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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위해 기도를’미국 심장부서 빛이 된 원불교

중앙일보 2015.11.23 01:39 종합 2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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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원다르마센터’ 선실에 모인 사람들이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법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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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걸린 커다란 원(圓) 외에 텅 빈 공간으로 단순미를 살린 선(禪)실 내부.

푸른 하늘과 누런 땅 사이에 걸어가는 사람조차 풍경이 된다. 자갈길이 끝나는 곳에 겸손하게 선 나무집은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다. 건축의 몸이 보는 이를 감동시킨다. 번잡과 번뇌가 우글거리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서북쪽으로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원다르마센터’(wondharmacenter.org)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자연 그 자체로 스며들고 있었다.

둥근 원 하나 떠있는 텅 빈 방서
순례객 100명 가부좌 틀고 묵상
험악해지는 지구촌 상황 성찰
선 생태공원, 조각공원 등 조성
영적 훈련, 세계교화 전진기지로

 원불교가 세계 교화를 위해 미국 뉴욕주 컬럼비아 카운티 클래버랙에 세운 원다르마센터가 개원 4년을 맞았다. 소태산(少太山) 대종사(본명 박중빈·1891~1943)는 1916년 원불교를 열면서 온 누리에 일원대도의 법을 베풀겠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이를 받아 제3대 종법사(원불교 최고지도자)인 대산(大山) 김대거 종사는 “정치에 유엔(UN)이 있듯이 세계 종교를 하나로 통합한 종교연합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연이어 벌어지는 테러의 공포 속에서 전 세계가 ‘종교란 무엇인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이때, 원불교의 선견이 새삼스러워진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오후, 원다르마 선(禪)실에서는 ‘파리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로지 둥근 원(圓) 하나만 떠있는 텅 빈 마루방에 미주 전역에서 찾아온 순례객 100여 명이 모여 가부좌를 틀었다. ‘빛의 도시 파리를 위해 기도를’이란 한마디 아래 성소(聖所)를 찾은 이들은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라 설법했던 대종사의 말씀을 묵상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외쳤던 선지자의 뜻을 되새겼다. 왼쪽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으로 멀리 산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법당은 침묵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 방 자체가 가르침의 일부가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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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실내로 스며들어 건물과 한 몸이 되는 식당.

 원다르마센터를 총괄하고 있는 김효철 이사장은 “오시는 분들마다 좋다 하시니 자연을 경외하는 원불교와 일관성을 이룬 이 땅과 건물이 축복받은 모양”이라고 감사했다. 비탈의 곡선을 살려 지어진 집들은 그대로 나무숲이 되었다. 선실 외에 게스트하우스 2동과 교무 숙소, 식당을 포함한 행정동 등 5동 건물은 이미 지역 명소가 되었다. 건물 외벽을 감싸 안은 부챗살 모양 삼나무 합판은 세월의 입김으로 은회색조로 변했다. 삶의 흔적들을 흡수한 풍성한 색조는 흘러간 시간을 되새김하고 있다. 설명기 프랫 인스티튜트 교수가 디자인한 실내 목물들과 조명에는 한국의 풍광이 서려있다. 이렇듯 만든 이들의 정성과 이곳에 와서 평안을 얻었을 사람들의 마음이 가라앉아 건축의 결이 풍성해졌다.

 김 이사장은 올해부터 ‘선(禪) 생태공원’을 만들고 추모 예술 조각 공원을 조성하는 등 원다르마센터의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날로 험악해지는 지구 상황을 성찰할 수 있는 영적 훈련의 중심으로 제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단단한 바탕을 만들겠다고 했다. 생활화·대중화·시대화를 추구했던 대종사의 창종(創宗) 정신을 받들어 세계교화의 전진기지가 되는 것이 꿈이다. 기성 종교의 낡은 틀을 흔드는 새 흐름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원다르마센터 이웃 동네에서 도예가로 활동하던 더글러스(65)는 신평이란 법명을 받고 이곳의 농부가 되었다. 그의 손으로 수확한 배추와 무는 올해 처음 연 ‘김장 행사’에 귀한 재료가 되었다. 신평은 원다르마센터 안에 가마를 짓고 그릇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했다. ‘어디서나 때 되면 피어나서 향기를 감추지 않는 꽃처럼, 진리를 체 받아서 꽃처럼 아름답게.’ 대종사의 말씀이 여기 미국 심장부에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뉴욕주 클래버랙(미국)=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원다르마센터=개교 100년을 맞은 원불교의 미주 포교활동을 총괄 지휘하는 본부다. 2011년 10월 2일 미국 뉴욕주 클래버랙에서 개원했다. 원(圓)은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일원상(一圓相), 다르마(Dharma)는 산스크리트어로 진리를 뜻한다. 토머스 한라한(프랫 인스티튜트 건축학과장) 교수가 설계한 5개 동 건물은 종교 건축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으며 미 건축가협회(AIA)가 주는 종교·영성 부문 건축디자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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