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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전하는 YS 의 열린 리더십

중앙일보 2015.11.25 01:01 종합 2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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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YS는 대통령 시절 ‘내 민주화 투쟁 덕에 자유를 얻은 언론들이 오보를 낸다’고 불평했다. 내가 ‘언론은 40%만 알면 보도하는 것’이라 설득하면 ‘당신도 기자 출신이라 그러지!’라며 웃고 넘어갔다. 그는 늘 언론을 존중하고 경청한 소통의 지도자였다”고 회고했다. [박종근 기자]


윤여준(76) 전 환경부 장관은 김영삼(YS) 정부에서 최장수 청와대 대변인 겸 공보수석(2년7개월)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YS맨의 한 사람이다. 청와대에서 본 YS의 국정운영과 인사·소통방식을 들어봤다. 그는 “YS의 3당합당 합류는 반드시 민주화를 이뤄내겠다는 소명의식과 권력욕구가 반반씩 작용한 결과일 것”이라며 “민주화 시대를 연 ‘창업’의 리더십에선 YS만 한 영웅이 없지만 ‘수성’에 요구되는 과제는 미완으로 남기고 갔다”고 평가했다. 윤 전 장관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YS가 보여준 용기와 돌파력, 리더십엔 미치지 못해 ‘정치적 아들’이라 보기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시중의 대통령 욕 그대로 전하면 ‘이게 참모의 할 일’ 격려”
3당합당, 민주화 위한 차선의 선택
소명의식·권력욕 반반 섞인 승부수
현철씨 인사 개입, 부분적인 수준
추기경 면담 뒤 대국민 사과 결정


- YS는 민주화 투사이면서도 6공 세력과 손잡고 3당 합당을 강행해 논란을 불렀다.

 “YS는 87년 DJ와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자 군정을 종식하려면 6공 세력과 손을 잡아서라도 대통령이 되는 길밖에 없다고 결단한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는 소명의식과 권력욕구가 반반이었을 것이다. 현실 정치인으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현실은 최선 아닌 차선·차악을 택해야 할 때가 많다.”

 - 청와대 공보수석 시절 아들 현철씨 문제를 사과하는 YS의 대국민 발표를 작성했다.

 “내가 직접 썼다. 당시 현철씨의 국정개입 논란이 갈수록 증폭되자 나는 김광일 대통령비서실장을 찾아가 ‘이 문제를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 하면 대통령이 임기를 못 채울 수도 있다’고 하니 그도 동감을 표시하며 ‘옷 벗을 각오로 돌파하자’고 하더라. 그러나 현철씨가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하는 수석들도 많아 YS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어느 날 김수환 추기경이 전화해 YS를 뵙고 싶다고 했다. 두 분이 두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눈 뒤 추기경이 나오는데 휘청거리시더라. ‘내가 할 일은 다 했어. 이제 당신들 일만 남았어’라고 하더라. YS가 그 뒤 개신교와 불교 지도자까지 모셔 얘기를 듣더니 ‘다들 말씀이 똑같다’며 내게 ‘대국민 사과문을 써오라’고 했다. 고심을 거듭해 작성한 초안을 놓고 매일 아침 YS와 한 자 한 자 검토했다. ‘아들을 조사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는 대목에서 YS가 돌연 사인펜을 들더니 ‘응분의’를 지우고 ‘사법적’이라 쓰더라. 내가 “그러시면 대통령이 아들의 죄를 인정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말렸지만 ‘대통령 아들은 잘못이 있어도 벌받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라고 일축하더라. 아마 YS는 아들의 무고함을 확신한 것 같다. 그래서 조사 끝에 아들의 죄 없음이 밝혀지면,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한 듯하다.”

 “나는 국민의 공감을 얻으려면 생방송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수석들은 대통령 심경이 어지러우니 적어도 15~20분은 시차를 두고 방송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YS는 ‘윤여준 수석 판단이 맞아. 생방송으로 해’라고 했다. 용기를 얻은 나는 ‘단 한 명의 배석자도 없이 대통령 홀로 고독하게 사과문을 읽어야 한다’고 추가 주문을 했다. ‘읽다 울음이 나오면 우세요. 열 번 틀리게 읽으면, 열 번 고쳐 읽으세요. 감정의 흐름에 맞기세요’라고도 했다. YS는 ‘알았어’ 하며 그대로 하더라.”

 - 사과문에서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란 대목이 눈길을 모았다.

 “발표 20분 전 대통령이 내게 전화해 ‘다른 건 다 좋은데 그 표현은 좀 속된 것 아이가?’라고 물었다. ‘원하시면 자식의 허물은 부모의 허물이라고 고쳐드릴 수 있다. 그러나 듣는 국민들을 생각하면 지금 표현이 훨씬 와닿을 것’이라 했다. 그러자 ‘윤 수석이 고집하면 할 수 없지’라고 힘없이 받아들이더라. 참 죄송했다. 담화가 나가자 국민들이 대통령을 동정하는 쪽으로 돌아섰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후 YS는 보고하러 들어가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웬만한 건 보고하러 들어가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 현철씨의 국정개입 논란은 어떻게 보나.

 “현철씨는 YS에게 단순한 아들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 시절 핵심 참모여서 신뢰가 컸다. 그러니 현철씨로선 인사문제에 나름 발언권이 있었을 것이다. YS는 인사를 결정하면 홍보수석인 나를 불러 내용을 알려주고 발표를 지시한다. 내가 집무실을 나오면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이 기다리고 있다가 ‘누가 됐느냐’고 묻는다. ‘아무개’라고 알려주면 깜짝 놀라는 걸 몇 번 봤다. 민정에서 올린 후보와 다른 사람이 됐다는 뜻이다. 둘이 ‘왜 인사가 이렇게 됐지?’ ‘아이, 다 알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현철씨가 개입된 결과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게 사법 처리의 대상은 될 수 없다.”

 - 박근혜 대통령도 3인방 등 청와대 측근들이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현철씨의 개입은 극히 부분적인 것일 뿐 YS는 공적인 인사시스템을 무시하지 않았다. 또 참모가 직언해도 전혀 언짢아하지 않았다. YS가 나를 불러 ‘경제 부처의 모 장관을 바꿔야겠다. 잡음이 많다’고 한 적이 있다. 나는 ‘기업들이 음해성 얘기를 했을 수도 있다. 잡음의 내용이 사실인지가 중요하다’며 말렸다. 그랬더니 수긍하면서 장관을 갈지 않았다. 그만큼 참모의 얘기를 기탄 없이 들었다.”

 -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이 500m나 떨어져 있어 논란인데 그때도 구조는 같았다.

 “그 구조를 바꾸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대통령 집무실이 테니스장만 해서 낭비가 크다. 문 열고 대통령 책상까지 오래 걸어가야 한다. 그럼에도 수석들은 YS와 소통이 자유로웠다. 대통령 공식 일정에 틈이 나면 곧 바로 뵙고 직보할 수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집무실을 드나들었다. 분위기도 권위와 거리가 멀어 정말 편하게 얘기했다.”

 - 당시 YS에게 직언을 하면 얼마나 받아줬나.

 “10개 건의하면 6~7개는 받아줬다. 내가 ‘그렇게 하시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하면 ‘내 생각이 짧았다’며 없던 일로 한다. 민정수석이 시중에 도는 대통령 욕을 그대로 전하면 무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까지 들었다. 다른 수석들이 ‘아무리 그래도 욕까지 보고할 이유가 있나’고 탓하면 YS는 ‘괜찮다. 그게 민정수석 할 일’이라 감쌌다.”

 - YS의 ‘열린 소통’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또 있나.

 “많다. YS는 항상 연초에 기자회견을 했다. 그해의 국정계획을 국민에게 반드시 보고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회견문은 20분 분량으로 간략히 써라’고 내게 신신당부해 체육 분야를 빼고 써드렸다. 그러자 ‘이 사람아. 체육이 얼마나 중요한데. 관계자들도 서운할 기라’며 추가하라고 했다. 그래서 발표문은 30분, 35분으로 늘어나기 일쑤였다.”

 - 96년 총선 공천은 YS가 다 했다. 요즘은 상상이 안 가는 얘기다.

 “평생 정치를 한 사람이고, 공천도 오래 해봐서 대단히 능란하다. 사람을 평소에 굉장히 유심히 찾는다. 선거 때마다 능력 있는 신인을 발탁해 새 피를 수혈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다. 손학규·김문수 같은 운동권 출신을 인재로 키웠고 이회창을 총리에 임명해 대권 주자로 만들지 않았나.”

 - 하지만 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는 YS와 각을 세워 악연이 됐다.

 “대구 유세에서 ‘영삼 인형’을 밟는 이벤트까지 벌어지면서 상도동 가신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들은 내게 이회창에 대해 입에 담기도 힘든 험한 욕을 하면서 ‘이회창은 우리 상도동과 동교동의 관계를 모른다. 싸울 땐 치열해도 동지적인 관계가 있다’고 했다. DJ가 당선돼도 YS 측에 나쁠 게 없으니 굳이 이회창을 돕지 않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 YS에게 가장 아쉬운 게 경제다.

 “97년에 접어들면서 국무회의에서 경제 부처 장관들이 경제상황이 나쁘다고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경제부총리는 ‘펀더멘털이 튼튼한데 무슨 소리냐’며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이러니 대통령도 경제가 위험한 줄 몰랐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그해 3~4월께 경제수석이 돌연 ‘나라 경제가 급격히 어려워지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일주일 전까지 “경제에 문제가 없다”던 그였다. 나는 YS에게 ‘어떤 나라 경제도 일주일 만에 나빠지지는 않는다. 민간에선 경제가 위험하다는 경고가 나온 지 오래다. 당국자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YS가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더라. 나도 맞받아서 그를 보았다. 그러자 YS는 ‘알았다. 그래야 되겠지?’ 하더라. 얼마 뒤 일부 관계자에게 조치가 내려졌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는데.

 “YS는 결단을 내리면 실패를 두려워 않고 밀어붙이고 결과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이런 자질 측면에서 김 대표는 아직 미흡하다. 현 시점에선 YS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정치권에) 없다.”

 - YS가 대통령 시절 DJ와 어떤 사이였나.

 “내가 상도동 출입기자 시절엔 YS가 ‘DJ는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걸 수없이 들었다.(웃음) 그러나 YS는 대통령이 된 뒤엔 DJ를 깎아내리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YS 임기 중 DJ가 두 차례 청와대에서 영수회담을 했는데 YS에게 아주 깍듯이 대하더라. ‘대통령 각하’라 부르며 존댓말을 쓰고 몸가짐을 정중히 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YS도 똑같이 하더라. 의원 시절 사석에선 두 사람이 말을 놓았다지만 대통령과 야당대표로 만나니 달라진 것 같다.”

 - 영수회담 내용은 어떻게 공개했나.

 “회담 뒤 청와대를 나간 DJ가 내용을 발표케 하고, 우리는 기자들에게 팩트만 요약해 알려줬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야당 입장만 반영된) 의심스러운 대목들이 보도되더라. YS에게 이를 알리고 ‘언론사에 연락해 바로잡을까요?’라고 물으니 ‘놔 둬라. 야당은 원래 그렇게 하는 기다’하며 웃고 말더라. 두 거목, 양김의 이런 통 큰 정치가 그립다.”

글=강찬호 논설위원
사진=박종근 기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

▶1939년 충남 논산 출생 ▶단국대 정치학과 졸업 ▶동아일보·경향신문 기자 ▶77년 주일본 대사관 공보관 ▶83년 국회 공보비서관 ▶84년 전두환 정부 대통령 공보비서관 ▶94년 김영삼 정부 대통령 공보수석 ▶97년 환경부 장관 ▶16대 국회의원 ▶2002년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 ▶2003년 여의도연구소장 ▶2012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선대위 국민통합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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