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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별 볼 일 없던 테임즈, 왕별로 만든 NC 세 남자

중앙일보 2015.11.25 01:04 종합 2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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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테임즈(NC)가 24일 서울 양재동 더 케이호텔에서 열린 프로야구 시상식에서 50표를 얻어 2015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외국인 선수가 정규시즌 MVP가 된 건 1998년 타이론 우즈(OB), 2007년 다니엘 리오스(두산) 이후 세 번째다. 테임즈는 “긴장돼서 며칠간 잠을 못 잤다. 내년엔 홈런 50개 이상을 치고 싶다. 올해 못 이룬 우승도 노리겠다”며 웃었다. 44표를 얻은 박병호(넥센)는 테임즈에게 화관(花冠)을 씌워줬다. 테임즈는 트로피와 함께 3700만원 상당의 SUV 차량을 부상으로 받았다. [뉴시스]


86경기, 홈런 9개, 도루 1개, 타율 0.232.

 2012년 당시 26세였던 에릭 테임즈(미국)가 메이저리그 시애틀과 토론토에서 거둔 성적이다.

 142경기, 홈런 47개, 도루 40개, 타율 0.381.

 2015년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24일 한국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테임즈의 기록이다.

 테임즈의 기록 변화를 보고 메이저리그와 KBO리그의 수준차를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보다 훨씬 화려한 빅리그 경력을 자랑하지만 1년도 버티지 못하고 퇴출된 선수는 수없이 많다. 야구는 기록 스포츠이지만 데이터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숫자를 해석하고 적용하고 예측하는 건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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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원석 찾아낸 임선남, 홈런 조력자 박승호, 도루 사부님 전준호.


 2년 전 테임즈는 ‘기록’이 발견한 원석이었다. 국내 프로야구단 중 유일하게 데이터팀이 있는 NC는 2013년의 테임즈를 발견했다. 임선남(37) 데이터팀장은 “많은 기록 중에서 의미 있는 걸 뽑아내고 이를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 기법은 영업비밀이라 소개할 수 없지만 테임즈가 NC에 잘 맞는 선수라는 건 알아냈다”고 말했다.

 테임즈는 빠른 배트 스피드와 강한 허리 회전력을 갖고 있다. 히팅 포인트가 뒤에 형성돼 밀어치기도 잘한다. 빅리그 투수들보다 직구 스피드가 시속 5㎞ 정도 느린 국내 투수들을 충분히 공략할 거라고 임 팀장은 판단했다. 또한 국내 투수들은 슬라이더·체인지업 등의 구사율이 높아 테임즈의 스윙궤적(업스윙)에 잘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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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팀장은 “메이저리그에서 테임즈는 코너 외야수(좌·우익수)를 맡았다. 홈런을 많이 쳐야 하는 포지션이지만 빅리그 주전으로 활약하기 애매한 실력이었다”며 “미국 네트워크를 통해 그가 한국리그에 관심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비싼 선수를 사오는 것보다 테임즈를 영입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NC 유니폼을 입은 테임즈는 홈런 37개, 타율 0.343를 기록했다. 박승호(57) NC 타격코치는 “2014년 초 테임즈가 다소 소극적으로 스윙을 하더라. ‘네 장점인 허리회전을 이용해 마음껏 쳐 보라’고 했다”면서 “코치들이 말하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 ‘오늘 내가 못 친 이유는 뭔가’라고 묻는다. 내가 본 타자 중 야구를 가장 잘 하지만 말도 가장 잘 듣는 선수”라고 말했다. 박 코치는 “김기태(47·KIA 감독)·이승엽(39·삼성) 등 최고의 왼손타자들을 봤지만 테임즈의 파워가 가장 뛰어나다. 하체가 앞으로 쏠리는 동작만 잡아주면 항상 폭발적인 스윙을 유지했다”고 덧붙였다.

 올해 테임즈는 박병호(53홈런·넥센)·나바로(48홈런·삼성)보다 홈런을 적게 쳤다. 대신 프로야구 최초,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40홈런-40도루를 돌파했다. 임 팀장은 “김경문 감독님이 뛰는 야구를 중시하기 때문에 테임즈가 그걸 방해하면 안 됐다. 팀 컬러에 맞게 웬만큼은 뛰어야 했다. 그렇다고 지난해 11도루를 했던 테임즈가 올해 40도루나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테임즈에게 추진 엔진을 달아준 건 전준호(46) 주루코치였다. 프로야구 통산 최다 도루(550개) 기록자인 전 코치는 상대 투수의 폼을 훔치는 요령과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기술을 가르쳤다. 현역 시절 넓은 보폭으로 베이스를 훔쳤던 전 코치는 “기술을 보강했더니 테임즈가 11보 만에 2루까지 가더라. 다른 주자들보다 1~2보 적다. 원래 스피드가 좋은데 미국에선 뛸 기회가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테임즈는 ‘사람’이 세공한 보석이 됐다. 테임즈는 “미국에서 ‘내가 오늘 경기에 나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매일 했다. 한국에선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다 보니 좋은 플레이가 나왔고 MVP까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NC는 테임즈의 잠재력을 발견했고, 테임즈는 NC에서 스스로를 재발견했다.

 2012년의 테임즈와 2015년의 테임즈는 전혀 다르다. 이제 미국·일본에서 탐낼 만 한 선수가 됐다. 그러나 테임즈는 내년(연봉 150만 달러·약 17억원)에도 NC에서 뛴다. 올해 계약서에 내년 계약의 옵션을 NC가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임 팀장은 “테임즈가 40-40을 할 거라고 ‘예언’한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그의 2014년보다 2015년이 더 나을 거라고 ‘예측’해서 2016년 계약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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