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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21세기 도깨비 강우현

중앙일보 2015.11.2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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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남이섬을 좋아했다.

지나는 길이면 구태여 배를 타고 들어가 들렀다.

노란 은행잎이 바닥에 수북하게 쌓이는 즈음이면 안 보면 병날 정도였다.

당시엔 여행담당이었기에 참새 방앗간 들러듯 했다.

이렇게 된 건 오롯이 한 사람의 사진 때문이었다.

일평생 제주 사진만 찍다가 고인이 된 김영갑선생,

그가 찍어놓은 남이섬 사진을 본 후,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가 찍은 제주 이외의 유일한 사진이 남이섬 사진이었다.

2001년, 디자이너이자 동화작가인 강우현작가가 난데없이 남이섬 사장으로 선임되었다.

이 일이 세간의 화제였다.

마침 그가 사장으로 선임된 지 일주일 후 남이섬에서 인터뷰가 잡혔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전에도 그를 한번 만난 적 있었다.

1998년이었다.

당시 스스로를 [멀티캐릭터 아티스트]라 칭했다.

그때 들려줬던 말이 계속 머리에 남아있었다.

“이젠 한 우물만 파서는 안 됩니다. 일단 물이 나오면 여러 우물을 파서 그것을 하나로 통하게 해야 합니다. 21세기 문화는 멀티풀한 사람이 주도할 겁니다.”

한 우물만 파라고 해서 한 우물만 죽도록 팠던 나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인터뷰 통보를 받자마자 우물이야기가 떠올랐다.

남이섬에 그가 새롭게 팔 우물이 궁금했다.

월급이 단 돈 100원이라고 해서 떠들썩했기에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모 은행장이 월급 1원을 받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죠. 저는 그보다 100배 더 받는 거죠.”

그러면서 얄궂게도 웃었다.

우스개로 이야기했지만 돈이나 그 밖의 것에 걸림 없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였다.

사장으로서 남이섬을 어떻게 바꿀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뜸 바꾸지 않을 거라고 했다.

풀 한 포기 죽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살아있는 자연 그대로, 사람마저도 여기서는 자연이 되는 곳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망할 수도 있지 않나 하고 물었다.

사람들은 앞으로 이곳에서 자연과 문화와 낭만을 사게 될 거라고 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겠냐는 의심이 들었다.

사실 인터뷰를 듣는 내내 기대 반 의심 반이었다.

그 다음해, 가족 여행길에 남이섬에 잠깐 들렀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함께한 아내가 불만을 터트렸다.

유흥오락 시설의 잔재가 볼썽사납고 잠깐 산책하는 비용치고는 비싸다는 불만이었다.

항변도 못하고 딴청을 부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뿔싸, 바로 한발 짝 옆에서 강우현사장이 땅만 쳐다보고 걷고 있었다.

순간 당황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크게 인사를 했다.

아내의 입을 얼른 막겠다는 심산이었다.

강사장이 놀라서 인사를 받았다.

물론 더 놀란 건 아내였다.

속으로 빌었다. 제발 아내의 볼멘소리를 듣지 못했기를….

갑자기 강사장이 땅바닥에서 마로니에 열매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펜을 꺼내어 열매에 몇 번 터치를 했다.

그리고 그것을 옆에 있던 아들에게 선물이라며 건넸다.

아들이 무척 좋아했다.

마로니에 열매가 귀여운 곰 얼굴로 변해 있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전과자가 되었다고 했다.

카바레를 비롯하여 향락업소들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수십 건의 고소, 고발을 당했다고 했다.

사장 취임 인터뷰 당시에도 염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래도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당신이 전과 몇십 범이 되어도 향락시설과 마이크 소음이 없어져야 ‘남이섬이 남이섬다워 진다’고 했다.

그의 의지를 듣는데 계속 찜찜했다.

아내의 불평을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었다.

답은 지금도 모른다.

가끔 만날 때마다 그는 꿈꾸듯 이야기를 했다.

쓰레기도 자산이다. 쓰레기를 ‘쓸 얘기’로 만들겠다.

잘 썩지 않아 처치곤란인 각 지자체의 은행잎 쓰레기를 들여와 은행나무길에 깔겠다.

죽고 버리는 나무도 문화상품으로 만들겠다.

하늘을 통해 남이섬에 들어올 수 있게 하겠다.

심지어 남이섬에 나라를 세우겠다고 했다.

거의 다 처음 들을 땐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믿거나 말거나 던진 말이 하나 둘 현실이 되어 있었다.

2012년 그의 초상화를 찍기 위해 남이섬으로 갔다.

서울에서 찍을 수도 있었지만 또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한 터라 구태여 갔다.

하는 말마다 기발하고, 하는 일마다 범상치 않아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학창시절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고등학교 성적이 162명 중 157등이었지. 그런데 날더러 천재라고 하니 웃기죠. 솔직히 깊이 아는 건 없어요. 얇고 넓게 아는 편이죠. 그것들을 섞거나 위치를 옮기면 새로운 게 될 뿐이죠.”

그 이야기를 듣는 중에 사무실 천정 마룻대에 매달린 도깨비방망이를 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묶여 있었다.

웬 도깨비방망이냐고 물었다.

여행가서 눈에 띄어 사왔다고 했다.

내려달라고 했다.

여느 천정의 두 배는 족히 되는 높이였다.

높은데다 묶여 있어 힘들다고 했다.

살아온 게 도깨비니 반드시 도깨비방망이 들고 찍어야 한다고 떼를 썼다.

언젠가 그가 말한 적 있다.

창조는 우기는 거라고….

그에게서 배운 대로 우겼다.

그렇게 떼어낸 도깨비방망이, 들고 이고 끼고 찍었다.

사진으로 말하고 싶었다.

강우현은 '21세기 도깨비'라고….

[구태여 덧붙임]
최근, 유네스코 서울협회가 올해의 인물로 그를 선정했다.
현재 그는 남이섬에 있지 않다. 제주도에 있다.
제주남이섬 대표다. 아직 못 가봤고 못 만났다.
또 뭔 일이 생길지 궁금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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