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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프리미어 에피소드 12 … 김인식의 불편한 걸음이 준 메시지

중앙일보 2015.11.22 18:45
한국 대표팀이 야구대항전 '프리미어 12'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대표팀은 지난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미국을 8-0으로 완파했다. 현역 메이저리거를 제외한 최고 선수들이 참가한 대회에서 한국이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대표팀 구성부터 어려움을 겪었고, 일본과의 개막전에서 0-5 완패를 당했던 대표팀은 기적 같은 반전 우승에 성공했다. 승전보에 가려진 '프리미어 12'의 뒷얘기 12개를 모았다.


1. 불편한 걸음이 준 메시지
김인식 야구대표팀 감독은 지난 19일 일본과의 준결승전에 앞서 더그아웃에서 홈플레이트로 걸어나왔다. 11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유증 탓에 걸음이 좀 불편하지만 그는 두 다리에 힘을 꽉 줬다. 고쿠보 히로키 일본 대표팀과 라인업 카드를 교환한 김 감독은 느리지만 힘찬 걸음으로 되돌아왔다. 이동거리 약 50m. 그에겐 먼 거리였다. 앞서 8강전까지 김 감독은 김평호 코치에게 카드 교환을 맡겼지만 이날은 직접 나섰다. 일본전을 앞둔 장수의 결기가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지난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사령탑에 오른 김 감독은 "2006년 대회를 치러 보니까 감독이 라인업 카드를 교환하는 게 관례더라고. 내가 팀을 또 맡으면 외국인들이 '한국에는 (걸음이 불편한) 저 사람밖에 없나'라고 오해할 거 아냐?"라고 했다. 애초 감독직을 거절했던 그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끈질긴 설득을 받아들였다.

이후 건강이 많이 좋아졌지만 68세의 김인식 감독에게 서울-삿포로-타이베이-타이중-타이페이-도쿄로 이어진 보름간의 강행군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마지막 50m를 더 걸었다. 일본을 꼭 이기고 싶은 간절한 의지가 담긴 동작이었다. 이를 본 대표팀 선수들의 전의도 활활 불타올랐다.

2. 해물탕이 그렇게 맛있었나요?
김 감독은 좀처럼 징크스를 따지지 않는다. 그런 그가 사흘 내내 해물탕만 먹었다. 김 감독은 준결승전 전날인 18일 코치들과 함께 도쿄의 한 식당에서 대게가 들어간 해물탕을 먹었다. 그는 "냄비가 엄청 크고 맛이 기가 막혔다"며 껄껄 웃었다. 19일 한·일전에서 4-3 대역전승을 거둔 뒤 그 해물탕집을 다시 찾았다고 한다. 결승전을 앞둔 20일 김 감독은 세 번째로 그 식당을 들렀다. "다른 걸 먹을까 하다가 찜찜해서 또 해물탕을 먹었지. 그런데 계속 먹으니까 질리네. 허허." 그를 감동시킨 건 해물탕 맛이 아니라 승리의 맛이었던 거다.

3. "결승전 끝나고 기사 써주세요"
결승전을 하루 앞둔 20일 자율 훈련에서 김현수(27·두산)가 동료 5명과 함께 도쿄돔에 나왔다. 취재진이 "대회가 끝나면 해외진출 선언을 할 것인가"라고 묻자 김현수는 "조건이 맞으면 (해외에) 가겠다"라고 답했다. 그는 "'진출 선언'이라고 쓰시면 안 된다. '조건이 맞으면 가겠다. (미국 진출과 두산 잔류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써 달라"며 "기사는 결승전이 끝나고 나와야 한다"며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 결승전에서도 3안타·3타점을 날린 김현수는 대회 최우수선수(타율 0.333·타점 13개)에 선정됐다.

4. 태극기 없었던 '절제 세리머니'
미국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정금조 KBO 운영육성부장은 "우승을 하더라도 과도한 세리머니는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슬람국가(IS) 연쇄 테러 등으로 인한 전 세계적 애도 분위기에 동참하겠다는 뜻이었다. 대표팀 주장 정근우(33·한화)도 "태극기를 챙기겠다는 후배를 말렸다. 도쿄돔에서 괜히 일본 팬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국을 이긴 한국 선수들은 마운드 주위에 모여 '셀카'를 찍는 등 간단한 축하 세리머니를 했다. 이에 대해 일부 팬들은 "위대한 우승을 하고도 지나치게 다른 나라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5. 결승전 '헹가래 투수'는 없었다
우승을 확정하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투수는 조상우(21·넥센)였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는 팀의 마무리 투수가 등판하는 게 보통이다.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헹가래 투수'가 됐던 이현승(32)은 대표팀에서도 마지막 투수로 올라올 예정이었다. 대표팀 관계자는 "이현승을 '헹가래 투수'로 올리려 했지만 점수차(8-0)가 많이 나자 김인식 감독님이 투수 교체를 하지 않으신 걸로 안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상우도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큰 '액션' 없이 우승을 즐겼다.

6. 공도, 방망이도 던진 '오열사'
대만에서 열린 8강전에 앞서 오재원(30·두산)은 배팅볼 투수를 자청해 열심히 공을 던졌다. 손이 부족해 직접 나선 것이다. 또 오재원은 배팅볼 투수들을 따로 불러 삼겹살을 사 주기도 했다. 오제원은 방망이도 잘 던졌다. 준결승전에서 9회 선두타자로 나와 좌전안타를 친 후 멋지게 배트를 일본벤치 쪽으로 던졌다. 타자일순 후 다음 타석 때는 일명 '빠던(배트 던지기의 은어)'을 더 크게 했다. (결과는 중견수 뜬공 아웃). 평소 과도한 세리머니로 두산 외 팬들에게 '비(非)호감'으로 불렸던 그가 이번 대회에서 'Be호감(호감이 되다)'으로 거듭났다. 일본전 이후 얻은 '오열사(烈士)'란 별명은 덤이다.

7. 대표팀 '큰 손'은 역시 이대호
대표팀 선수들은 시내에 있는 최고급 호텔에서 지냈다. 그러나 틈만 나면 삼삼오오 모여 한식당을 찾았다. 어떻게 모여도 계산은 이대호(33·소프트뱅크)가 했다고 한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선수들이 손을 들면 이대호가 씩 웃으며 돈을 냈다. 강민호는 "나도 이제 선배가 되어 돈을 많이 내려 했지만 대호 형은 못 따라갔다"며 웃었다. 일본 닛칸스포츠는 '연봉 5억엔(45억원)을 받는 이대호가 회식 비용을 지불하면서 선수단의 단합력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8. 나성범은 지금부터 더 바빠
대표팀에서 가장 바쁜 선수는 나성범(26·NC)이었다.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이틀 만에 대표팀에 합류한 그는 28일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22일 귀국한 그는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23일 충남 공주의 한 부대로 입소한다. 퇴소한 다음날인 12월 19일에는 미뤄왔던 결혼식을 치른다. 지난해 아들을 얻고 혼인신고를 했지만 예식은 늦었다. 나성범은 "훈련소 입소를 위해 머리를 짧게 잘랐다. 결혼식을 위해 가발은 준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9. 우승의 '숨은 주역' 전력분석팀
김시진 전 롯데 감독이 이끌었고, 이종열·안치용 해설위원과 채창환 전 한화 기록원이 힘을 보탠 대표팀 전력분석팀의 공도 컸다. 김시진 전력분석팀장은 대만에서부터 한 번도 한국 선수단을 만나지 못하고 '다음 상대'를 연구하러 다녔다. 정금조 부장은 "중남미권 선수들을 분석하기 특히 어려웠을 것이다. 원래 자료가 부족한데다 엔트리가 자주 바뀌었다. 전력분석팀이 늦은 밤까지 자료를 정리하느라 고생했다. 그분들이 숨은 주역"이라고 말했다.

10. 우승 상금 11억원, 그러나…
프리미어 12 우승 상금은 100만 달러(약 11억원)이다. KBO는 세금을 제외한 금액의 50%를 운영비로 충당하고 나머지를 선수단에 지급한다. 코치를 포함하면 선수단 규모는 50여 명이다. 1인당 상금은 1000만원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2009 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은 1인당 6785만원을 받았다. 국가대표팀 운영규정에 따르면 일당이 별도 지급된다. 감독 15만원, 코치 10만원, 선수 8만원이다. 28일간 김 감독의 일당은 총 420만원이다. 선수들은 이 기간 동안 자유계약선수(FA) 일수로 인정되는 혜택도 받는다.

11. 프리미어12는 쇼케이스
매 경기마다 수십 명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한국과 일본 선수들을 관찰했다. 대만에서 만난 시애틀 매리너스 국제 스카우트 샘 카오는 "강정호(피츠버그)가 성공하자 한국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고 전했다. 포스팅을 통한 미국 진출을 선언한 마에다 겐타(일본)가 등판한 푸에르토리코전에는 무려 15명의 스카우트가 몰렸다. 일본의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에 대한 관심도 컸다.

12. 일본이 짠 각본, 주연은 한국
대회 흥행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국-일본의 준결승 시청률은 평균 25.2%(관동지방 기준)를 기록했다. 조별리그 일부 경기는 관중이 적었지만 한국·일본·대만 경기에는 많은 관객들이 입장했다. 일본에서 열린 준결승·결승에는 4만 장 이상의 입장권이 팔렸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일본 대표팀이 3위로 대회를 마감하자 뒤늦은 반성의 목소리를 냈다. 데일리스포츠는 '대회 운영에 임기응변적인 발상이 많았다. 부조리함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김효경·김원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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