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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매출, 첫 뒷걸음질

중앙일보 2015.11.25 00:15 경제 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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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금형업을 하는 중소기업 H사는 2013년까지 부품 수출 호황을 등에 업고 거침없이 성장했다. 해마다 수주는 늘었고 영업이익률 8%에 530억원의 연간 매출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엔화 하락과 중국 경기 부진에 일본과 중국 수출 길이 막혔다. H사 이모 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매출이 감소할 것 같다”며 “결산 전이지만 20%가량으로 예상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통계청, 작년 기업활동 조사
전년보다 26조 줄어 2231조
금융위기 시절에도 없던 일
수출 꺾이고 내수 부진 겹쳐
1000원어치 팔아 42원 남겨
“핵심사업 경쟁력 키워야”

H사만이 겪고 있는 위기가 아니다. 지난해 국내 전체 기업은 2231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3년 2257조원에서 1.2%(26조원) 감소했다. ‘주식회사 한국’의 연간 매출액이 줄어든 건 통계청이 조사를 시작한 2006년 이후 처음이다.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기업활동조사’ 잠정 결과 내용이다.

 덩치만 줄어든 게 아니다. 수익도 변변찮다. 지난해 국내 기업이 1000원어치 물건을 팔아 남긴 돈은 42원이었다. 법인세를 차감하지 않은 수치다. 세금을 내고 기업이 실제로 손에 쥔 돈은 그보다 더 적다. 최악이었던 2013년(39.2원)보단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0~60원대를 오갔던 건 벌써 옛날얘기가 돼버렸다. 제조업 위기가 국내 산업 전체의 위기로 이어졌다. 국내 제조회사 한 곳이 올린 평균 매출은 2013년 2364억원에서 지난해 2332억원으로 1.4% 줄었다.

 원인은 급하게 꺾인 수출 경기다. 문권순 통계청 경제통계기획과장은 “석유정제, 화학제품, 전자부품, 통신장비 같은 제조업 부문의 대기업 수출이 미진했던 게 결국 매출액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내수도 받쳐주지 못했다. 업종별로 수출 경기에 민감한 제조업(-1.4%)과 내수에 예민한 도·소매업(-5.1%), 숙박·음식점업(-3.0%), 부동산·임대업(-10.2%) 매출 모두 지난해 감소했다.

 전문가는 지난해가 아닌 올해와 내년을 더 걱정한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한국 경제에서 보기 힘들었던 현상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중반 이후 수출이 한 자릿수(퍼센트 기준)도 아니고 두 자릿수로 감소하고 있고 내수에서도 ‘투자→고용→소비’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 경기도 불투명하다. 민성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지만 미국 금리 인상 변수도 있고, 특히 한국 경기를 좌우할 핵심인 중국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단단히 채비해야 한다는 경고다.

 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내수 부양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국 경제가 국내총생산(GDP)의 80% 이상을 무역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정부 대책에만 기댈 수도 없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적자가 나거나 중복되는 사업의 매각과 정리를 서둘러야 한다”며 “과거와 같은 사업 다각화, 저임금에 기댄 ‘박리다매’식 수출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별 고부가 가치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기형 세종대 산업대학원장은 “내년 경기를 무조건 비관적으로 볼 수준은 아니지만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반짝 내수 부양으로는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며 “국민이 안심하고 지갑을 열 수 있도록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기업활동조사=매출액과 순이익, 자산과 부채는 물론 경영 전략까지 국내 기업의 경영 활동 전반을 보여주는 통계다. 2006년에 통계청이 조사를 시작했다. 매년 11, 12월 두 번 발표한다. 11월에 나오는 숫자는 잠정치, 12월은 확정치다. 조사 대상은 상용근로자 50인 이상에 자본금이 3억원을 넘는 국내 기업(1만2401개) 전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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