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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 반발에 “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

중앙일보 2015.11.23 02:16 종합 15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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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중부전선 최전방을 방문한 YS. YS는 취임 초 남북관계 개선의지가 강했으나 1차 북핵 위기등의 악재로 인해 대북강경책을 썼다. [중앙포토]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취임 13일 만인 1993년 3월 8일, 당시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조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하나회 출신 김진영(육사 17기)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기무사령관을 교체토록 지시했다. 권 장관은 “정기 인사 때까지 미루자”고 건의했지만 YS는 일축하고 그 자리에서 전격적으로 후임 인사를 단행했다. 익명을 원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대대적인 숙군(肅軍)운동의 서막이었다”고 기억했다.

군대 요직 독차지한 사조직 해체
박관용 "인사 때마다 하나회 체크"
‘역사 바로세우기’ 5·18특별법 제정
전두환·노태우 법정 세워 구속수감

 YS의 ‘군부 대수술’ 정책인 하나회 척결은 이처럼 전격적으로 진행됐다. 하나회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사 11기가 주축이 돼 만들어진 군 사조직이었다. 기수별로 10명 안팎이 가입해 활동해 왔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군의 핵심 요직을 장악한 하나회는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으며, 5·6공 정권의 핵심 지지기반이 됐다.

 YS는 “ 이 땅에서 군사 쿠데타의 망령을 영원히 지워 버려야 한다”며 하나회 해체에 나섰다. YS는 김진영 총장-서완수 사령관에 이어 하나회 출신 수도방위사령관(안병호)과 특전사령관(김형선)을 비(非)하나회 출신으로 교체했다. 그해 4월 초 육사 20기부터 36기까지 142명의 명단이 적힌 ‘하나회 회원명부’가 군인 아파트촌에 살포되면서 하나회 색출은 속도를 냈다. 이후 ‘5·24 숙군’이라고 불리는 군 고위직 인사에서 하나회 회원들 중 3성 장군 이상 전원과 장성 50여 명이 군복을 벗었다. 하나회 장성의 회식장소 난동사건 등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만 YS는 “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 며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YS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외교 안보와 관련한 인사를 할 때 하나회 출신들의 (인사 대상자로 올라오진 않았는지) 명단을 체크했다”고 술회했다.

 이로써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 ▶군내 주요 보직은 회원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 등을 원칙으로 했던 하나회는 해체됐다.

 임기 초반 하나회를 뿌리 뽑았던 YS의 칼날은 끝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향했다. YS는 95년 11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5·18특별법 제정계획을 발표했다. 검찰에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지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79년 12·12 사태를 일으킨 신군부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앞서 95년 10월 19일 당시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두 전직 대통령의 수천억원대 비자금도 드러났다. 두 전직 대통령은 결국 대법원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받았다. 집권 초 하나회를 해체시킨 YS는 96년 하나회 창립자였던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YS가 아니고선 하기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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