다 멋있게 인생을 살고 싶다. 한국 의료진에게 감사 드린다"고도 했습니다.

마지막 촬영에선 아나 혼자서 시력표 앞에 섰습니다. 비전케어의 모토는 '시력을 회복하라. 비전을 공유하라'(Restore sight, share vision)입니다. 비전케어가 되돌려준 아나의 시력은 아나에게 새로운 비전, 새로운 인생을 갖게 해줄 것입니다.

캅초라(우간다)=글·사진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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