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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 지나가는 정거장” 남긴 재산 상도동 집 한 채뿐

중앙일보 2015.11.23 02:17 종합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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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왼쪽 셋째)가 1993년 2월 27일 첫 국무회의 직후 국무위원들과 칼국수 오찬을 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점심을 하자고 해 대단한 줄 알고 오셨겠지만 메뉴는 칼국수다. 앞으로도 칼국수 아니면 설렁탕”이라고 말했다. 왼쪽 첫째가 당시 권영해 국방부 장관, 그 옆이 이경식 경제부총리다. [중앙포토]


2008년 10월 경남 마산 삼성병원 장례식장.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부친 김홍조옹의 빈소엔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YS는 당시 빈소 안의 내실에서 주로 문상객을 맞았다. 아들인 김현철씨와 당시 김무성 의원,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이 실질적인 상주 노릇을 했다. 고령의 YS를 걱정해서였다. 5일장 기간 YS가 내실 밖까지 나와 조문을 받은 횟수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했다. 웬만한 정·관계 인사가 와도 꼼짝 안 하던 YS가 벌떡 일어나 문상객을 맞은 적이 있다.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이 왔을 때였다. YS는 그들의 문상을 직접 받고 내실로까지 들여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눴다. YS는 그중 한 여성 회원을 가리키며 “자가 전라도 안데 대선 때 계속 내를 찍었데이”라며 웃었다.

소탈했던 '칼국수 대통령'
공직자 재산공개 후 청와대 오찬
“앞으로 메뉴는 칼국수와 설렁탕”
“떡값 아니라 찻값도 안 받겠다”
후배 정치인들에겐 아낌없이 풀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평소 YS에 대해 “소탈한, 인간적 매력이 넘쳤던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YS 집권 시절 “청와대에서 YS 칼국수를 먹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라”는 얘기가 여권에 유행했다. 대통령 취임 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제도가 발표된 첫 국무회의 직후 각료들과의 오찬 메뉴가 칼국수였다. YS는 “청와대에서 점심하자고 불러 대단한 줄 알고 오셨겠지만 오늘 메뉴는 칼국수입니다.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칼국수 아니면 설렁탕일 테니 그렇게들 아십시오”라고 말했다. 청렴한 이미지를 쌓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었지만 소탈함, 인간적 면모가 없었다면 실천이 쉽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후 칼국수는 청와대 오찬 메뉴로 굳어졌고 “청와대 식사비가 5분의 1로 줄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YS는 이후 “우리 밀 칼국수는 끈기가 없어 국수 가락이 뚝뚝 끊어졌다. 그래서 고수들의 비법을 전수받아 콩가루를 넣은 ‘청와대 칼국수’가 나왔다”고 설명하곤 했다.

 YS는 멸치잡이 어선을 수십 척 거느렸던 부친 덕에 검은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는 취임 직후 첫 청와대 출입기자단 오찬에서 “정치자금은 받지도 주지도 않겠다. 떡값이 아니라 찻값이라도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기 전엔 잘 베푸는 정치인이었다. 옷 주머니 곳곳에 돈이 든 지갑을 넣어두고 후배 정치인들을 만날 때면 세어보지도 않고 지갑째 빼줬다는 유진산 전 신민당 총재를 오래 봐 와서인지 그 역시 돈 인심이 후했다. 그는 상도동계 인사들에게 늘 “내 주머니는 돈이 지나가는 정거장이다. 정치자금을 받았어도 인풋과 아웃풋이 같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1994년 낸 에세이집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YS로부터 받은 돈 봉투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YS는 돈 봉투를 주며 이런저런 주문을 한 적이 없다”고 적었다. 그는 2008년 부친상 때도 조의금을 일절 받지 않았다. 5일장 동안 수천 명이 문상을 해 장례비가 만만치 않았다. 참모들이 그런 사정을 설명해도 YS는 “절대 받지 말라”고 했다.

 YS는 유머를 즐겼다. 그가 취임하자마자 『YS는 못 말려』란 개그집이 발간됐다. 여기엔 “YS 취임 이후 안기부장이 국무회의 멤버에서 빠졌다. 이유를 묻자 YS는 ‘장관들 모임에 국장도 아닌 부장이 우째 끼노’라고 답했다”거나 “YS 당선 직후 친구가 ‘부인(손명순 여사)이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축하한다’고 하자 ‘우리 집사람은 세컨드인 적이 없데이’라고 펄쩍 뛰었다”는 내용들이 실렸다. 물론 가상의 개그였다. 당시 YS는 개그집에 담긴 내용들을 웃어넘겼다고 한다. 아내 손 여사의 이름을 발음할 땐 늘 경상도식인 ‘맹순이’라고 해 손 여사가 “내 이름은 명순이다. 똑바로 발음해 달라”고 불평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YS는 “이름이 맹순이라서 맹순이라는데 머가 문제고”라고 말했다고 상도동 인사들이 전했다. YS가 남긴 재산은 상도동 자택이 유일하다. 2011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면서 거제도 땅 등 52억원은 모두 현금화해 김영삼민주센터에 기부했다. 상도동 자택도 손 여사 사후 소유권이 민주센터로 넘어가게 돼 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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