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손학규는 ‘셀프 유배’를 언제 풀까

중앙일보 2015.11.23 00:58 종합 30면 지면보기
기사 이미지

김형구
정치국제부문 차장

1992년 12월 19일 오전 8시. 전날 대선에서 193만여 표차로 YS(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는 정계 은퇴를 결심하고 서울 마포 민주당 중앙당사로 향했다. ‘동교동 비서 막내’로 DJ를 수행하던 당시 설훈 보좌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차 안에서 절규하듯 울었다”고 그 순간을 회고한다. “분명히 승산이 있다고 봤는데 결과가 딴판으로 나오자 하늘이 무심하고 분했다”는 이유에서다.

 설 의원은 그러면서 오히려 ‘재기’를 떠올렸다고 술회했다. “한바탕 미친 듯이 울고 나니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은 ‘다시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설 의원은 정계 은퇴 이후 영국으로 ‘셀프 유배’를 떠난 DJ를 찾아갔다. DJ에게 “정계 복귀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DJ는 불같이 역정을 냈다고 한다. “정치에 환멸을 느끼니 정치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하면서다.

 “이후 몇 차례 더 영국을 방문해 정계 복귀를 건의했다. DJ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지만 부정의 강도는 점점 약해지더라”는 게 설 의원의 기억이다. 93년 1월부터 7월까지 영국에 머물던 DJ를 찾은 한국 사람들의 열기는 뜨거웠다고 한다. 아예 DJ 자택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생겼고, 그 버스가 오가던 길을 DJ 성(姓)을 따 ‘킴스 로드’(Kim’s road)라고 불렀을 정도다. 6개월 만에 유배를 풀고 돌아온 DJ는 결국 약속을 뒤집고 현실정치로 ‘컴백’ 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주가를 올리는 또 한 명의 정치인이 있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다. 지난해 7·30 수원 팔달 보궐선거 패배 후 전남 강진에서 시작한 ‘셀프 유배’가 1년4개월째다.

 손 전 고문이 머물고 있는 강진 백련사에는 그를 보기 위해 경향(京鄕) 각지에서 출발한 전세버스가 몰려들고 있다. 최근 언론 노출이 부쩍 잦아지면서 손 전 고문의 복귀를 점치는 얘기도 점차 커지고 있다.

 그를 오랫동안 보좌했던 한 참모는 최근 손 전 고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설마 정말로 정치에 복귀하실 생각을 하고 계신 거냐”고. 그러면서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서울에서 내려온 기자들에게는 아무리 미안해도 차 한잔도 대접하지 말고 그냥 올려보내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손 전 고문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정확한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이상 그의 말로 유추해볼 따름인데, 최근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 A가 반 농담 삼아 한 얘기가 그럴듯하다.

 근거는 지난 4일 손 전 고문이 해외 강연을 마치고 귀국한 날 강진에서 얼마나 더 머물 것인지를 묻는 취재진 물음에 대해 내놓은 답변이다. “강진이 좋다. 강진 산이 (나보고) 더 지겨워서 못 있겠다 하면…(내려올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주어 ‘강진 산’은 결국 ‘국민’의 다른 말이라는 게 A의 해석이다. “국민이 손학규를 부르면 하산하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김형구 정치국제부문 차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