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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그리고 타협 … YS에게 '정치는 가능의 예술'이었다

중앙일보 2015.11.23 03:12 종합 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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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巨山)’과 같은, 큰 정치인 김영삼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DJ·YS·JP, 세 분이 함께 연출한 ‘삼김시대(三金時代)’란 한국 정치의 낭만시대가 막을 내려가는 데 대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정치는 가능의 예술”이란 비스마르크의 명언이 잊혀져 가며 쌓이는 불안의 징표가 아닐까. 국가 존망의 위기로 점철된 지난 반세기의 한국 정치사에서 YS는 인간의 꿈과 결의에서 오는 자신감과 숙명적 한계에 대한 겸허함을 동시에 지녔던 큰 정치인이었다. 그런 큰 정치인들의 모습을 차츰 찾기 힘든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이홍구 본사 고문 조사(弔辭)

 김영삼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자신감이 넘치는, 그러나 숙명을 거역하지 않는 정치인이었다. 정치를 이끌려면 확고한 목적의식과 비전은 필수요건이다.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는 철저한 의식과 민주화 비전이 있었기에 23일 동안의 단식투쟁이 가능했으며, “굶으면 죽는다”는 인간의 한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상식을 존중했기에 타협을 통한 공존의, 그리고 공동체의 정치를 영도할 수 있었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직후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당시 총재는 국회 통일특위 위원장에 박관용 의원을 천거해 89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4당 합의로 채택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첫째는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 된다는 평화원칙을, 둘째는 통일로 향한 전진은 남북 간의 협의와 협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자주원칙을 확인하였다. 94년 1차 북핵 위기에 직면했을 때 대북 군사조치를 통한 해결책을 고려하는 대신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역사적 의의가 큰 업적이었다. 평양 정상회담 2주 전, 돌연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실현되지 못한 평화통일 구상은 김영삼 개인은 물론이고 한민족에게는 악운이었으며, 아쉬움을 남긴 채 오늘에 이르렀다.

 민주화 이후 12년의 공직생활에서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각별한 지도와 배려를 받았던 나로서는 그분 특유의 인간적 따뜻함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서울대 동창임을 자랑스럽게 여겨 교수 출신인 내게 언제나 친근하셨지만 총리나 당 대표와 같은 중책을 맡기시면서도 정치적인 문제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라는 입장을 지켜 주셨다. 일찍부터 내겐 정치가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신 혜안, 그러면서도 후배와의 인간적 신뢰관계를 지켜 주신 고인의 인간상에 깊은 애정과 존경심을 늘 간직하며 살고 있다. 가시는 길도 대도무문(大道無門)의 신념대로, 일생 믿고 의지하신 하나님 곁으로 나아가시리라 믿는다. 편안히 가십시오.

김영삼 정부 국무총리(1994~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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