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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무서운 이케아, 고마운 이케아

중앙일보 2015.11.26 00:15 경제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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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리바트는 서울 논현스타일숍의 한 개 층을 생활소품 전문 브랜드 ‘리바트홈’을 중심으로 꾸렸다. [사진 현대리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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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이 지난 8월 오픈한 대구 범어동의 플래그숍.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매장’을 콘셉트로 해 모델하우스처럼 꾸몄다. [사진 한샘]

“국내 가구산업이 초토화될 것이다.”

‘메기 효과’로 단단해진 토종 기업
강자에 위기감 느껴 경쟁력 강화
한샘, 배송 안 하는 약점 파고 들어
에몬스, 실용성 맞서 ‘고품격’ 전략
월마트·수입차·바일란트 진출에
국내 업체들 혁신으로 정면 승부


 세계적인 가구 공룡 이케아(IKEA)가 국내 진출한 지난해 12월, 토종 국내 사업자들에게 ‘이케아 공포’가 엄습했다.

 연매출 292억9300만 유로(약 38조원)에 달하는 덩치가 문제가 아니었다. 합리적 가격과 세련미, 8600종이 넘는 제품군을 갖춘데다 단순히 가구를 파는 것이 아니라 공간별로 어울리는 가구와 소품의 조합을 제시하며 ‘라이프 스타일을 판다’는 새로운 개념을 앞세운 게 무서웠다. 이케아의 한국 진출 1주년을 앞두고 이 회사는 두려움과 우려의 대상만이 아닌 고마운 경쟁자 대우까지 받고 있다.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가구업체들의 경쟁력이 더욱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의 가구 계열사인 현대리바트는 최근 생활소품 전문 브랜드 ‘리바트홈’을 론칭하며 이케아 대항마를 자처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가구업계에서는 전등·발판·도마·쿠션과 같은 생활소품이 구색맞추기 상품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시장규모 10조5000억원 선인 국내 가구시장에서 소품 분야는 2조5000억원대로 무시할 수 없는 규모가 됐다.

 소품시장이 더욱 주목을 끌게 된 건 이케아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경기도 광명에 1호점을 오픈하며 8600가지가 넘는 물건을 전시했다. 소위 ‘소품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것. 이에 맞서 신세계그룹은 올해 6월 경기도 일산 이마트타운 내에 ‘정용진판 이케아’라 불리는 소품샵 ‘더 라이프’를 열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리바트 서울 논현스타일숍의 한 개층을 소품 플래그십 스토어로 정했다. 엄익수 현대리바트 상무는 “1600개 내외인 생활소품군을 확대해 2017년 4000개, 2020년까지 약 5500가지로 늘릴 계획”이라며 “매장은 내년 말까지 40곳, 2020년까지 60곳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라고 밝혔다.

 이케아 효과를 가장 크게 누리고 있는 곳은 가구업계 1위인 한샘이다. 올 상반기 매출이 역대 최대인 77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3%나 늘었다. 영업이익은 663억원으로 무려 42.2% 증가했다. 최양하(66) 회장은 “이케아는 세계적인 공룡기업에 틀림없지만 장점이 많은 만큼 단점도 많기 때문에 이를 공략하며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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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회장의 말처럼 한샘은 이케아의 약한 고리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이케아에서 물건을 살 경우 직접 실어나르고 조립해야하는 고단함을 느끼는 소비자의 불만을 파악하고 배송과 조립을 한샘에서 모두 해주고 있다. 또한 이케아 매장이 상대적으로 도심권 밖에 위치하고 있는 점에 착안, 도심에 큰 매장을 지어 소비자의 접근성을 키웠다. 이용원 한국가구산업협회 사무국장은 “최근 가구업계의 성장은 국내 소비자의 성향을 제대로 알고 있는 국내 가구업체들의 전략이 적중한 것”이라며 “한샘의 경우 2010년대 초반 이케아가 한국에 매장을 짓는다는 말이 들릴 때부터 이런 전략을 짜 왔다”고 전했다.

 에몬스는 이케아의 실용성에 맞서 ‘고품격’ 전략을 선언했다. 김경수(63) 회장은 지난 봄 열린 품평회에서 “가구다운 가구는 분명히 소비자의 인정을 받는다”며 이같은 의지를 표명했다. 대신 타킷층을 40~50대에서 20~30대까지로 확장하고자 온라인·모바일 매장을 열었다. 젊은 층을 겨냥한 제품의 경우 세부장식을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췄다. 하지만 고가 제품과 동일한 자재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이 회사의 콘셉트는 ‘에코 프레스티지’다. 친환경 소재(Eco-friendly)를 사용한 명품(Prestige) 디자인의 가구라는 뜻이다. 에몬스는 올 상반기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30%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국내 가구업계의 변화를 촉진한 이케아효과를 경영학에서는 ‘메기효과’라 부른다. 미꾸라지 여러 마리가 있는 수족관에 메기 한 마리를 넣어두면 미꾸라지들이 죽지 않기 위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더욱 생존력이 발달하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기업활동으로 치면 위기 의식을 느낀 기업은 생존을 위해 다른 경쟁력 있는 전략을 찾는다는 경험에서 나온 이론이다. 이 논리는 이건희(73)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주창할 때 인용해 유명해졌다. 삼성의 내부 교육용 자료인 『삼성인의 용어집』에 실린 이 회장의 발언이다. “논에 메기를 키울 때 한쪽 논엔 미꾸라지만 넣고, 다른 쪽에 메기와 미꾸라지를 함께 넣으면 어떻게 될까. 메기를 넣은 쪽 미꾸라지가 훨씬 더 통통하게 살이 찐다. 메기에게 잡혀먹지 않으려고 항상 긴장한 상태에서 활발히 움직였기 때문에 더 많이 먹고, 더 튼튼해진 것이다.”

 두려움의 존재였던 글로벌 최강 기업의 진출에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난 건 비단 가구업 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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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자동차 판매량 5위에 올라있는 현대·기아자동차도 수입차의 공세에 안절부절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87년 수입차 시장이 개방된 후 수입차의 점유율은 올해(10월 말 기준) 15.8%까지 치고 올라왔다. 정작 점유율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2002년 벤츠코리아의 설립을 정점으로 벤츠·BMW·아우디와 같은 고급 수입차들이 속속 들어오면서 현대·기아차는 브랜드 경쟁력을 고민해야 했다. 정몽구(77) 회장은 이에 ‘품질경영’선언으로 정면 대결에 나섰다. 그 결정체는 2008년 탄생한 제네시스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신형 제네시스는 지난달까지 10만5915대(수출 5만3254대) 판매돼 현대차에서 만든 대형차 최단기간 10만대 판매 기록을 세우며 글로벌 명품차 대열에 합류했다. 이 회사는 아예 제네시스를 럭셔리 브랜드화했다. 최상위급인 에쿠스에도 제네시스라는 브랜드를 붙였다. 다음달 공식 출시될 이 ‘제네시스 EQ900’은 사전 예약을 시작한 지난 23일 하루 동안 4342대의 계약이 몰리며 기존 에쿠스 첫날 예약 기록을 경신했다. 정의선(45) 부회장은 이달 초 열린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식에서 “제네시스 브랜드는 현대차에 있어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이면서도 현대차그룹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라며 “안주하는 것은 현대차 정신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유통업계에서는 98년 세계 1위 대형마트 월마트가 진출했을 때의 상황이 회자된다. 당시 토종 한국마트들이 고전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반대로 국내 소비자에 특화된 서비스들 선보이면서 오히려 이마트가 월마트 한국매장 인수해 버렸다. 당시 이마트 이천지점장이었던 박찬영 신세계그룹 부사장은 “철저히 한국 소비자의 취향에 맞췄다”며 “진열대를 높였던 월마트와 달리 진열대의 높이를 소비자 손이 닿을 정도까지로 제한했고, 분위기도 창고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밝은 색으로 안팎을 치장했다”고 회고했다.

 지난 9월 글로벌 가스보일러 시장 1위인 독일 바일란트의 국내시장 입성에 대응하는 국내 보일러업체들의 모습도 주목된다. 바일란트는 전 세계 20개국 이상에 지사를 운영하며 연간 약 170만대의 보일러를 전 세계에 공급하고 있다. 연 매출 약 24억 유로(약 3조1000억원)의 거대 기업이다. 귀뚜라미는 질소산화물(NOx) 배출을 최소화하고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적용한 저녹스 사물인터넷(IoT) 가스보일러를 출시하며 맞불을 놨다. 정보기술(IT)강국인 한국의 장점을 보일러에까지 도입한 것이다. 경동나비엔은 프리미엄 보일러를 출시하며 바일란트와 정면 대결에 나선다. 이미 미국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콘덴싱 가스보일러를 국내화한 모델로,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한 미국기계학회(ASME)의 품질인증을 통과한 제품이다. 이 회사 원종호 영업본부장은 “프리미엄 제품끼리 한 번 경쟁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보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문병주·이현택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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