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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의 객석에서] NHK홀 휘감은 조성진의 쇼팽, 일본 청중들 이례적 갈채

중앙일보 2015.11.23 01:41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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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공연 후 대기실에서 만난 조성진(왼쪽)과 나카무라 히로코.

21일 오후 도쿄 NHK홀 로비는 발 디딜 틈 없었다. 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와 한승수 전 총리 등 한국에서 온 청중들도 눈에 띄었다. 공연 전 로비에서 나카무라 히로코를 만났다. 나카무라는 1965년 쇼팽 콩쿠르 4위에 입상하고 심사위원도 다섯 차례나 역임한 일본 피아노계의 ‘대모’다. 나카무라는 “조성진은 14세 때 이미 완성된 면모를 보여줬다.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두루 잘한다. 인성도 훌륭한 피아니스트”라며 “쇼팽 콩쿠르에서는 특히 스타가 될 만한 잠재성을 본다. 조성진이 그것을 충족시킨 것”이라고 우승의 의미를 얘기했다.

“피아노가 자유롭게 노래하도록
연주하고 싶었는데 만족스럽다”

 오후 3시. 무대 위에 NHK교향악단 단원들이 자리하고 조성진이 지휘자 페도세예프와 등장했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조성진의 키가 커보였다. 깍듯이 인사를 한 뒤 피아노에 앉았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긴 전주가 시작됐다. 페도세예프의 지휘엔 기품이 있었다. 드디어 조성진의 첫 음이 힘차게 울렸다. 고음이 영롱하게 객석을 파고들었다. 해질녘 가을 들판 같은 현악군 위로 건반이 유리알 같이 반짝였다. 조성진은 호른이 부각될 때 템포를 늦추며 완급 조절의 주도권을 놓지 않았다. 예쁜 고음이 물결처럼 넘실댔다. 조성진은 1악장 막판의 인상적인 속주를 완벽하게 마무리지었다. 2악장은 차분하게 다가왔다. 악상을 훨씬 자유롭게 펼쳤다. 3악장의 긴 악구에서도 완급을 조절하는 노련함을 보여줬다. 차분한 일본 청중답지 않게 앙코르 요청이 뜨거웠다. 조성진은 쇼팽의 ‘영웅 폴로네즈’를 연주했다. 힘차고 맑았다. 왼손과 오른손을 조금씩 어긋나게 치며 곡을 절묘하게 끌고 갔다. 중간의 명상적인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땀을 닦으며 일어나는 조성진에게 갈채가 쏟아졌다.

 연주 직후 대기실에서 조성진을 만났다.

 - 일본 청중들은 어떤 느낌인가.

 “연주 중 조용해서 집중할 수 있다. 연주하기에 제일 편한 스타일이다. 우리나라나 프랑스·이탈리아 청중과는 다른 느낌이다.”

 - 콩쿠르 이후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만 아홉 번째 연주다. 오늘 공연한 소감은.

 “콩쿠르 때와 각 공연의 느낌이 모두 달랐다. 오늘은 사색적으로 치려고 했다. 여린 부분에서 템포를 변화시키고 피아노가 더 자유롭게 노래하도록 하고 싶었다. 잘 친 것 같아 만족스럽다.”

 - 쇼팽 말고도 잘 치는 레퍼토리가 많은 걸 안다.

 “어릴 때 베토벤·모차르트·바흐를 많이 쳤고, 쇼팽 같은 낭만음악을 즐겨 들었다. 그래서인지 쇼팽 해석을 할 때에도 독일식으로 형식과 구성을 보게 되더라. 난 내가 쇼팽 스페셜리스트라 생각하지 않는다. 또 쇼팽만 치고 싶지도 않다. 독일·프랑스 음악을 두루 좋아한다. 러시아 음악 중에 프로코피에프가 좋다.”

 - 즐겨 듣는 피아니스트와 연주는 무엇인가.

 “라두 루푸를 좋아한다. 그의 슈베르트 ‘즉흥곡’을 많이 들었다. 30대 때 연주라고 하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고결하다.

 - 그동안 콩쿠르를 치르면서 느낀 점은.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선 무대가 있어야 한다. 아시아 사람으로서 콩쿠르가 그나마 공정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길이더라. 하지만 지금은 잡힌 연주가 너무 많다. 내년에 60~70회나 된다. 2017년 일정까지 차고 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1년에 40~50회 정도로 줄이려 한다. 쇼팽 콩쿠르 이후 한 달 동안 (유명세에) 많이 놀랐다. 이것도 지나가겠지만 정말 무섭다.”

 조성진은 23일 도쿄 오페라시티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28일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와 협연하고 12월에는 베이징, 상하이, 충칭, 포즈난, 크라쿠프, 브뤼셀 등에 이어 다시 일본에서 긴 투어공연을 한다. 한국 공연은 내년 2월이다.

도쿄=글·사진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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