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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 D] YS, 그리고 홍위병의 추억

중앙일보 2015.11.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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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25일 본지 1면. [사진 중앙포토]


홍위병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차별과 권위 부수기다. 모든 잘난 사람, 돈 많은 사람이 타도 대상이었다. 평등주의를 향한극단적 실험이다.홍위병은 독특하다. 가진 자, 힘 있는 자를 겨냥한 민중 봉기 후 새 국가가 탄생하는 것이 중국 역사의 기본 공식이다. 홍위병은 이걸 뒤집었다. 신 중국 탄생 전이 아니라 그 이후, 그것도 10여 년이나 지나서 진행된, 늦춰진 드라마다.

우리에게도 홍위병이 있었다. 이번엔 몽둥이 대신 붓이 도구였다. 1993년의 이야기다.

그 해 8월 한반도의 남쪽은 크게 술렁였다. 공직윤리법에 따른 공직자의 재산등록과 금융실명제가 한꺼번에 터졌다.

당시 중앙일보의 캡(Cap: 사건팀장)은 “우린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숨겨진 팩트를 찾아내야 하는 일종의 홍위병”이라는 농반진반의 얘기를 건내면서 후배기자들의 철저한 현장 취재를 독려했다. 밤낮없이 새로운 팩트 찾기에 모든 것을 건 기자들의 드라마는 이렇게 시작됐다.

9월 어느 날 밤. 취재차량을 타고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의 등기소를 찾았다. 심야다. 등기소 건물에 불빛 한 점 없는 건 당연했다.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적막한 시골 동네가 한 순간에 깨어났다. 집요한 두드림에 결국 숙직자가 나왔다. 다짜고짜 아무개의 토지대장 열람을 요구했다. 그는 당연히 거부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공직자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내 제대로 단죄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불법이었다. 그래도 숙직자는 열람을 허락했다. 그 때는 법보다 정의가, 억눌린 국민들의 울분 해소가 우선이었던 시절이다.고위공직자들의 숨겨진 재산이 연일 지면에 올랐다. 국민들의 울분도 함께 모였다.

결국 등기소와 동사무소 공무원들이 달라졌다. 경원하던 눈빛 대신 따뜻한 커피와 음료수, 응원의 눈길이 돌아왔다. YS는 언론이 문제삼은 고위 공직자를 지체없이 물러나게 했다. 역사를 바꾸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마음을 움직였고, 모든 것들을 가능케 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90%이 넘어가는 전무후무한 역사가 펼쳐졌다.

50년대. 저축이 GDP 대비 1.4%에 불과했던 시절. 지하경제를 떠돌던 자금을 끌어내려 1965년 금리현실화를 단행했다. 정기예금 금리를 연 15%에서 26.4%로 높였다. 그러나 인플레가 15%였던 때였다. 게다가 제조업에 대여하거나 사채로 돈을 굴리면 20-50%까지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금리현실화의 효과는 미미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차명·가명·익명계좌를 허용했다. 한국판 흑표백묘(黑猫白描)다. 어쨌든 돈만 끌어들이면 ‘장땡’이라는 생각이었다. 몇 개월 만에 예금이 절반 가까이 늘었다. 허나 부작용은 이걸 덮고도 남았다. 이자소득을 990원씩 수천 개로 쪼개 세금을 피했다. 가명 익명이 가능하니 신규 계좌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이 때 금융실명제가 대두된 것 당연했다. 그러나 좌초됐다.

재개와 정치권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1982년 터져 나온 장영자·이철희 사건은 사실 예고된 재해였다. 당시 장영자가 돈을 빌려주고 액수를 부풀려 받은 어음을 시장에 할인 매각해 챙긴 돈은 7111억원이다. 지금 시세로 7조원이 넘는다. 당시 GDP의 1.4%, 한 해 국가 예산
의 10%다. 그녀는 지금 시세로 하루 평균 1억 원씩 펑펑 써댔다.김재익 경제수석이 금융실명제를 건의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시기상조라며 거부했다.

이걸 해낸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2개월간의 비밀작업 끝에 1993년 8월 12일 오후 7시 45분, 김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거래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했다.

비로소 세상이 바뀌었다.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왔다. 어둠은그냥 물러가지 않았다. 각종 꼼수로 뒷다리를 잡았다. 그러나 결국은 사라졌다.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것은 또
다른 빛의 시작이었다.

누구나 공이 있으면 과가 있다. IMF 사태를 불러들인 1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책임은 당연히 당시 국가수반이었던 김 전 대통령에게 있다. 과는 과대로 엄중하게 판단하자. 그렇다고 건국 이후 첫 경제적 빛을 가져온 그의 공을 가볍게 여길 순 없는 노릇이다.오늘 우리가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의 생애를 진지하게 들여다 보고 평가해야 할 이유다.

진세근 언론인ㆍ전 중앙일보 기자[스페셜 칼럼D] 논설위원 4인의 YS와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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