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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맥주로 감옥서 버텨” YS “남아공 맥주 구해온나”

중앙일보 2015.11.25 02:15 종합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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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5년 일일교사로 서울 재동초등학교를 찾아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몸을 풀고 있다. [중앙포토]


“일생을 하고 싶은 말씀 다 하고 사신 양반 아니오? 허허.”(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하하. 그렇습니다.”(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조문객들이 회고한 거침없는 YS
클린턴과 조깅하기 전 “안 질끼다”
전력 질주에 미국 통역 나가떨어져
“프랑스 갔을 때 호위하던 말 100필
시내에 똥 엄청 눠 미안했데이”


 23일 김영삼(YS) 전 대통령 빈소에서 오간 두 사람의 대화다. 이 전 총재는 YS가 한·미 정상회담 직후 총리인 자신에게 “내가 클린턴의 기를 콱 눌러줬지”라고 자랑을 하더라고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김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서울대병원 빈소의 조문객 중엔 ‘유쾌한 정치인 YS’의 거침없는 언행을 회고하는 이가 많다. “내가 ○○○○년에 YS를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는 식이다.

 ◆기-승-전(起-承-轉)-DJ=필생의 라이벌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한 경쟁심은 화법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초청에 응한 것은 YS 외에 DJ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YS가 간담회의 비공개 대화내용을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나섰다. 상도동 자택으로 기자들과 TV카메라를 잔뜩 불러 거실에서 브리핑을 시작했는데 그의 설명이 좀 특이했다. “내가 ‘햇볕정책 폐기해야 한다’고 했어. 그랬더니 전두환이 뭐라 뭐라 카더라고(하더라고). 그러니까 DJ가 말을 하던데…. 근데 목소리가 안 들려. DJ 건강이 안 좋나봐. 아무튼 그래서 내가….” 20여 분 브리핑 끝에 기자들에게 확실히 전달된 것은 DJ의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정보뿐이었다. YS가 “DJ 목소리는 안 들리더라”는 얘기를 4~5분에 한 번꼴로 되풀이했기 때문이다. 은연중에 YS의 경쟁심이 발동한 예다. YS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돌직구’를 날리곤 했다. 2006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커터칼 테러’를 당했을 때다. YS는 박 대표가 입원 중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박 대표 측은 모든 문병을 거절했고 발걸음을 돌리던 YS는 입을 열었다.

 “나도 테러에 대해 잘 안다꼬(안다). 박정희가 낼로(나한테) 초산테러를 해서….” 박 대표 측에선 “어떻게 딸 문병을 와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 얘기를 그렇게 하느냐”고 섭섭해했지만 YS 측은 “악의는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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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7월 방한한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건배하는 김 전 대통령. [중앙포토]


 ◆19세 차이 클린턴과 조깅 경쟁=1993년 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한 때 두 사람은 청와대 경내에서 조깅을 했다. 19세 차이인데도 YS가 클린턴보다 더 빨리 뛰어 미국 측이 당황했다고 한다. 여기에도 숨겨진 비화가 있다. 당시 영어 통역을 맡았던 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이 조깅 회동 하루 전에 YS에게 물었다. “내일 조깅을 하시면 어느 정도 속도로 뛰실 겁니까?” 통역을 어느 정도 속도로 해야 할지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YS로부터 “내가 클린턴이한텐 안 질끼다(질 것이다)”는 엉뚱한 답변이 돌아왔다. 승부욕이 발동한 YS는 다음날 새벽 300m 코스를 바람처럼 뛰었고 한 바퀴를 뛴 미 국무부 소속 통역은 나가떨어졌다. 이처럼 외교무대에서도 YS의 언행은 거침없었다. 27년 장기수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95년 방한 때 “내가 감옥생활을 버틴 건 일주일에 한 병 나눠주는 맥주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하자 YS는 바로 보좌진을 불렀다. “남아공 맥주 구해온나(와라).”

 ◆초등학교만 가면 ‘빵’ 터진 폭소=2006년 자택 근처 강남초등학교에서의 강연 때다. 시작은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암 투병 중에도 방한해 졸도를 해가면서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더라”는 교훈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장난기가 다시 발동했고 YS는 “내가 그래서 프랑스 답방했는데 100필 넘는 말이 내가 탄 차를 호위해 대통령궁으로 가더라꼬. 그런데 이 말들이 시내에 똥을 엄청 눠 미안했데이.”

 YS가 취임 직후 초등학교를 찾아 일일교사를 했을 때 “어렸을 때 꿈이 뭐였느냐”는 질문을 받고 “내는 숙면을 취하기 때문에 꿈은 꾸지 않는데이~”라고 답해 분위기가 썰렁해졌다는 일화가 있다. 또 92년 대선 유세 때 “속초엔 (월남한)함경도 분들이 많다”는 원고 내용과 달리 실제 연설에서 “속초에는…, 강원도 사람들이 많습니다”라고 말해 참모들을 경악시킨 이야기는 아직도 회자된다.

남궁욱·김경희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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