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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정치 인생의 파란 반상에 담겨 공격형 속기파 … 오자와도 바둑지기

중앙일보 2015.11.25 02:05 종합 13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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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6월 2일 부산 극동호텔에서 바둑을 두는 김종필. 선글라스에 비친 바둑판이 풍운의 정치 역정을 투영한 듯하다. [자료사진 한국일보]

김종필(JP) 정치에 바둑이 있다. 검은 선글라스에 비친 흰색과 검은 돌의 전개-. 그 사진은 JP 정치의 파란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1968년 5월 30일 공화당 의장이던 그는 당내 갈등으로 탈당계를 내고 당을 떠났다. 부산 해운대 극동호텔에서 여유롭게 바둑을 두는 장면이 사진기자의 앵글에 포착됐다. “다 집어치운다고 부산으로 내려갔어. 7~8명 당직자들이 계속 찾아와서 당 복귀를 설득하는데 뭐라고 하건 말건 나는 바둑이나 두고 있었지. 그 사진이 그때야.” 바둑은 풍운과 곡절, 격동과 조화의 세계다. 정치인생의 고비마다 JP는 바둑판 앞에 앉았다.

총리배 기전 만든 JP 바둑 사랑

 그는 61년 5·16 거사를 준비하면서 연락 장소인 청계천의 기원에 머물며 바둑을 배웠다. 그의 기풍은 공격형이며 20분 만에 한판을 두는 속기파다. JP는 승부에 별로 집착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져도 화내는 기색 없이 “얘가 왜 이러지? 오늘따라 왜 이래?”라고 자신의 부주의를 탓한다. 그는 98년 한국기원으로부터 명예 7단을 증정 받았다. 실제 기력은 아마 3급 수준.

 99년 1월 총리 시절 JP는 기성전 대국장으로 삼청동 공관을 내어주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배 축구대회는 있지만 대통령배(杯) 바둑대회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며 바둑대회를 만들었다. 99년 10월 대전에서 열린 ‘제1회 국무총리배 전국 아마바둑대회’에서 그는 ‘手談忘憂(수담망우)’라는 휘호를 썼다. 말없이 두는 바둑으로 삶의 근심을 잊는다는 뜻이다.

 JP는 반상(盤上) 외교를 펼치기도 했다. 이스라엘 방문 중엔 네타냐후 총리 앞에서 바둑 시범을 보인 뒤 그에게 영문 바둑책과 소품을 보내줬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일본 생활당 대표도 그의 바둑지기(知己)다.

정리=전영기·한애란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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