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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못한다 안 된다”는 당신께

중앙일보 2015.11.25 00:53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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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나, 아산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입니다. 요즘 힘들고 어렵지요. 이해합니다. 그러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주목받는 내 성공담에 “본받자”는 찬사가 이어지면서도 “제아무리 정주영이라도 지금 태어나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못한다. 안 된다”며 주눅든 청춘, 어려운 기업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내 평생 성공만 하고 살아온 것처럼 비치지만 결코 아니라오. 나는 실패를 먹고 자랐소.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네 번 가출한 끝에 1937년 22세 나이로 서울 신당동에 쌀가게 ‘경일상회’를 차렸지요. 하지만 일제가 쌀 배급제를 실시하는 통에 2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40년엔 북아현동에 ‘아도서비스’(현대차의 전신)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창업 한 달 만에 화재로 잿더미가 됐습니다. 평소 신용을 쌓은 후원자로부터 돈을 빌려 재기했지만 그마저도 일제가 기업 정비령을 내려 43년 해체됐습니다.

 53년은 막막한 해였습니다. 현대건설은 그해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 복구공사를 따냈습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물가가 120배 폭등하면서 건축 자재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습니다. 신용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사를 마쳤지만 일가족 집 4채를 팔아야 했습니다. 그 빚 갚는 데만 20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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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서울 계동 현대 사옥 집무실에서 인터뷰하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진 현대차]


 개인사에도 곡절이 많았소. 어릴 적 변호사가 되려고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보통고시(지금의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보기 좋게 낙방했습니다. 82년엔 비 내리는 한밤중에 홀로 차를 몰고 울산 현대조선소를 순찰하다 바다로 빠졌습니다. 차 문을 부수고 수심 10m가 넘는 바다를 헤엄쳐 나와 살았습니다. 장남은 교통사고로 잃었습니다. 92년엔 대선에 도전했다 낙마했습니다. 이후 한동안 세무조사에 시달렸습니다. 어떻소. 이래도 내가 성공만 하고 살아온 것 같습니까.

 누구나 스스로에게 닥친 위기가 제일 어려운 법입니다. 실패했을 때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좌절감도 들기 마련이지요. 일제시대, 한국전쟁, 군부독재를 거치며 살아온 내 세대와 요즘이 다르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내가 겪은 어려움과 실패가 결코 여러분의 그것보다 작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자동차·조선·건설 회사를 일궈온 역사, 여러분도 해낼 수 있습니다.

 청춘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 때문에 쓰리고, 기업은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며 구조조정에 한창입니다. 한국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내게 혹 한 가지 배울 게 있다면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도전정신, 그것 아니겠소. 오늘 내가 당신께 남기는 선물이라오. 부디, 도전하시오.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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