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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쉬운 수능이 정답은 아니다

중앙일보 2015.11.23 01:09 종합 2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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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곤
중동학원 이사장

교육은 미래를 희망으로 채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힘든 시대를 산다. 취업은 어렵고, 결혼·출산·육아도 아득하기만 하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앞날을 헤쳐갈 힘을 길러주고 있는가. 자율형 사립고의 경영 책임자로서 나는 이 물음 앞에서 막막해지곤 한다.

 “go ahead”는 교육의 영원한 모토다. 이는 “앞서가라”는 뜻이다. 경쟁이 주는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경쟁력을 갖추는 데 있다. 경쟁 자체를 없애려 할 때, 치열한 생존투쟁의 현실을 외면할 때 우리는 경쟁이란 지옥에 더 깊이 빠져버린다. 힘든 현실에서 탈출하려면 대한민국이 강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과연 강한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가.

 우리나라 학교 입시는 탁월한 학생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신 성적이 나쁘면 국제 올림피아드 수상자도 좋은 학교에 갈 수 없다. 학교가 이를 반영할 수 없도록 정부가 규제하기 때문이다. ‘사교육 유발요소’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경쟁은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고, 그나마 최소한이어야 한다. 학교 간의 실력 차이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교육 당국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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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도 점점 학생의 학력 수준을 가려낼 수 없는 시험이 되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경쟁을 힘들어하기에 경쟁 자체를 없애려는 모양새다. 우리는 글로벌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교육의 현실은 위기상황에서 머리를 구멍에 박아버리는 꿩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수월성(秀越性)과 평등은 교육을 이끄는 두 개의 축이다. 교육은 세상을 이끌 뛰어난 인재들을 길러내야 한다. 그러면서도 미래 세대 모두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이 둘은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교육은 평등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물론 교육 당국의 정책 방향에는 수긍할 만한 점들도 있다. 정부는 선발효과보다 교육효과가 커야 좋은 학교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단지 뛰어난 인재를 뽑았기에 우수한 결실을 거두는 학교보다 질 높은 교육을 통해 인재를 키우는 학교가 바람직하다. 하지만 고교 이상의 교육에서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 예컨대 과학영재를 제대로 길러내려면 과학적 소질과 가능성이 큰 학생들을 신입생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인성과 학교생활 충실도’만 보고 학생을 선발해도 학교가 제대로 가르치기만 한다면 탁월한 인재를 기를 수 있다는 발상은 상식적이지 않다.

 수능, 논술 등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인재 선발시험들은 점차 변별력을 잃어간다. 이렇게 해서라도 뒤처진 학생들이 희망을 품고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싶다. 우리 교육은 인재를 기르지도, 모든 학생에게 성공의 희망을 심어주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교육청은 교육의 ‘수평적 다양화’를 앞세운다. 경쟁보다는 평등에 중심을 두고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준다는 의미다. ‘수평적 다양화’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금도 과학고 졸업생 중 상당수는 학교 설립의도와 관련 없는 의대에 진학한다. 외국어고도 다르지 않다. 졸업생 가운데 많은 수는 어학 분야가 아닌 이공계, 의학 관련 전공으로 진학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나라 특수목적고는 과학고와 외고가 주류를 이룬다. 의대 수요가 많다면,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에게 특화된 고교가 있으면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인문학을 지망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한 학교가 있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평적 다양성’은 현장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학교에는 어울리는 개념이다. 그러나 고등교육을 통해 미래가 요구하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수월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성’을 키워줄 수 있는 학교가 있어야 한다. 자율형 사립고가 바로 이런 인재를 키워야 할 학교들이다.

 나라가 망할 때는 포퓰리즘이 세상을 지배한다. 문제의 핵심은 외면한 채 당장 힘든 경쟁을 피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지지를 받고 있다.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경쟁력을 길러주는 곳이어야 한다. 또 수능 등 입학시험은 우수한 인재의 가능성을 가늠해줄 수 있을 만큼의 난이도를 갖추어야 한다. 수월한 교육을 지향하는 자사고 같은 학교들을 ‘평등’이라는 미명하에 옥죄는 선발방식 제한, 교육과정 제약 등의 족쇄들을 풀어 주어야 한다. 신입생이 학교가 지향하는 인재상에 걸맞은 학력과 소질을 갖추고 있는지 입학 전형을 통해 검증할 수 없다면, 우수한 학업 역량을 기르기 위한 AP(advanced placement) 등의 프로그램들을 ‘선행학습 금지’라는 이유로 접어야 한다면 어떻게 우수한 인재를 기를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이 살 길은 수월성 교육에 있다. 시대를 읽는 자들에게 이 점은 분명한 ‘진리’다.

심재곤 중동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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