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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대통령 아버지와 아들들

중앙일보 2015.11.25 00:49 종합 3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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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
사회부문 부장

거산(巨山) 아래 ‘맹순이(손명순 여사 애칭)’와 소산(小山)이 있었다.(※거산은 김영삼 전 대통령, 소산은 차남 현철씨의 아호). 큰 산의 마지막 길을 ‘아내’라는 이름의 64년 동무는 침묵으로 배웅했다. ‘민주화의 산증인’인 거산의 서거 소식을 전하는 방송 화면에서 유독 시선이 고정된 건 상주인 현철씨에게였다.

 어느 시대나 최고 권력자의 주변에는 가족이 있다. 그들의 삶은 화려함과 동시에 신산(辛酸)에 차 있다. 삼국·고려·조선시대 권력암투의 끝은 승자 생(生), 패자 사(死)의 법칙이 관통했다. 걸린 게 목숨이 아닐 뿐 이런 풍경은 현대사에서도 재현된다. 거산의 그늘은 현철씨였다. 1997년 한보그룹 특혜대출 비리 수사 과정에서 “배후가 현철씨이며 그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이 폭로됐다. 대검 중수부의 수사 타깃이 현철씨가 됐다. 야당의 파상공세로 국정은 마비상태였다. 5월 말 현철씨는 정치자금에 대한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전격 구속됐다. 당시 거산의 심경은 『김영삼 회고록』(백산서당, 2000년 1월)에 담겨 있다.

 “‘내 아들을 구속시켜야 한다’…(중략)…김기수 당시 검찰총장에게 현철이를 구속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혐의가 없는데 어떻게 구속하느냐’고 했다. 내가 ‘혐의를 찾아서라도 하라’고 재차 엄명했다…(중략)…자식을 자기 손으로 감옥에 보내고 싶은 아버지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수많은 날을 번민 속에서 보냈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냉혹하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면서 나는 부정을 떨쳐버리고, 내 자신과 가족에게 참으로 가혹한 결단을 내렸다.”

 재임 중 아들이 구속된 건 후광(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호)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차남 홍업, 삼남 홍걸씨가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후광과 이희호 여사에게 홍걸씨는 특히 ‘귀한 자식’이었다. 관객 624만 명이 든 영화 ‘사도’를 근자에 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최고 권력의 자기장 안에 있다가 비극적 죽음을 맞은 운명이 닮아서였을까.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 뒤주 속에 8일 동안 갇혀 처참한 몰골로 숨진 사도세자. 그 시절이야 왕이 만인지상의 권력자였으니 그럴 수 있다 치자. 기백 년을 격한 개명천지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릴 때 심경은 감히 가늠하기가 버겁다.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장남 건호씨와 자신에게 시시각각 조여온 검찰의 칼날과 칼끝보다 더 날 선 여론의 비수에 봉하마을은 뒤주보다 더 큰 마음의 감옥이었으리라.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십자가를 지기로 한 것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따름이다.

거산과 후광은 평생의 라이벌로, 거산은 노 전 대통령을 정계에 발탁하고 후광은 그의 정치적 입지를 다져줬다. 생전에 얽히고설킨 인연을 맺었다.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서거했고 3개월 뒤 후광이 영면했다. 그 6년 뒤 거산도 역사 속에 졌다. 부디 바라건대, 이 땅에 부정 때문에 번민하는 대통령이 더는 나오지 않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대통령들은 괴로워했다.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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