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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D] YS '한국병론'을 다룬 1993년 4월 중앙일보 사회면

중앙일보 2015.11.25 18:57
1993년 2월부터 98년 2월까지 재임했던 김영삼 제14대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응답하라 1990년대'식의 추억찾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YS의 임기 중반에 태어난 사람이 벌써 성인일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YS라는 인물은 물론 당시 시대상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사람이 이미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좋아하는 후배 한 명이 당시 상황을 다룬 지난번(22일 게재) 디지털 칼럼을 보고 그 시대와 YS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관심도 생겨 자료를 찾아봤다는 메일을 보내와 기운을 얻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지난번 글이 민주화를 중심으로 하는 바람에 지나치게 무거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YS 집권 당시 있었던 농담을 소개한다. YS 집권 초반인 93년 4월16일 중앙일보 사회면인 23면에 박스로 실렸던 필자의 기사다. 당시 YS의 집권으로 권위주의 군인통치가 종식(당시 즐겨 썼던 단어)되고 문민통치가 시작되면서 한국 사회에는 탈권위 물결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대통령을 다룬 농담이 대유행한 것이다. YS 유머도 그 당시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독일의 통일 총리인 헬무트 콜(1982~98)이 총리에 오르면서 큰 덩치와 느린 행동 때문에 콜 농담이 대유행했다. 하지만 우리의 80년대는 권위주의 시대라 이런 이야기를 외신 기사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남의 나라 이야기인줄 알았던 국가지도자에 대한 농담이 신문·방송·잡지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 단행본으로도 나왔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민주화와 문민 통치의 혜택이었다. 문민 시대를 맞은 한국에는 한동안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이래처럼 농담을 다룬 기사다 신문 지상에 실린 것도 그런 맥락이다.

아울러 당시 YS는 집권하자마자 정치군인은 물론 부패 공직자도 일소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쳤다. 그 시절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말이 '개혁'일 정도였다. 개혁의 핵심 대상은 이 기사에 등장하는 '한국병'이었다. 기사의 괄호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단어는 당시 거론됐던 개혁 대상의 각론이었다. 그 당시는 개혁과 한국병이란 말이 거의 매일 같이 신문 지상에 등장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기사는 당시 취재원으로 만났던 여러 의사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모아서 정리한 것이다.

응답하라 1993! 
1993년 4월 16일자 중앙일보 23면 사회면을 보겠습니다.
의료계가 진단한 한국병 중앙일보 ㅣ 1993-04-16 ㅣ A ㅣ 판ㅣ 23 면ㅣ
 
기사 이미지

<제목>
의료계가 진단한 한국병 중앙일보

“악성결핵균(부정부패) 감염에 백혈구(사정기관) 감소증”
간(관)에는 지방(뇌물)끼어 지방간증세
약물치료(사정)는 그동안 내성만 키워
채식(깨끗한 정치)하니 위장(기득권층) 공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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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결핵균(부정부패)이 오래전부터 폐는 물론 골수까지 깊숙이 침범해 있다. 균을 공격해 잡아 먹어야 하는 백혈구(사정기관) 수치가 정상이하로 떨어진 백혈구 감소증도 함께 나타나 저항력도 떨어진 상태다. 지금까지 수차례 약물치료(사정)를 했으나 완치되기 전에 약을 끊는 바람에 세균 내성만 키워 치료가 더욱 힘들다. 내성이 얼마나 강한고 하니 결핵균들이 모여 적당히 약한 약만 투여해달라고 요구할 정도다.』

최근 의료계에서 유행하는 한국병 풍자시리즈 한 대목이다.
김영삼대통령이 주창해온 「한국병론」과 관련,이를 진짜 질병의 진단·치료·예후와 연관시킨 풍자다. 한국병은 간 이상에서 시작됐다. 독소를 분해하는 간(사정기관과 정부기관)에 지방(뇌물)이 끼어 정상기능을 방해하는 지방간증세로 「사정기관부터 사정한다」는 대통령의 지시와 관련,의미있는 대목이다.

동맥경화증도 심각한 것으로 진단됐는데 비자금·정치자금 등 각종 검은 자금(콜레스테롤)이 너무 많아 혈액(기업자금)이 제대로 돌 수 없을만큼 혈관이 막혀있다. 게다가 철분(중소기업자금) 부족으로 심한 빈혈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진단됐다. 심각한 뇌빈혈증세는 공무원들이 무사안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

또 소변에 단백질이 많이 나오는 신장병증세도 나타났는데 호화사치로 나랏돈이 엉뚱한데로 흘러 나가고 있다는 뜻. 간염검사 결과 항체음성으로 나타나 간염균(금융 등의 개방)이 들어올 경우 발병이 쉬운 것으로 지적됐다.

신체검사 결과 기형정도가 아주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입(소비성향)은 크고 목(권력기관)과 배(부유층 호화사치)에 지방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그리고 주먹(군과 관료)이 너무 커 양팔(경제)을 움직이는데 지방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눈(미래를 보는 안목)은 심한 근시와 난시가 겹쳐있고 귀(여론반영능력)는 난청상태에 있는 것으로 진단됐다. 동맥경화를 치유하기 위해 채식(깨끗한 정치)을 권하고 육식(청와대 정치자금)을 금했더니 항상 뷔페음식(불로소득)으로 가득 찼던 위장(기득권층 지칭)이 공복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병 전문의들은 비계를 줄이는데 그정도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충고.
전반적으로는 운동요법(경기활성화 대책),식이요법(중기지원강화),그리고 항생제 치료(부정·무사안일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처방됐다. 특히 결핵치료는 균이 전멸할때까지 하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나타나므로 몸이 조금 상하더라도 독한 약으로 장기치료해야 한다는게 한국병과 의국 스태프회의의 결론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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