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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맹순아 온나” 10년 된 차 바꾼 날 통일로 드라이브

중앙일보 2015.11.24 01:17 종합 7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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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8월, 부인 손명순 여사가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 ‘백허그(back hug)’를 한 채 환하게 웃고 있다. YS는 이 해 5월 18일부터 23일간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했다. [사진 김영삼민주센터·국가기록원]


2009년 12월, 서울 상도동 자택 마당에 나와 있던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맹순아(명순아), 빨리 내리온나.” 이명박(MB) 정부 출범 후 강화된 전직 대통령 예우 규정에 따라 김 전 대통령 측에 새 승용차가 지원되는 날이었다. YS가 각각 14, 15대 국회 때 발탁한 MB와 맹형규 당시 대통령 정무특보와의 인연도 작용했다는 말이 나왔다.

YS·손 여사 애틋했던 동반 64년
마산 출신 이대생 셋과 한날 맞선
문학 얘기하는 손 여사에게 반해
학생 때 결혼, 신혼여행 못 갔지만
매일 밤 청와대 산책 “이게 신혼”


 덜덜거리며 가끔 멈춰서던 10년차 자가용 대신 신형 에쿠스 리무진이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YS는 부인 손명순 여사를 소리 높여 찾았다. YS는 나들이 차림으로 집을 나선 손 여사에게 손수 차문을 열어줬다. 운전기사에겐 “통일로로 내달리라”고 했다. 80대 노부부는 이날 경기도 문산까지 드라이브를 즐겼다.

 YS 퇴임 직전인 1997년 차남 현철씨의 구속으로 상처를 입은 손 여사는 퇴임 이후 부쩍 말이 줄었다. YS는 그런 손 여사를 기쁘게 해주려고 늘 노력했다.

 YS와 손 여사의 ‘동반 64년’이 빈소 주변에서 화제다. 각각 서울대와 이화여대 3학년생 시절 만나 결혼한 두 사람은 64년을 함께 살았다. 중앙정치 무대의 스타였던 남편은 늘 바빴다. 그런 YS가 9선을 하는 동안 지역구 관리와 가족들 건사는 손 여사 몫이었다. 그런 손 여사를 YS의 비서 출신인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손 여사는 타고난 선거전략가였다. YS가 대통령이 되는 데 일등공신도 손 여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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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가 51년 손명순 여사와 찍은 약혼 기념사진. 부부는 장남 은철씨와 차남 현철씨, 딸 혜영·혜경·혜숙씨등 5남매를 뒀다. [사진 김영삼민주센터·국가기록원]

 ◆결혼식 때 주례 안 오자=YS와 손 여사는 51년 결혼했다. 거제 출신의 YS는 조부모의 닦달로 하루 날을 잡아 3명과 선을 봤다. 상대는 모두 경남 마산 출신의 이대생들이었다. 그중 마지막에 만난 손 여사와 말이 통했다. 서거 전 마지막으로 한 언론 인터뷰인 JTBC 인터뷰(2011년)에서 YS는 “문학 얘기를 하는 걸 보면서 ‘참 멋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혼식 에피소드도 있었다. 주례를 맡은 목사가 결혼 시작 3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급하게 하객 중 목사를 찾았다. 진주 출신 목사가 있었다. 그 초면의 목사가 주례를 맡았다. YS는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한참 뒤 대통령이 되고 연락해 보니 이미 돌아가셨더라. 미안한 마음에 그분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 식사 대접을 했다”고 회고했다.

 손 여사는 이대 약대를 수석 입학한 재원이었다. 결혼 몇 년 뒤 YS가 손 여사에게 “약국을 차리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그러자 손 여사가 “당신 내조도 바쁜데 내가 약국을 어떻게 해요”라고 타박했다. 결혼 후 손 여사는 거의 매일 10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YS는 그때 일을 떠올리며 “맹순이가 참 수고가 많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학생 때 결혼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변변한 신혼여행도 다녀오지 못했다. 93년 청와대에 입성한 YS는 5년간 거의 매일 밤 손 여사와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이게 우리 진짜 신혼이다”고 달래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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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가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환갑을 맞아 손명순 여사와 함께 한복을 차려입고 찍은 기념사진. [사진 김영삼민주센터·국가기록원]

 ◆선거전략 뛰어났던 손 여사=조용한 내조에 주력했던 손 여사는 필요할 때면 전면에 나섰다. 87년 대선에 실패한 YS는 88년 총선에서 부산 서구에 출마했다. 선거전이 시작되자 전국 곳곳에서 쇄도하는 지원 유세 요청에 정작 자신의 선거운동은 뒷전이었다. 당시 지역구에서 선거를 도왔던 정병국 의원은 “선거가 시작되니 손 여사가 진두지휘를 시작했다. 적재적소에 운동원들을 배치하고 선거운동 플랜을 짜는 걸 보면서 뛰어난 선거전략가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YS가 90년 3당 합당을 결정하자 일부 상도동계 인사는 “군부독재 세력과 손잡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끝까지 합류하지 않고 버틴 이가 최형우 전 의원이었다. 그는 김동영 전 의원과 함께 ‘좌형우’ ‘우동영’이라고 불렸다. 손 여사는 최 전 의원을 직접 찾아갔다. “당신은 YS가 왜 3당 합당을 하는지 그 뜻을 모르느냐. 그러고도 ‘좌형우’냐”라고 몰아붙이며 설득했다. 결국 최 전 의원은 YS를 따랐다.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장관에 임명된 최 전 의원은 YS에게 “저, 형수님 아니었으면 대통령님 안 따라왔심니더”라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92년 대선 땐 손 여사도 YS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만났다. 당시 여당이던 YS 측에는 정보기관에서 보내준 ‘블랙리스트’가 있었다고 한다. ‘선거꾼’으로 조심해야 할 인물들이었다. 어느 날 손 여사가 그중 한 명과 면담하는 것이 비서진의 눈에 띄었다. 손 여사에게 “만나지 말라”는 경고가 들어갔지만 그 뒤로도 손 여사는 두 번이나 더 접촉했다. 펄쩍 뛰던 비서진이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모두 같은 한 표다”고 손 여사가 말하자 잠잠해졌다고 한다.

 23일 손 여사는 입관예배 참석을 위해 남편의 빈소를 찾았다. 오전 10시15분쯤 휠체어를 타고 도착한 손 여사는 입관예배 뒤 한동안 빈소에 머물다 오후 4시쯤 귀가했다. 검은 원피스에 검은 외투를 걸친 손 여사는 지치고 외로워 보였다.

이가영·김경희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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