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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YS 배신하는 해체민주주의

중앙일보 2015.11.25 00:37 종합 3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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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진
논설위원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1961년 5·16 쿠데타서부터 87년 6월 시민항쟁까지 26년 만에 한국은 압축성장을 달성했다. 근대화-산업화-민주화라는 세 가지 숙제를 완수한 것이다. 이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 짧은 세월도 그러하지만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해낸 것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북한이라는 희대의 위협을 이겨내면서 자원·자본·기술이 없는 나라가 무(無)에서 유(有)를 이룬 것이다.

 인류 역사는 평등을 향한 투쟁이었다. 예수보다 500여 년 앞서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태어났다. 약 100년 후엔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가 출생했다. 두 사람은 진리 앞에 인간이 평등하다는 걸 가르쳤다. 예수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신 앞에 평등하다는 걸 설파했다. 1800여 년 후 나폴레옹이 나타났다. 그는 칼과 대포로 프랑스혁명을 수호했으며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했다. 법 앞에 평등한 시민을 구현한 것이다. 1821년 나폴레옹이 죽었을 때 링컨은 열두 살이었다. 링컨은 ‘피부색 앞에 평등한 인간’을 만들려고 했다. 노예해방이 위대한 것은 신이 만든 장벽을 인간이 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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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로 따지면 한반도는 작다. 인류 역사로 보면 한국의 수십 년은 한 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평등을 위한 숭고한 투쟁이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선각자들은 국민이 헌법 앞에 평등한 국가를 세웠다. 비록 말년에 독재로 기울었지만 이승만의 신념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였다. 박정희는 ‘먹는 것 앞에 평등한 국민’을 만들려고 했다. 그는 큰 자유를 위해 작은 자유를 구속했다. 그에게는 자유의 우선순위가 달랐다.

 다른 축에는 YS와 DJ(김대중)가 있다. 그들은 모든 국민이 광범위한 평등과 자유를 누리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추구했다. 정권이 압박하자 두 사람은 투쟁했다. 적어도 87년 민주화 때까지 두 사람은 흔들리지 않았다. YS는 테러를 당하고 국회에서 쫓겨났으며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DJ는 외국에서 보따리에 싸여 배에 실려 왔다. 그는 집에 갇히고 감옥에 갔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도자와 국민의 합작품이다. 후진국이 민주주의를 달성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중산층과 건강한 시민계급이다. 다른 하나는 결정적인 시기에 불꽃을 댕겨내는 도화선(導火線) 세력이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을 이끌었고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감수하며 희생했다. 이들 덕분에 중산층이 생겼으니 이들이 민주화 1세대 공로자다. YS와 DJ는 신념으로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다. 수많은 동지가 그들을 따랐고, 많은 시민이 필요할 때 거리로 나섰다. 이들 덕분에 불꽃이 타올랐으니 이들이 2세대 공로자다.

 피와 땀과 눈물로 한국인은 지금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고 있다. 법만 지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정당을 만들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시민단체 활동을 할 수 있다. 회사를 만들고 노조를 결성하며 면세점 사업에 도전할 수 있다. 화가 나면 국정원에 몰려가고 청와대 앞에서 여성 대통령에게 욕을 해댈 수도 있다. 영화도 마음대로 만들고 책도 마음껏 찍어낸다.

 그런데 이 소중한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 지독한 폭력 때문이다. 법만 지키면 누구든 데모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데모한다면서 이상하게 법과 경찰을 때려부순다. 폭력은 오래됐으며 지칠 줄 모른다. 노무현 정권 때는 맥아더 동상을 부수려는 시위대가 죽창으로 젊은 경찰의 얼굴을 찔렀다. 이명박 정권 때는 미국산 쇠고기가 싫다며 난동 시위대가 경찰관들의 옷을 벗기고 벽돌로 얼굴을 올려쳤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철제 사다리로 찌르고, 새총으로 돌을 쏘고, 쇠파이프로 내려친다.

 더욱 무서운 건 폭력에 대한 방관이다. 적잖은 정치 지도자와 여론 주도 인사들이 폭력에 눈을 감는다. 폭력에 반대한다면서도 그들은 폭력을 진압하는 경찰을 규탄한다. 위선적이고 비현실적인 태도다. 아니 도대체 막지 않으면 폭력을 어떻게 하라는 건가. 쇠파이프·새총·투석에 겨우 물대포로 맞서는데 그것도 안 되면 어떻게 하라는 건가. 쇠파이프는 직선으로 날아드는데 물대포만 곡선으로 쏘라는 건가. 자신들의 집이 그렇게 공격을 당해도 경찰더러 진압하지 말라고 할 건가.

 폭력은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다. 폭력은 법과 질서를 해체한다. 법이 무너지면 가장 약한 사람들부터 피해를 본다. 시위대가 그렇게 위한다는 서민과 노동자부터 피해를 보는 것이다. 시위 폭력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해체민주주의다. 그런데 일부 인사는 방관하고 옹호한다. YS와 DJ의 민주화 정신을 외치면서도 폭력이라는 위협에는 입을 닫는다. 천상(天上)에 있는 YS와 DJ에 대한 배신이다.

김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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