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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600> 세계를 뒤흔든 주요 테러

중앙일보 2015.11.23 00:10 경제 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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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기자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로 전 세계가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이념과 민족·종교 등의 갈등으로 테러가 발생한 것은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역사상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세계 정치·경제·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테러들이 계속돼왔습니다. 세계를 뒤흔들었던 테러 사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발생 순서에 따라 정리해봤습니다.


◆테러의 정의=‘테러(terror)’라는 단어는 프랑스어 ‘terreur’에서 시작됐다. ‘거대한 공포’를 뜻하는 라틴어(terror)에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라틴어 동사 ‘terrere’는 ‘겁을 주다’란 뜻이기도 하다. 이 용어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자코뱅파가 정적을 살해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한 ‘공포 정치’를 지칭하며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테러는 크게 네 가지 기준에 따라 규정된다. 첫째는 계획된 고의적 폭력, 둘째 정치·이념 등의 갈등에서 시작된 폭력, 셋째 민간인 공격을 목표로 하는 행위, 넷째 국가나 군대가 아닌 조직이나 단체에 의해 수행되는 폭력이다.


1946년 호텔 6개층 무너져 91명 사망

◆예루살렘 테러=1946년 7월 22일 예루살렘에 위치한 전 세계 최고급 호텔 중 하나인 킹 데이비드(King David) 호텔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폭발물이 가득 찬 우유통이 호텔로 배달됐고, 오후 12시 37분쯤 우유통이 폭발하면서 호텔의 6개 층이 무너졌다. 아랍인 41명, 영국인 28명, 유대인 7명 등 총 91명이 사망했다. 사건의 배후엔 1930~40년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활동한 유대인 시온주의(Zionist) 무장단체 이르군(Irgun)이 있었다. 독립국가 건설을 원했던 이들은 당시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하고 있던 영국에 반감을 품었다. 이르군의 지도자이자 훗날 이스라엘의 총리가 되는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은 호텔 테러를 결행했다. 1947년 2월 결국 영국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반환했고 이듬해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건물 4개 층에 30m 구멍 … 6명 숨져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전에도 한 차례 공격받은 적이 있었다. 1993년 2월 26일 오후 12시 18분, 세계무역센터 북쪽 빌딩 지하 주차장 2층에서 주차돼있던 차량이 폭탄과 함께 터졌다. 이 폭발로 건물의 4개 층에 30m의 구멍이 나 6명이 사망하고 1042명이 부상을 당했다.

 테러 용의자는 쿠웨이트 출신으로 알려진 람지 유세프(Ramzi Yousef)를 비롯한 이슬람 과격 근본주의자 6명. 이들은 북쪽 빌딩을 남쪽으로 쓰러뜨리려고 했지만 폭탄이 약해 계획에 실패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사건 직후 용의자 4명을 체포했지만 주범인 람지 요세프는 이미 파키스탄으로 출국한 뒤여서 검거에 실패했다. 사건 2년 뒤인 95년 그는 파키스탄에서 붙잡혔고, 징역 240년 형을 선고받았다. 유세프의 컴퓨터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계획서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걸프전서 훈장 받고 제대한 군인이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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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직후 연방정부 청사 모습. [중앙포토]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 테러=1995년 4월 19일 미국 오클라호마시 앨프리드 머러 연방 청사에서 폭탄을 가득 실은 차량이 폭발해 168명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용의자로 지목된 건 티머시 맥베이(Timothy McVeigh) 등 2명. 맥베이는 당초 걸프전에서 은성무공훈장을 받고 군 제대 후 경비원 등으로 일하다가 반정부 민병대에 가담하기 위해 캔저스, 애리조나 등을 전전했다.

맥베이는 재판에서 “93년 텍사스주에서 종교 집단인 다윗파 신도 80여 명이 정부와 무력대치 하던 중 집단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며 “이를 보복하기 위해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결국 맥베이는 2001년 6월 사형당했고, 그의 사망 후 미국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논쟁이 크게 일어나기도 했다.

항공기 승객 포함 3000여명 사망·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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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직후 뉴욕 시민들이 붕괴된 WTC 건물 잔해를 뒤집어 쓴 채 현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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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여객기가 WTC 건물에 충돌하는 2001년 9·11 테러 당시의 모습. [중앙포토]

◆9·11 테러=2001년 9월 11일 오전 9시쯤 전 세계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빌딩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항공기와 충돌해 무너진 것. 같은 시각 버지니아에 있는 미 국방부 건물에도 여객기가 충돌했다. 이로 인해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을 포함해 3000여 명이 사망 및 실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알카에다(Al-Qaeda) 등 이슬람 테러단체가 아메리칸 항공 AA11편 등 모두 4대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저지른 테러였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과 그의 추종 조직인 알카에다를 주요 용의자로 지목했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대통령은 즉각 ‘21세기 첫 전쟁’이라고 규정한 뒤 빈 라덴이 숨어있는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기로 했다. 같은 해 10월 미국은 영국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공항과 탈레반 국방부 등에 공격을 가했다.

 이후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미국 테러를 시도하는 모든 세력 및 국가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북한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2003년엔 이라크를 공격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주범으로 지목됐던 빈 라덴은 수 년간의 은신생활 끝에 2011년 5월 파키스탄에서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아침에 동시다발 … 사흘 뒤 총선 여당 참패

◆마드리드 폭탄 테러=2004년 3월 11일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중심부에서 동시다발적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오전 7시30분쯤 아토차 역에서 폭발이 일어난 후 인근 2개 역에서 폭탄이 터졌다. 러시아워에 일어난 사고로 약 200여 명이 사망했고 18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스페인 정부는 당초 바스크 지역 분리를 주장하는 조직인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를 테러범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스페인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도왔기 때문에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으로부터 테러를 당한 것이라고 믿었다. 사건 이튿날 용의 차량으로 추정되는 차량에서 이슬람 세력이 개입한 증거가 나타나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사건 사흘 뒤 열린 총선에서 여당은 참패했다.


서유럽서 발생한 최초의 자살 폭탄 테러

◆런던 지하철 테러=2005년 7월 7일 오전 8시 40분, 영국 런던 중심가 리버풀 스트리트 역 근처에서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졌다. 곧이어 러셀 스퀘어 역 인근, 엣지웨어 로드 역 등 총 4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폭탄이 터졌다. 이 사건으로 56명이 목숨을 잃고 7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건 직후 자신들을 알카에다로 자칭한 세력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지른 용의자는 파키스탄계 영국인 4명으로 드러났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이들이 테러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영국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뚜렷한 동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서유럽에서 발생한 최초의 자살 폭탄 테러였다.


만평에 불만, 주간지 사무실에 총기 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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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 당시 소방대원들이 부상자를 후송하고 있다. [중앙포토]


◆샤를리 에브도 테러=지난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침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편집장 스테판 샤르보니에를 포함한 직원 10명과 경찰 2명 등 12명이 사망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2006년부터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 만평 등을 게재하며 이슬람의 반발을 샀다. 이슬람권에선 무함마드를 그림 등으로 표현하는 것을 우상숭배로 보고 엄격하게 금지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국적자 3명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중 한 명은 자수했고, 나머지 두 명은 1월 9일 파리 근교에서 여성 1명을 인질로 잡고 당국과 대치하다 사살됐다. 이후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 40여 명의 국가 지도자들과 시민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진을 벌였다.


종교 물은 뒤 기독교인 등 148명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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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소말리아 무장조직 알샤바브가 케냐 가리사 대학교에서의 인질극 도중 피신한 학생들. [중앙포토]


◆가리사 대학교 테러=파리 테러 이후 전 세계인이 ‘pray for paris’를 외칠 때 영국 BBC 뉴스 홈페이지에서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7개월여 전(올해 4월 2일)에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가리사 대학교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기사가 ‘최다 조회수’ 뉴스에 오른 것이다. BBC는 “SNS에서 기사를 공유할 때 기사 작성일이 잘 눈에 띄지 않아 최근 사건으로 오해한 것 같다”는 분석 기사를 내놨다. 인터넷에서는 “파리 테러에 전 세계인이 애도하면서 그동안 다른 테러엔 관심이 없었다”며 반성하는 여론도 형성됐다.

 가리사 대학교 테러는 4월 2일 새벽 소말리아 무장조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 알샤바브(Al-Shabaab) 조직원들이 케냐 북동부주 가리사에 위치한 가리사 대학교에서 기독교 학생과 경찰 등 148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조직원들은 학교에 침입해 종교를 물은 뒤 기독교인에게 총격을 가했다. 용의자 5명이 체포됐고, 당시 여학생 신시아 차로티크(Cynthia Cheroitich·19)가 옷장 속에서 숨어있다가 이틀 만에 발견돼 화제가 됐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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